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겨냥한 듯 “우리 지키는 건 우리 일”
‘동맹이 美에 느끼는 불안 돌려 표현’ 해석도

‘미국의 가장 모범적인 동맹국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선가, 아니면 동맹국들이 미국에 느끼는 불안감의 우회적 표출인가.’
최근 미국을 방문한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면전에서 한 발언이 눈길을 끈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결정을 내리며 “미국의 이익이 없는 곳에 더는 미군을 두지 않겠다”고 한 바이든 대통령의 언급은 미국과 동맹의 관계가 확실히 변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미국의 핵심 우방이지만 그 이스라엘조차 이번 아프간 사태에서 일정한 교훈을 깨달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미 백악관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과 베네트 총리의 정상회담이 예정보다 하루 늦게 열렸다. 원래 26일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아프간 카불공항에서 테러집단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 미군과 아프간 민간인을 상대로 폭탄 테러를 가하고, 그로 인해 미군 장병 13명이 목숨을 잃음에 따라 미국 측 요청으로 연기됐다.
이날 본격 회담에 앞선 모두발언을 통해 베네트 총리는 ‘자주국방’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대통령님, 우리 이스라엘은 이제껏 한 번도 미국에 우리를 지켜줄 군대를 보내달라 요청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을 지키는 건 우리가 할 일이고, 우리는 안보를 외부에 맡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We will never outsource our security)”이라며 “우리의 운명을 보살피는 건 바로 우리 책임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베네트 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최근 동맹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음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간에서 탈레반을 몰아낸 뒤 새롭게 들어선 친미 정권과 동맹 관계를 맺어왔다. 지난 20년간 아프간에 미군 정예부대를 주둔시키고, 아프간군의 훈련과 각종 무기·장비 확충에도 거액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최근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아프간 군대가 변변한 저항 한 번 못하고 무너지는가 하면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가장 먼저 해외로 도피하자 바이든 대통령의 태도는 차갑게 돌변했다. 대국민 연설에서 “스스로 싸우지 않는 나라와 그 국민을 위해 미군이 희생할 수는 없다”고 외쳤다. 외신들은 앞다퉈 “안보를 무한정 미국에 의존하려는 일부 동맹국을 향한 경고장”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스라엘을 지키는 건 우리가 할 일”이라는 베네트 총리의 단호한 말은 동맹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 변화에 맞춰 이스라엘은 앞으로도 미국의 가장 모범적인 동맹국으로 남을 것임을 강조한 표현이란 평가가 나온다. 동시에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미국의 동맹국들 사이에 ‘과연 미국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불신이 표출된 것과 관련해 이스라엘 역시 ‘안보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을 100% 신뢰하진 않겠다’는 뼈있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