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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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도
정부는 두둔하며 대화 타령만
현실과 괴리된 인식·정책으로
외교안보 파고 어떻게 넘을까

두 사람이 있다. 서로 너무 다르다. 한 사람은 다른 이를 존중하지 않는다. 제멋대로 행동하고 상대방을 조롱하고 모욕하기까지 한다. 이따금 폭력 행사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도 당하는 쪽은 꾹 참는다. 화를 내고 따지기는커녕 외려 잘 지내보자고 매달린다. 두 사람 사이에 진정한 관계가 성립할 수 있을까. 물어보나 마나다. 문재인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딱 이렇다.

13일 북한의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시험발사 성공 발표는 남북 관계 현주소를 다시 확인케 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이날 “북한과의 대화 재개가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레이더로 추적하기 어려운 북한 미사일이 이틀 동안 각각 1500㎞를 날아갔다. 그런데도 북한을 비난하기는커녕 대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가한 소리를 한 것이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최근 북한 영변 핵시설 재가동에 대해 “남북 합의 위반이 아니다”고 북한을 감싼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 장관에 그 차관이다.

원재연 논설위원

정 장관이 누군가. 그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던 2018년 3월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와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고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워싱턴으로 달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정상회담 제안 의사를 전달해 성사시킨 인물이다. 정 실장이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고 전한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북한이 한국, 미국과의 정상회담이나 비핵화 협상 중에도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한 사실이 2019년 유엔 보고서 등을 통해 드러났다. 그런데도 비핵화 의지 운운하며 대화 타령만 한다. 돌아온 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군과 정보 당국 대응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그제 국회에서 “한·미 연합 자산으로 탐지를 했는데 초기 분석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탐지 시점이나 방식은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4월 북한이 순항미사일을 발사했을 당시 군 당국이 당일 포착 사실을 자세히 공개한 것과는 차이가 난다. 정말 알았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대북 정보를 관장하는 국가정보원장은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한 정치적 논란의 한가운데 있다. 우리 안보 현실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순항미사일이 탄도미사일과 달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낮은 고도로 비행하는 데다 항로를 수시로 바꿔 요격이 어렵고 정확도도 뛰어나다. 북한이 소형 전술핵을 탑재하면 안보에 치명적 위협이 된다. 북한은 지난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 위원장이 지시한 대로 핵 능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로인 건 대북정책뿐이 아니다. 외교도 그렇다. 미·중의 전략 경쟁은 무역·기술·환율 분쟁을 넘어 군사·안보 분야까지 번지고 있다. 미국과 4개 핵심 동맹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정보 공동체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대한 한국 참여 문제도 쟁점이 될 조짐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어제 한·중 외교장관회담 후 “(파이브 아이즈는) 완전히 냉전시대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미·중 갈등은 세계 패권이 달린 싸움이어서 하루아침에 끝날 일이 아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한반도에 끼칠 영향에도 대비해야 한다.

문재인정부 임기가 8개월도 남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조성됐던 평화 무드는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비핵화 협상은 멈춰섰다. 북한은 핵 능력 고도화를 계속 추진할 것이다. 미·중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정세는 복잡다기하고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정부의 인식이나 실력은 4년 전 출범 때와 비교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닥쳐올 험난한 외교안보 파고를 어찌 넘으려는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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