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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개 향불이 탄 흔적이 주는 감동… 이길우 개인전

입력 : 2021-11-15 14:11:05 수정 : 2021-11-15 1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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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정동 항아리1’ 선화랑 제공

얇은 한지에 지름 5㎜도 안 될 듯한 작디 작은 구멍들이 무수히 나 있다. 뒷걸음질 쳐 멀리서 작품을 바라보자 노천 카페의 풍경이, 단아한 항아리가, 슬픈 모자상이 은은하게 형태를 드러낸다. ‘향불 작가’로 불리는 이길우 작가의 작품들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한국화가 이길우 개인전 ‘108개와 Stone(스톤)’이 열리고 있다. 한지에 향불로 태운 평면작품 35점을 선보인다.

 

이길우 작가는 향불을 한지에 갖다 대어 작고 동그랗게 구멍이 뚫리고 테두리에 검게 탄 자국을 만든다. 그렇게 수많은 구멍을 뚫는다. 그렇게 한지 1장을 만든 뒤에 같은 작업을 새 한지에 반복한다. 이어 종이를 겹쳐 붙여 중첩시킬 서너차례.  화면에는 향불이 종이를 태운 흔적이 많은 곳은 진하게, 태운 흔적의 밀도가 낮은 곳은 연하게 보인다. 이 원리로 형태를 드러낸다. 어머니가 아끼던 항아리,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 전시를 위해 오간 국내외의 풍경을 담아냈다. 그날의 시간성을 담고 있는 국내외의 신문지, 직접 채색한 한지 등을 콜라주해 화면의 문양도 의미도 더 다채로워졌다.

‘뉴욕, 센트럴파크, 아이’ 선화랑 제공
‘모자상’ 선화랑 제공

그의 작업 방식은 향불에 타서 비워지고 사라진 공간이 다시 형태로 생성된다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불교의 윤회사상이 배어있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2003년 가을, 자신의 화실 앞에서 우연히 올려다본 은행나무 가로수의 마른 잎 무더기가 역광에 비쳐 까맣게 그을려 보인 데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100호 크기 작품의 경우 5만번 정도 향불 구멍을 낸다고 한다. 수만번 향불을 태우기 때문에 환기를 자주 시켜줘야 하고 여름에는 더위와 겨울에는 추위와 싸우면서 방독면을 끼고 작업해야 하는 고된 과정이라고 한다. 그의 상징적 작업방식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배우 판빙빙 등 유명인사들이 그에게 초상화 작업을 요청하기도 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삶에서 잘 살고 싶은 욕망, 여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 이런 것들은 결핍을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욕망과 결핍은 결국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며 “그런 양면적인 부분을 다룬 전시 주제”라고 설명했다.

 

12월4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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