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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극단적 나르시시스트, 흔해서 두렵고 매혹적이어서 더 위험한”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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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23 07:30:00 수정 : 2021-06-22 1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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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전 남편을 죽이고 새 남편의 아이를 죽였다는 사건의 모티브만 가져온 것이고, 나머지 이야기는 모두 새로 창조한 것입니다. 이야기도 완전히 달라요. 불행을 제거했다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문학적인 질문을 가져온 것이지요.”

 

‘완전한 행복’을 위해 불행의 요소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극단적 나르시시스트의 파멸을 그린 장편 '완전한 행복'(은행나무)을 들고 2년 만에 돌아온 정유정 작가는, 작품의 집필 동기를 설명하다가 한 가지 주의를 당부했다, 눈을 반짝이며. 작품은 특정 사건에서 문학적 질문을 가져온 것일 뿐이고 완전히 새 이야기라고, ‘작가의 말’에서도 거듭 강조했다.

 

“그 ‘누군가’의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지면을 빌려 밝혀둔다. 이야기를 태동시킨 배아이긴 하나, 그 밖의 요소는 소설적 허구다. 플롯도, 인물도, 시공간적 배경도, 서사도.”(521쪽)

 

작품은 주인공 유나가 8세 때의 충격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극단적인 자기애에 빠져서 더 완벽한 행복을 위해 저지르는 악을 섬뜩하게 그린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나는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112쪽)

 

자신의 행복을 위해선 악행을 서슴치 않는 유나, 그의 무지막지한 행복 추구에 희생되는 주변 사람들, 불행의 운명에 내던져진 여동생과 남편, 딸 등등.

 

'완전한 행복'은 출간과 동시에 교보문고가 지난 18일 발표한 6월 둘째 주 온·오프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종의 기원'(10위), '7년의 밤'(21위) 등 그의 과거 작품도 다시 주목을 받았다.

 

압도적인 서사와 박진감 넘치는 속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몰입감. 독자들을 첫 페이지부터 포획해 마지막 페이지까지 빠르게 끌고 가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정 작가와 지난 16일, 서울 합정역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만났다. 인터뷰조차 열정적이었다.

―소설의 모티브나 계기는 무엇이었나.

 

“저는 보통 소설이 끝나기 2, 3개월 전부터 다음 작품은 무엇을 쓰겠다는 생각이 서는데, '진이, 지니'를 끝낼 즈음 쓰고 싶은 게 있었다. SNS가 활성화하면서 집단적인 자기애가 느껴졌다. 나를 과시하거나 자기애나 자존감을 거의 강박적으로 추구하고, 행복에 대한 강박증을 갖는 것 같더라.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불행이나 불운, 결핍이야말로 삶의 요소이고, 행복은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성과물이다. 인간은 행복이 아닌 생존을 위해 진화했다. 행복을 위해 진화된 게 아닌데, 왜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주입하려 할까. 이데올로기적으로도 그렇고, 출판물도 위로와 행복에 대한 환상이나 강박을 퍼붓고, 어머니들 역시 아이들에게 좌절감 없이 다 해주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린 시절 적절한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지 않으면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다. 좌절이 덮쳐왔을 때 쉽게 무너진다. 부모가 모든 것이 다해주었기에 타인도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이 불안하고 우려스러웠다. 특별한 과다 자기애, 행복에 대한 강박증을 이야기해야지 생각했다. 그때 ‘고유정 사건’이 터졌다. 순간적으로 영감이 매치되더라. 사람들은 저지른 죄 때문에 그녀가 무섭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대개 순하게 생겼더라. 수수하고 풀꽃처럼 예쁜 여자를 내세워 극단적 나르시시스트 이야기를 써보자고 생각했다.”

 

―극단적 나르시시스트는 어떤 존재인가.

 

