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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로프 매고, 오물통 넣고… 민낯 드러난 ‘군대 잔혹사’

입력 : 2021-10-14 18:55:47 수정 : 2021-10-14 23: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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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망사고위, 3년 조사활동 보고

과거 가혹행위 은폐 등 정황 규명
폭행→실책 사고로 死因 둔갑도
1787건 중 지금까지 863건 종결
14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연 3년 조사활동보고회에서 송기춘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 1984년 사망한 최 소위의 사인은 ‘과로사 또는 청장년 급사증후군’으로 군 기록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최 소위는 교관들의 구타와 가혹행위 때문에 사망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교관들이 그의 목에 로프를 맨 채 개처럼 끌고 다녔고, 나무에 묶어두거나 선녀탕이라는 오물통에 들어가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최 소위의 동기생들의 진술을 통해 확인됐다. 당시 군은 교관들이 최 소위에게 폭행과 가혹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묵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 1980년 사망한 공 일병의 경우 군 기록에는 자신의 실책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재됐다. 하지만 실상은 선임의 폭행이 사인이었다. 위원회는 간호기록과 병상일지에 공 일병이 외상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법의학 소견 등을 확인했다. 당시 헌병대가 관련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유족의 민원을 무마시키면서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던 정황도 밝혀졌다.

 

#3. 1950년 실종된 유모 이등중사는 1949년 9월 자원입대한 후 1950년 미복귀로 병적이 말소돼 1959년 모친이 그를 사망신고했다. 위원회 조사 결과 그는 6·25전쟁 발발 시점에 육군사관학교에서 이등중사로 근무 중 전쟁에 참전했고, 1950년 11월25일 평북 덕천에서 실종된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중공군의 대규모 2차 공세로 지역별로 전투가 한창일 때 국군이 전격 철수를 결정한 사실, 유 이등중사의 소속 부대가 아군의 철수 과정에서 청천강 전투에 참전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이 같은 사례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14일 공개한 ‘3년 조사활동보고회’에서 확인됐다. 위원회는 이날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보고회를 개최하고, 사망 원인이 은폐·왜곡됐던 이들에 대한 진상규명 실적을 공개했다.

 

위원회가 발표한 사례에는 △목격자 증언으로 실체적 진실이 발견된 사례 △전사 사례 △1996~1997년 병·변사자 일괄순직심의 시 누락된 사례 △사망보상금 미지급 사례 △전역 후 사망해 구제받지 못한 사례 등이 다수 포함됐다.

14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개최된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3년 조사활동보고회를 지켜보던 군사상유가족협의회의 회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뉴시스

위원회는 법정 접수 시한인 지난해 9월14일까지 모두 1787건을 접수해 지난달 말까지 863건을 종결했다고 발표했다. 진상규명으로 의결된 452건 중 진정 접수 전 순직 결정된 88건을 제외한 366건에 대해 국방부, 경찰청, 법무부 등에 사망 구분 변경 재심사를 권고했다.

 

송기춘 위원장은 “남은 2년의 위원회 활동 기간에 한 점의 의혹도 없도록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망인과 유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며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체화된 군을 만들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도 적극적으로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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