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산지오베제 클론 마법사’ 마쩨이를 아십니까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관련이슈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 디지털기획

입력 : 2021-11-06 16:00:00 수정 : 2021-11-06 13:53:2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마쩨이 그란 셀레지오네 입수스

25대손 지오바니 마쩨이 웨비나 인터뷰/이탈리아 토착품종 산지오베제로 600년 와인빚은 ‘끼안티 클라시코의 아버지’/36개 클론 모두 사용한 비꼬레지오 36 빚어/최고 등급 그란 셀렉지오네의 ‘정수’ 입수스 첫 빈티지도 탄생

 

낙엽 수북하게 쌓인 고요한 가을 숲. “바스락 바스락”.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려오는 낙엽 밟는 소리만 깊은 정적을 깨우네요. 어른 몸통 두배 굵기의 거대한 삼나무 사이로 바람 한줄기 불어오면 낙엽 몇장 걷어내고 솟아오른 아침 이슬 젖은 땅내음이 코끝을 스칩니다. 산지오베제(Sangiovese). ‘제우스의 피’라는 이름의 포도는 이름처럼 강렬하면서도 그윽한 숲속 가을향을 글라스에 담아 비강을 한껏 채우더니 가슴까지 넉넉하게 적셔줍니다. 산지오베제로 600년 가까이 와인을 빚은 ‘끼안티 클라시코의 아버지’ 마쩨이(Mazzei). 그를 따라  산지오베제 와인 한잔 들고 가을 숲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갑니다. 

카스텔로 디 폰테루톨리
카스텔로 디 폰테루톨리

◆600년 세월, 와인 한잔에 담다

 

중국의 왕조들은 길어야 300년. 그에 비해 고려왕조와 조선왕조는 500년동안 이어졌으니 대단한 역사죠. 그만큼 정치적으로 안정됐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런 왕조보다 더 오랫동안 와인만 빚은 가문도 있습니다. 바로 마쩨이랍니다. 1435년부터 이탈리아 ‘와인의 심장’ 토스카나의 끼안티 클라시코에서 본격적으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니 역사는 올해 586년이나 됐네요. 문서상으로는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1398년 마쩨이 와이너리의 설립자인 세르 라포 마쩨이(Ser Lap Mazzei·1350-1412)의 이름이 적힌 와인 거래 문서에 ‘여섯배럴의 끼안티를 거래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끼안티’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최초의 문서로 사실 마쩨이 가문이 더 오래전부터 와인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필리프 마쩨이
필리프 마쩨이 기념우표

역사가 깊은 가문답게 미국 독립선언문 작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도 배출합니다. 마쩨이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필리프 마쩨이(Filipp Mazzei·1730-1816)랍니다.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던 필리프는 미국 독립을 추진하던 벤자민 프랭클린을 영국에서 만나 친구가 됩니다. 마쩨이는 벤자민을 통해 나중에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 된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과의 인연을 쌓게 되죠. 두 사람은 1773년 이탈리아 산지오베제 등의 포도나무를 들고 미국 버지니아로 건너가 함께 최초의 상업화된 와이너리 몬티첼로 빈야드를 일굽니다. 그들은 단순한 사업 동반자를 넘어 미국의 독립을 함께 꿈꾸며 서로의 사상과 철학을 나눕니다. 특히 제퍼슨이 1776년 작성한 미국 독립선언문 서문에 담긴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위대한 기본 정신의 철학적 배경을 필리프가 제공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집니다.  

필리포(왼쪽), 라포, 프란체스코 마쩨이(앞)
마쩨이 4개 와이너리 위치

 

◆끼안티 클라시코의 그랑크뤼 ‘그란 셀레지오네’

 

마쩨이 가문의 역사는 현재 25대인 지오바니 마쩨이(Giovanni Mazzei)까지 이어집니다. 그의 아버지 필리포(Filippo), 삼촌 프란체스코(Francesco)가 와이너리 경영을 이끌고 지오바니는 수출을, 사촌 동생 라포(Lapo)는 이탈리아 소매 시장을 담당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마쩨이 패밀리는 이탈리아 여러 지역에 와이너리를 세웠습니다. 끼안티 클라시코의 카스텔로 디 폰테루톨리(Castello di Fonterutoli), 마렘마의 벨구아르도(Belgvardo), 시칠리아의 찌솔라(Zisola), 베네토의 빌라 마르첼로(Villa Marcello) 입니다.  