“사람들은 자기애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보통 사람은 적당히 공격적이고 타인도 배려하기도 하는 중간쯤에 위치한다. 잘 난 사람이 있으면 가다가 엎어져버려라, 하고 생각하고 그 사람이 실패하면 고소하다거나 샘통이다, 하고 순간적으로 생각하는 건 정상이다. 너무 무너지면 어떡하느냐, 하는 생각도 한다. 반면 극단적 나르시시스트는 증오를 품는다. 굉장히 위험한 성격장애다. 사이코패스와도 다르다.(어떻게 다른가) 사이코패스는 정신질환이 아니고 타고 난다. 뇌 편도체가 일반인보다 작고, 자극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진다. 어지간한 일로는 놀라지 않고, 자극도 잘 받지 않는다. 강호순이나 조두순 같은 연쇄살인범이 사이코패스인 것은 살인이 재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살인은 성행위와 같다. 모든 연쇄살인은 성범죄다, 라는 말도 있는데, 그들은 살인 정도의 자극이 돼야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는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쉽지 않다. 자기애자는 사이코패스가 아니지만, 사이코패스는 대체로 나르시시스트다. 유아기 때 가정 관계에서 애착관계가 잘못되면 나르시시스트가 된다. 나르시시스트는 결혼도 할 수 있고 타인 감정을 느끼고 소통도 가능하다. 다만 자기중심으로 본다. 사람이 태어나면 자아가 없는데, 적절한 성장기에 나와 타인 구별을 하게 해야 한다. 어릴 때 부모가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것이 길어지면, 부모를 나를 돌봐주는 ‘나’로 인식한다. 타인과 나의 경계가 없다. 그러면 타인을 착취하고, 타인의 울타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간다. 남의 일기장도 막보고, 핸드폰을 막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 소설에서도 유나가 자기 방은 남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도 자신은 남의 방을 벌컥벌컥 문을 열고 들어간다.(그래서 작품 속에서 유나와 재인은 가족 문제에선 8세에 멈춰 있었던 것인가) 유나는 아이가 지배한 것이고, 재인은 전반적으로 성인의 정체성이지만 가족하고 연결되면 아기가 튀어나온다. 재인은 다만 그것을 깨가는 과정이다.”

 

대다수 생명은 어느 정도 자기애가 없을 수 없다. 문제는 자신만이 특별한 존재라며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고유성만 절대적으로 생각할 경우다. 타자 역시 가진 고유성을 인식하거나 존중하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할 때 위험한 나르시시스트가 된다고, 그는 ‘작가의 말’에서 지적했다. “그들은 사이코패스보다 흔하다는 점에서 두렵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지만 정작 자아는 텅 비어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며, 매우 매혹적이라는 점에서 위험한 존재다. 그들에게 매혹된 이는 ‘가스라이팅’에 의해 길들여지고, 조종되고, 황폐화된다.”(520쪽)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유나라는 악당이 실제 가능할까.

 

“처음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수면제만 먹여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아버지까지 죽이고 나니까 (살인이) 가볍게 된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고 죽인 것은 전 남편이 처음이었다. 차근차근 악을 쌓아 왔을 것이다. 자신에게 방해하는 것은 없애고, 불행하게 하고 거역하고 고통스럽게 만든 것을 없앴다. 첫 번째 남편을 잔인하게 죽인 이유는 남편이 귀찮게 굴어서 화가 난 것이다. 그때부터 폭주한 것이다.”

―마지막에 두 자매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너무 처연한데, 왜 그래야 했는가.

 

“언니 재인 역시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깨야 하는 게 필요했다. 애인도 뺏기고 착한 아이 콤플렉스 때문에 순응하고 살아온 것 아닌가. 아빠의 노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것이었고, 아빠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착하고 슬기롭게 어른스러운 맏딸로 자랐다. 똑똑한 아이였지만 여동생과 어머니 앞에서만 물렁텅이가 된 것이다. 여동생을 헤치면 안된다는 무의식에 깔려 있어서 죽이려고 달려드는 여동생을 방어하고 피하는 정도였다. 재인은 자기 안에 있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깨고 유나도 이겨야 했다. 처절하고도 끈질길 수밖에 없었다.”

 

―화자가 딸 지유나 남편 은호, 여동생 재인으로 바뀌어 가는데.

 

“'종의 기원'은 사이코패스의 내면을 보여준 소설이어서 1인칭이 필요했다. 이번 작품의 경우나르시시스트 내면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나르시시스트가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했을 때 타인의 불행과 겹치는 지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이나 사랑하는 가족이 받는 고통, 삶의 황폐화, 파멸을 보여주고 싶어서 3명의 시각을 교차해 보여준 것이다. 다만 스릴러에서 주인공 존재감이 없으면 맹탕이 된다. 세 사람이 주인공 유나를 조각하고 주인공의 존재감을 주는 것이 과제였다.”

 

―마지막까지 문장이 헐겁지 않는 것과 함께 곳곳에 자리한 유머도 눈에 띈다.

