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조4000억원.
이는 이달 기준 국내에서 발행된 ESG 채권(녹색 채권, 지속가능 채권, 사회적 채권)의 상장 잔액으로, 발행 기업은 110곳(중복 포함)이 넘는다. 2018년 산업은행이 국내 최초로 녹색 채권(그린 본드) 3000억원어치를 발행한 뒤 3년이 안 된 기간에 400배 이상 시장 규모가 커진 셈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전 세계 ESG(Environment 환경·Social 사회·Governance 지배구조) 채권은 발행 기준으로 상위 10위권 국가(미국, 독일, 프랑스, 중국, 일본, 한국 등)에서만 그 규모만 이미 1700조원이 넘었다. 엄청난 자금이 ESG 금융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ESG 채권은 시장의 자율규제와 관련 원칙에 의해 발행된다. 일반적으로 ICMA(국제자본시장협회)의 녹색 및 사회적 채권 원칙을 활용하여 발행 및 인증 여부가 결정되는데, 이 기준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곳만 80개국 이상이다. 또 2000개 이상 기업이 ESG 채권 발행을 위해 이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기후채권기구(Climate Bonds Initiative·CBI)가 만든 기후 채권 기준(Climate Bonds Standard·CBS)도 시장에서 통용된다. 그 밖에 글로벌 금융사 및 신용평가사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기준도 있지만, 포괄적으로 활용되는 편이 아니다. 그 예로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와 영국 바클레이스(Barclays), 미국 스탠더드앤푸어스(S&P) 등이 개발한 그린 본드 벤치마크 지수(Green Bond Benchmark Index) 등이 있다.
현재 전 세계 대부분에서 ESG 채권 발행 기업이 사용하는 녹색 채권 원칙은 ICMA 소속의 13개 글로벌 금융사(JP Morgan, 씨티, 뱅크오브아메리카, HSBC 등)가 관련 집행위원회를 열어 제정했다. 덕분에 전 세계 금융시장의 민간 자율규제이자 공식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ICMA에는 각국 중앙은행도 참여하고 있지만, 이 기구의 주요 핵심기능은 민간의 글로벌 금융사들이 대부분 책임지고 있다. 이처럼 시장과 ESG 자금 흐름의 핵심은 금융기업이 선도하는 추세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에서는 정부 차원의 ESG 관련 규제와 제도도 금융분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EU는 오래전부터 ESG를 둘러싸고 금융시장 반응, 정부 규제와의 연동성을 검토해왔다. 이를 위해 2014년에는 평균 근로자 수 500인 이상, 매출 4000만유로 이상의 역내 기업에 비재무 정보 의무공시제도(Non-Financial Reporting Directive·NFRD)를 도입했고, 지난 3월부터는 역내 은행과 자산 운용사, 연·기금 등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지속가능금융 공시제도(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 Regulations·SFDR)를 실시하고 있다. 오는 2025년부터는 모든 상장사가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제도다.
유럽은행감독청(European Banking Authority·EBA)도 ESG 리스크에 대한 3대 공시 표준에 관한 협의서를 발표했고, 2023년 적용을 목표로 유럽 기업의 재무 및 비재무적 데이터를 공개하는 일원화된 정보공개 플랫폼인 ESAP(EU Single Access Point)를 추진하고 있다.
내년 중에는 녹색산업을 구분하는 EU 택소노미(taxonomy·분류체계)가 지역 한계를 넘어서는 법적 제도로 적용될 예정이다. 한국을 비롯한 EU와 거래하는 모든 국가의 기업이 이 분류체계와 연동되는 탄소세 등을 통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탓이다. 당연히 글로벌 기업 담당자는 이러한 제도 변화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하나, 일반적으로 쉽게 접근하고 이해하기에는 범위가 매우 넓고 그 내용은 세세한 편이다.
2018년부터 유럽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민간 전문가 그룹의 참여를 바탕으로 정립한 EU 택소노미는 기후변화 완화·적응 등 6가지 환경 목표를 제시하고, 3가지 판단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으로 인정하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TSC(기술선별기준)는 개별 환경목표에 기여하는 경제활동을 유럽표준산업분류(NACE·Nomenclature statistique des Activites economiques dans la Communaute Europeenn) 기준으로 제시하고, 경제활동별 SC(하나 이상의 환경목표 달성에 상당한 기여) 및 DNSH(다른 환경목표에 중대한 피해를 주지 않을 것) 판단을 위한 상세 기술기준(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을 설명하고 있다.
ESG 금융의 핵심은 글로벌 기준에 대한 접근이라 볼 수 있다. 또 이들 기준은 결국 유엔 SDGs(지속가능개발목표)와의 맵핑(연계)이 핵심이다. 약 8조7000억달러(약 9739조6500억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1위 블랙록을 비롯한 세계적 자산운용사의 투자 원칙도 이러한 글로벌 기준 및 유엔 SDGs와의 연계에 방침을 둘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내달 중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SDGs 연계 ESG 이행 우수기업 추천 리스트’인 GSL(Global Recommendation Statement List for Excellent Companies in ESG Implementation through SDGs Mapping)이 발표된다. 이 역시 이러한 글로벌 기준에 최적화된 가이드라인 및 기업 리스트로서 세계적인 기관투자자와 ESG 관련 기구에서 추천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기업의 ESG 경영에서 글로벌 금융 기준에 대한 이해가 더욱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김정훈 UN SDGs 협회 사무대표 unsdgs@gmail.com
*UN SDGs 협회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 지위 기구 및 국제자본시장협회(ICMA) ESG 채권 원칙 옵서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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