지오바니 마쩨이 웨비나
마쩨이 끼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렉지오네 와인들

최근 이탈리아 현지를 줌으로 연결해 지오바니 마쩨이와 2018 빈티지 와인들을 함께 시음하는 웨비나가 WSA와인아카데미에서 열렸습니다. 마쩨이 와인들은 하이트진로가 수입합니다. 지오바니와 함께 시음한 와인중 인상 깊은 와인은 그란 셀레지오네 와인들입니다.  끼안티 와인은 끼안티-끼안티 수페리오-끼안티 클라시코-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순으로 고급 와인이며 2014년 2월 그 위에 최고 등급인 끼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Gran Selezione)가 신설됐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메독의 그랑크뤼 등급처럼 ‘끼안티 클라시코의 그랑크뤼’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네요. 끼안티와 끼안티 수페리오는 이탈리아 대표적인 토착품종인 산지오베제를 75%이상, 끼안티 클라시코부터는 80% 이상 사용해야합니다. 나머지 20%는 토착품종인 까나이올로(Canaiolo), 꼴로리노(Colorino)와 국제품종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등을 섞습니다. 하지만 끼안티 클라시코는 품종의 특징을 잘 드러내기 위해 보통 산지오베제를 100% 사용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끼안티 클라시코는 보통 24개월이상,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는 보통 36개월 이상 숙성합니다.

마쩨이 그란 셀렉지오네 생산 3개 마을
까스텔로 디 폰테루톨리 그란 셀레지오네

◆산지오베제 클론 블렌딩의 마법사

 

마쩨이의 그란 셀레지오네 와인들도 산지오베제 100% 와인입니다. 까스텔로 디 폰테루톨리 그란 셀레지오네는 2015년부터 생산된 마쩨이의 대표 그란 셀레지오네로 폰테루톨리 성을 둘러싼 포도밭 11곳에서 최고 구획의 포도만 선별해 만듭니다. 해발고도 470m의 포도밭 토양은 미네랄과 칼슘을 풍부하게 함유한 라임스톤으로 이뤄진 알베레제(Alberese)로 풍성한 미네랄 캐릭터가 돋보입니다. 잘 익은 검은 과일향과 다양한 허브, 우아한 꽃향기가 어우러지며 당도, 산도, 탄닌의 밸런스가 뛰어납니다. 스튜나 트러플을 얹은 요리, 숙성치즈와 잘 어울립니다. 끼안티 클라시코는 9개 마을로 이뤄졌고 마쩨이 포도밭은 대부분 끼안티 클라시코에서도 중심인 까스텔리니 인 끼안티에 있답니다. 이곳에 ‘끼안띠 클라시코의 영혼이자 심장’으로 불리는 카스텔로 폰테루톨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중세때 피렌체와 시에나의 전쟁을 종식하는 평화 협정을 맺은 역사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마쩨이 포도밭 고도
바디올라

마쩨이 그란 셀레지오네 3총사는 모두 다른 지역에서 만들기에 개성이 다 다릅니다. 바디올라(Badiola) 끼안띠 클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는 끼안티 클라시코에서 해발고도가 570m로 가장 높은 라다 인 끼안티의 바디올라 빈야드에서 생산된 포도를 사용합니다. 큰 일교차 덕분에 섬세하고 신선한 산도를 잘 품었네요. 블랙체리, 블루베리의 과일향과 꽃향 등 강렬한 아로마가 느껴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매혹적인 장미향 극대화됩니다. 섬세하면서도 우아한 향수 뉘앙스도 따라오네요. 밸런스도 잘 잡혀있습니다. 포도밭에는 석회암 이회토인 갈레스트로(Galestro)와 사암토가 섞여 있는데 이런 토양은 배수가 잘됩니다. 덕분에 포도는 풍성한 아로마와 뛰어난 산도를 움켜쥐게 됩니다. 또 우아하면서도 진하고 깊이감이 있는 풍부한 스타일의 와인이 빚어집니다. 16개월간 오크 숙성하고, 콘크리트 탱크에서 5개월 추가 숙성을 진행합니다. 생산량은 한해 6200병에 불과합니다.