 

“제 유머를 알아줘서 고맙다. 애초에 제 성격이 낙천적이기도 하다. 남을 웃기는 것을 좋아한다. 무슨 말을 할 때 남들이 웃어주면 좋더라. 쓰면서 떠오르는 것도 있고, 언제 써먹어야지 하는 것도 있고.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이라도 유머가 없고 너무 진지하기만 하면 부담스럽더라. 중간에 픽하고 웃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유머가 필요한 부문이 있으면 열심히 생각한다. 독자가 웃어주는 것이 좋다. 이야기를 쪼이는 것만 하다보면, 독자는 탁 덮어버린다.”

 

요컨대 작품은 모든 존재는 행복할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타인이 불행해 진다면 그 타인의 불행에 대해 책임질 의무 역시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 성공한 듯하다. ‘작가의 말’에서 “한 인간이 타인의 행복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타인의 삶을 어떤 식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522쪽)고 강조한 이유일 터다.

 

1966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정유정은 기독간호학교를 졸업한 뒤 마흔 하나이던 2007년 낯선 세상으로 뛰어든 청소년들이 펼치는 파란만장한 여행을 담은 장편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09년엔 장편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어떻게 문학의 숲에 들어서게 됐는가.

 

“세계청소년문학상과 세계문학상을 타고 등단했을 때, 문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 늦은 나이에 등단했다고 화제가 됐다. 사실은 어릴 때부터 (문학에) 관심이 있었고, 어려서부터 (작가가) 꿈이었다. 어릴 때부터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책을 읽고 가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얘기를 들려주기 위해 다시 책을 많이 읽었다. 읽은 책을 생각하면서 제가 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때는 글 쓰는 능력이 없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돼야지, 하고 어릴 때부터 꿈을 꿨다. 책을 보면 글을 잘 쓰게 된다. 시골학교 저학년 아이가 호남예술제 등에 가서 장원을 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글쓰기 대표선수였다.”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2009년 어느 날, 그가 남편과 함께 아버지 집을 찾았다. 공무원이던 아버지는 딸과 사위 앞에 상자 하나를 꺼내놓았는데, 상자 안을 열자 그가 어릴 때 받은 상장이 가득. “우리 딸이 어려서부터 이렇다네,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이 아닐세.”

 

―작가가 되려면 당시엔 대개 국문학과를 갔는데, 왜 간호대를 간 것인가.

 

“어머니 때문이었다. 네가 남편에 기대지 않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직업을 가지고 네 인생을 살아라, 라고 어머니가 말해 간호대를 갔다.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고 큰 병원에 취직하면 평생이 보장되던 시대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광주보훈병원에 들어가서 간호사로 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9년간 일했다. 병원에 취직하자마자 어머니가 암으로 쓰러져 글을 쓴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어머니가 3년 투병 끝에 작고한 뒤 세 동생과 빚이 남았다. 아버지가 번 돈은 빚을 갚는데 쓰고, 제가 벌어서 동생들을 학교에 보냈다. 돈도 모으지 못했고, 생활이 되지 않아 커피 한잔 편하게 사먹지 못했다. 막내가 대학을 간 뒤 군 입대를 위해 휴학할 때까지 계속됐다. 결혼하지 않으면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 막내가 군대에 가자마자 결혼했다. 남편에게 열심히 돈을 벌어 집을 사면 전업 작가를 하겠노라고 했다. 집을 산 뒤 직장을 그만 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 국문과 친구들의 소설 숙제를 대신 써주기도 했고, 직장에 다닐 때에도 홀로 무수히 쓰고 버리는 습작을 하며 창작의 갈증을 풀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전했다.

 

2001년 봄, 정유정은 간호사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 안에 세워진 종탑은 두 가지였다. 신나는 모험 이야기, 겁나는 심리 스릴러. 등단 자체가 쉽지 않았으니.

 

“6년 동안 장편 공모전에 무려 11번이나 떨어졌다. 남편이 6년간 뒷바라지를 잘해줬다, 마치 고시생 뒷바라지하듯이. 끈질기게 글을 쓰다가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실 변기를 청소하다가 당선 전화를 받았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제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이었다. 나에게 설 땅을 만들어준 상이었으니까. 그땐 우리 집이 그냥 집이 아닌 것 같더라. 천당 같았다. 제 작품 속에 네 인생을 살라는 메시지가 꾸준히 들어 있는 이유다. (늦게 어렵게 등단하게 돼서) 문학을 떠받드는 자세로 글을 쓰게 됐다(웃음).”

