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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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에게 홍콩은 ‘이상향'
이제는 中 공산당 독재 야욕에
자유와 민주주의 무너져 내려
보석같은 홍콩 기억에만 남아

내가 최초로 홍콩을 인지한 것은 서너 살, 아주 어린 시절이다. 요즘처럼 게임이 흔하지 않던 시절 구슬치기, 딱지치기가 주된 놀이였다. 구슬치기는 꽤 잘했나 보다. 동네 아이에게 따온 구슬이 재래식 부엌 찬장 서랍에 가득했다. 어느 날 서랍을 열던 어머니가 수십여개의 구슬이 구르면서 우르르 내는 소리에 깜짝 놀라던 모습이 어제 본 듯 눈에 선하다. 홍콩은 구슬치기를 하면서 처음 알았다. 상대방 구슬을 멀리 보낼 때 “홍콩 가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 시절, 한국인에게 홍콩은 그만큼 멀고 먼 외국이었던 것이다. ‘홍콩보냈다’는 말도 있다. 최고의 쾌락을 줬다는 의미다. 홍콩은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철부지 10대 시절은 홍콩영화와 함께했다. 이소룡이 있었다.

그러나 내게 홍콩에 대한 판타지를 준 것은 영화 ‘모정’(慕情)이었다. TV 주말영화로 봤다. 제니퍼 존스와 월리엄 홀덴이 나온다. 6·25전쟁과 홍콩이 배경이다. ‘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사랑은 아름다워라)으로 시작되는 주제음악은 그 시절 심야방송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대학에 입학하고 클래식에 눈을 뜨면서 그 음악이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중 ‘어느 개인 날’을 몹시 닮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프라노 몽쉐라 카바예나 마리아 칼라스가 단골로 불렀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매체경영학

1980년대 대학시절은 어려웠다. 어수선한 시국상황으로 휴강은 하루 건너 있었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군부독재와 투쟁하면서 세상을 한탄하고 자연스레 자유와 민주주의가 있는 유럽이나 미국 등 외국에 대해 동경하게 된다. 그때 나는 홍콩을 꿈꾸었다. ‘모정’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빅토리아 피크는 자연스럽게 나의 버킷 리스트에 올라왔다. 이처럼 홍콩은 기성세대에게 이상향쯤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워하고 꿈꾸었던 홍콩은 이제 사라졌다. 공산당 독재국가 중국의 일부일 뿐이다. 최근 공표된 홍콩 국가보안법은 국가분열, 국가전복, 외국 세력과의 결탁을 처벌행위로 명문화했다. 즉 체제를 의문시하면 ‘국가분열죄’로, 국제 인권단체가 참여하는 민주화 시위는 ‘결탁죄’로 처벌받게 된다. 시진핑은 “중앙 정부는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전면 관리와 통치를 하고 이들 특별행정구는 국가보안법을 시행해 사회 안정을 지켜야 한다”고 못 박았다. 무시무시한 협박이다.

시진핑은 마오쩌둥 이후 가장 억압적인 중국지도자라고 평가된다. 빈과일보 강제 폐간에서 보듯이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는 말살당하고 있으며, 인권은 사라진 지 오래다. 공산당 일당 독재정권의 가장 추악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사실상 종신집권을 노리는 시진핑의 이른바 전랑(늑대전사)외교 앞에 서방 자유민주국가들은 속수무책이다.

나는 야만적인 중국공산당 정권의 협박에 겁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측은함을 느낀다. 시진핑의 행태는 마치 역사시간에 배운 과거 포악한 전제군주의 모습을 본 듯하다. 그런 그가 공산당 창당 100주년 연설에서 “누구든지 중국을 괴롭히면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릴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황망스러운 발언이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언론자유 등은 인류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참으로 소중한 가치다. 구 소련에서 독립한 동유럽의 여러 국가의 변화에서 알 수 있다. 가끔씩 중국대륙에서 전해 오는 황당하고 기괴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그 속에 사는 중국인민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저 국뽕 수준의 자기 방어에 광적인 그들을 보면서 열린 사회가 새삼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연전에 홍콩을 방문하며 간만에 다시 빅토리아 피크를 찾았다. 역시 홍콩 최고의 명소는 빅토리아 피크다. 그러나 과거 영국령에 비해 영어말 안내가 중국어로 많이 바뀌었으며 거리는 많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예전에 홍콩을 두고 보석같다고 표현했다. 존스가 빅토리아 피크에서 홍콩항을 보면서 속삭였던 대사였다. “Time passes so quickly”(시간이 정말 빨리도 가네) 말도 기억난다. 홀덴과 느티나무 밑에서 산책하며 얘기했던 대사다. 중학교 시절 영어선생님께서 자주 인용했던 문구다. 그러나 감시 도시 홍콩만 있을 뿐 우리가 한 시절 동경했던 보석 같았던 홍콩은 더 이상 없다. ‘중경삼림’에서 나왔던 ‘캘리포니아 드리밍’만 그 시절의 홍콩을 기억해 줄 뿐이다. 굿바이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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