포도선별 작업
까스텔로 디 폰테루톨리 셀러

 

마쩨이는 오랜 역사동안 산지오베제로 와인을 빚었기에 이 품종에 관한 이탈리아 최고의 전문가 집단으로 꼽힙니다. 산지오베제(Sangiovese)는 라틴어 ‘쥬피터(Jove)’와 ‘피(Sanguis)’를 합성한 단어로 ‘제우스의 피’라는 뜻입니다. 산지오베제는 석회질이 풍부한 토양에서 잘 자라고 포도에 미네랄이 잘 스며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답니다. 그런데 유전적으로 매우 불안한 품종이라 클론(변종)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마쩨이는 40년동안 끼안티 지역의 포도밭 구획 120여곳을 조사해 서로 특성이 조금씩 다른 산지오베제 클론 36개를 찾아냅니다. 현재 이중 18개는 폰테루톨리에서 독점으로 사용합니다.

포도밭 클론 구별표시

 

비꼬레지오 36

마쩨이 와인들은 모든 와인들에 다양한 산지오베제의 클론을 사용하기에 복합미가 뛰어나죠. 비꼬레지오(Vicoregio) 36 끼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는 이런 마쩨이의 산지오베제 연구가 집약된 결정체입니다. 마쩨이는 까스텔누오보 베르덴가 포도밭에 산지오베제 36개 클론을 재배하고 있는데 이 36개 클론을 모두 사용해서 빚은 매우 실험적인 와인입니다. 산지오베제 클론 블렌딩 마법의 절정을 보여준다고 할수있겠네요. 세 와인중 가장 남쪽에 있는 까스텔누오보 베르덴가 포도밭은 해발고도 360m로 가장 낮아, 블랙체리와 블랙베리 등 아주 잘 익은 과일의 진한 농축미가 도드라집니다. 하지만, 산도도 잘 움켜쥐고 있어 균형감이 매우 뛰어납니다. 세 와인중 가장 강한 허브향, 특히  유칼립투스가 강렬하고 곶감같은 말린 과일향과 말린 장미향도 느껴집니다. 가죽향과 젖은 숲향 등 2차 숙성의 향들도 따라오고 여운이 아주 길게 이어집니다. 36개 클론이 골고루 사용됐으니 복합미 역시 뛰어납니다. “수확에 따라 콜론 비율이 달라질 수 있지만 거의 동일한 비율로 블렌딩됩니다. 클론의 바이오 타입은 모두 다른 개성을 지니기 때문에 많은 클론을 블렌딩하면 복합미가 뛰어난 와인을 얻을 수 있답니다.”

지오바니 마쩨이
중력방식 마쩨이 셀러

지오비니는 포도나무 한 그루당 수확량도 줄여 농축미를 끌어 올렸다고 설명합니다. “1970년대까지 포도나무 한 그루당 수확량이  2~2.2kg이었는데 현재는 가지치기를 통해 수확량을  0.8~1kg로 낮췄습니다. 한 그루당 생산량이 적을수록 포도는 농축미와 복합미가 뛰어나게 됩니다.” 마쩨이 그랑 셀레지오네 와인들은 지금도 맛있지만 2∼3년 더 숙성시키면 숨어있는 잠재력이 폭발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지오바니는 10년 정도 숙성 잠재력을 지녔다고 말하네요. “마쩨이 그란 셀레지오네 와인들은 뛰어난 숙성잠재력을 지녔어요. 물론 현재의 상태로도 마시기 좋고 좋은 산도감이 음식과 매우 좋은 조화를 이룹니다. 빈티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저는 10년 뒤가 되면 와인이 좀 더 다양한 아로마와 훨씬 더 부드러운 캐릭터를 표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2018 빈티지의 특징이 궁금하네요. “여름은 너무 덥지 않았고 9월 수확때 비가 좀 왔지만 일교차가 컸던 해로 엘레강스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하는 향기로운 와인이 생산됐습니다. 유칼립투스, 로즈마리와 같은 다양한 허브향도 느껴집니다”. 지오바니의 말처럼 마쩨이 2018 빈티지 그란 셀레지오네 와인들은 강렬한 허브의 아로마가 비강을 가득 채우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입수스 2015
입수스 2015