 

등단작인 '내 인생의 스피링캠프'(비룡소)의 끝 ‘작가의 말’에는 당선 전화를 받던 당시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절박했던. “상을 받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으려 기를 썼다. 기대했다가 절망한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래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책을 읽던 중에 소식을 들었으면, 했다. 감사합니다, 우아하게 말하고 읽던 책을 마저 읽어야지, 했다. 그러나 막상 당선을 알리는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욕실 변기를 박박 문지르는 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어버렸다. 사실은 그게 내 본모습이다.”(388쪽)

 

그는 이후 장편 '7년의 밤'(2011년), '28' (2013년), '종의 기원'(2016년), '진이, 지니'(2019년) 등을 잇따라 펴냈다. 그의 작품은 영미권은 물론 유럽과 중국 등 해외 20여개 국에서 번역 출간됐고, 그 역시 대표적인 장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순문학과 하드 보일드한 장르문학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한다는 평도 있는데.

 

“당선됐을 때 선이 굵은 서사라고 호평도 받고 영화 판권도 팔리면서 관심을 받았는데, 다음 소설은, 되든지 안되든지,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작가들이 일상에서 비범한 이야기를 끌어내지만, 저의 경우 대중의 정서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소설, 예를 들면 철학적 이야기나 힐링이 되는 작품 등에는 흥미가 없었다. 많은 이들에게 운명이 뒤바뀌는 몇 번의 드라마틱한 순간이 있는데, 최선이 아닌 최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는 최악의 선택을 하는 사람에 관심이 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선택을 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파멸했든지 소중한 것이 잃었든지 등등. 그래서 '7년의 밤'을 썼다. 주인공은 최악의 선택을 했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지만, 자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인 아들을 지켰다. 극적이고 충격적인 것을 쓰려면 가장 적합한 장르가 스릴러였다. 추리 소설은 범인 찾기가 주제로 독자의 지성에 호소하지만, 스릴러의 경우 생존이 목적이기 때문에 범인을 다 보여줘도 상관없고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서스펜스가 주를 이룬다. 제가 쓰고 싶었던, 자기 외부에서 어떤 폭력적인 힘과 맞닥뜨렸을 때, 최악을 선택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이야기를 담기에 적합한 형식이 스릴러였다. 여기에 주제 의식도 있어야 하고, 메시지도 있어야 한다. 적어도 문학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런 것을 구축하기 위해선 문장력이 있어야 하고, 짧고 속도감도 있어야 한다. 제가 택한 것은 아름다운 문장을 버리는 대신 정확성과 간결성, 속도감이었다. 미학적인 문장보다는 간결하고 정확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을 택한 것이다. 결국 문학적인 주제의식이나 문체를 바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스릴러 형식을 차용하기 때문에 스릴러를 잘 쓰는 작가라 하는 것 같다. 취향 때문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부합하기 때문에 실용적으로 스릴러를 택한 것이다.”

 

―그러면 순문학과 스릴러의 결합쯤 되겠다.

 

“해외에서 판권이 많이 팔려나갔는데, 유럽과 미국의 반응이 다른 것 같더라. 독일과 프랑스 등에선 스릴러와 문학 중간에 서 있는, 문학적 기반 위의 스릴러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유럽에서 문학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해서 '진이, 지니'가 번역 출간됐다. 인터뷰할 때도 문학의 근원을 묻는 등 문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반면 미국에서는 독특한 스릴러를 쓰는 작가로 위치 짓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 미국쪽 인터뷰를 보면 소설 속 요소들에 대한 질문이 많다. 영어권으로 '종의 기원', '7년의 밤'만 번역 출간됐다. '완전한 행복'은 책 나오기 전에 원고를 보냈다.”

 

―철저히 취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최대한 자료 정리와 전문가 인터뷰, 현장 답사 등을 한다. '완전한 행복'의 경우 몇 달 동안 책을 읽고 노트를 정리했다. 책을 사서 노트 정리하는 이유는 장편은 긴 세월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책만 읽으면 1주일도 (기억이) 가지 않지만, 노트로 옮겨 정리해 놓으면 손가락이 기억하고, 노트만 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 자료를 만드는데 4개월 정도 걸린다. 그 다음 전문가를 만난다. 경찰이 신문하는 모습이나 변호사들이 대응하는 방법 등은 배상훈 프로파일러, 약의 효능은 전대 의대 교수, 기자의 일상에 대해선 문화일보 최현미 부장 등이 각각 도와줬다. 이어서 지난해 1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3박4일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호수를 보는 등 작품 무대가 되는 곳을 보고 왔다.”

―집필은 어떻게 하는가. 끝까지 글의 밀도가 떨어지지 않아 거의 갈아 넣은 듯하다(웃음).

 

“소설을 쓸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공간 구축이다. 제 서재에 큰 지도에 있는데, 지도를 펼쳐놓고 쓴다. 공간이 만들어지면 인물을 어디에 세워야 할지 계산이 나온다. 그런 다음 초고는 최대한 빨리 3개월 안에 다 써야 한다. 나중에 초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시작과 끝만 남기고 나머지 90%는 수없는 수정에 의해 고쳐진다. 뼈만 놔두고 다 고친다. '내 심장을 쏴라'는 30번도 넘게 고쳤고, '7년의 밤'은 17, 8번 고쳤다. 초고를 빠르게 쓴 뒤 1년 넘게 작품에 (나를) 갈아 넣는다. 결국 작품이란 수십 번의 개작 대가이다. 제가 운동을 많이 하는 이유다. 끈질기게 앉아 있으려면 잘 먹고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돼지’가 돼야 한다.”

 

―특히 정유정 스타일은 속도도 굉장히 빠르지만 몰입도도 굉장히 높은데, 비결은 무엇인가.

 

“첫째는 문체다. 간결하게, 정확한 문장이 필요하다. 문단 자체가 노래 부르듯이 안 걸리고, 눈앞에 보이듯이 쭉 읽혀야 한다. 둘째는 플롯이다. 에피소드가 너무 많으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에피소드를 가급적 줄이고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사건을 쭉 이어준다. 에피소드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있으면 보탬이 되지만, 소설이 뚱뚱해 주저앉을 위험이 있다. 사건을 주요 골격으로 가지고 플롯을 짜면 속도가 빨라진다. 주인공이 행동하지 않고 에피소드로 ‘알’만 낳으면 곤란하다. 이야기는 많이 한 것 같은데 하나도 진전되는 것도 없고 뭔 얘기를 하려는 거야, 하게 된다. 주인공의 인생이 달라져 있어야 한다. 다만 손에 잡히도록 묘사를 잘해서 속도감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건 아니다. 묘사가 길어지면 속도감이 오히려 줄어든다. 적당한 묘사가 굉장히 중요하다. 포인트를 주는 묘사, 중요한 묘사는 길게 해야 한다. 빠른 것도 중요하지만 몰입도 중요하다. 결국 사건 위주로 소설을 진행시키느냐, 정확하게 쓰느냐, 두 가지에 달려 있다.”

 

―작업은 보통 어디에서 하는가.

 

“집 안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쓴다. 서재에서 썼다가, 아들이 서울에 있으니까 아들 방에 가서 썼다가 한다. 거실에도 큰 책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쓴다. 남편은 침대밖에 없다(웃음).”

―어떤 작가로, 어떤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수도 없이 말했지만, 다른 수식어는 반갑지 않고 그냥 이야기꾼으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장래 희망 역시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다음 소설은 SF에 가까운 아포칼립스(종말) 소설을 생각하고 있다. 욕망에 관한 이야기 3편을 쓸 예정인데, '완전한 행복'은 행복의 욕망이고, 다음은 소유에 대한 욕망을 다루고 싶다. 욕망 3부작을 끝내는 게 목표이다.”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인터뷰 역시 진지했던 그는 이야기가 끝났을 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목이 아프네요.”

 

사무실을 나서며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자, 문뜩 그의 원점이던 책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를 읽고 싶었다. 집 근처 서점에서 사서 펼쳐보니, ‘작가의 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소설가로서 내 꿈은 진짜 꾼이 되는 것이다. 그 옛날, 이야기 하나로 저잣거리에 모인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고 분노케 하던 만담가는 내 인생의 롤 모델이다. 물론, 원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래도 해보지 않고는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이다. 돌아갈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겠지만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390쪽)

 

‘만담가’라는 그의 꿈은 ‘훌륭한 이야기꾼’으로 여전히 펄펄 끓고 있었다, 화난 얼굴로 열기를 뿜어내는 저 태양 아래에서, 건물 사이를 배회하며 시위를 벌이는 이 뜨거운 바람 사이에서. 그래서였을까, 기자는 녹취를 풀면서 땀을 흘려야 했다, 뻘뻘.(2021.6.23)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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