 

◆산지오베제의 한계를 뛰어넘다

 

마쩨이는 600년 가까이 산지오베제로 와인을 빚은 노하우를 토대로 올해 그란 셀레지오네 와인중에서도 정점을 찍는 새로운 와인을 선보였습니다. 카스텔리니 인 끼안티 지역의 포도로 만든 입수스(IPSUS) 끼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 일 카지오 2015입니다. 첫 빈티지가 나오자마자 제임스 서클링 98점, 와인 스펙테이터 96점, 로버트 파커 96점의 고득점을 받았을 정도로 화제입니다. 2006년 구입한 150ha 규모의 일 카지오(IL Caggio) 포도밭중 유기농법으로 관리하는 해발고도 320∼350m의 6.5ha 포도밭 생산된 30년 수령의 최상급 산지오베제로 만듭니다. 토양은 주로 석회질 이회암, 알베레제 암석 조각이 혼합된 점토 편암으로 이뤄졌는데 최고의 산지오베제가 탄생하는 아주 좋은 토양이라는군요.

 

실제 2006년부터 일 카지오 포도로 빚은 와인은 완벽한 균형과 강렬한 개성을 잘 드러냈고10년째 되는 2015 빈티지부터 입수스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입수스는 ‘자신(himself)’이라는 뜻으로,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고귀한 ‘그 와인 그 자체’라는 의미를 담았다니 대단한 자부심이 묻어납니다. 24개월 오크숙성과 8개월 시멘트탱크 숙성을 거치며 아주 잘 익은 과일향과 뛰어난 밸런스, 긴 여운이 이어집니다. 

까스텔로 디 폰테루톨리 끼안티 클라시코 2018

◆설립자 세르 라포 헌정 와인 

 

폰테루톨리 끼안티 클라시코 2018은 키안티 클리시코란 어떤 스타일의 와인인지 잘 보여주는  베스트 셀링 와인입니다. 까스텔리니 인 끼안티 마을 포도밭중 7개 구획에서 자란 산지오베제를 90% 사용하고 토착품종인 말바지아 네라, 콜로리노를 블렌딩해 색과 볼드한 바디감을 더합니다. 코에서 장미 등 붉은 꽃과 체리 등 과일 아로마가 매우 풍부하게 느껴지고 로즈마리, 유칼립투스 등 허브향도 스쳐갑니다. 입에서는 좀 더 잘 익은 과일맛이 증폭되고 아직 영한 빈티지임에도 밸런스가 좋네요.  엘레강스하고 아로마가 풍부한 2018년 떼루아를 잘 담은 와인입니다.

세르 라포 끼안티 클라시코 2018

세르 라포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2018은 마쩨이 와이너리를 최초로 일군 세르 라포 마쩨이에 헌정하는 와인입니다. 까스텔리니 인 끼안티 마을의 올드바인 포도로 만들며 전통적으로 양조 방법으로 생산한 클래식한 스타일의 와인입니다.  폰테루톨리가 좀 더 밝은 과일향이 느껴지는 반면, 세르 라포는 다크 체리에 가까운  검은 과일 향이 더 많이 느껴집니다. 산지오베제 90%에 메를로 10%를 블렌딩해 산지오베제의 야생적이고 날카로운 산도와 거친 탄닌을 부드럽게 다듬고 풍성한 과일향으로 감싸 마시기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동물적인 향이 특징입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