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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지장 지정’ 멀리 봐야 한다

입력 : 2021-06-18 19:58:39 수정 : 2021-06-18 19: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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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안타깝게도 전통한지가 없다. 전통한지를 생산한다는 곳을 찾아가 조사해 봐도 전통한지 기법을 아는 이는 없다. 그러다보니 ‘진정한 전통방식’으로 생산하는 곳도 단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한지장 심사는 진행되고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는 지정된다. 최근에는 문화 예술계에서 한지를 세계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해야 한다는 운동이 시작됐다. 한지의 특성이 세계유산으로서 “등재 가치는 차고 넘치며 내용도 이미 다 돼 있다”고 장담한다. 그러면서도 한지가 어떤 점이 우수한지, 그 전통은 어느 시대부터 전승되어 한국 고유의 제지법으로 정착한 것인지에 대한 고증은 없다. 또 전통한지가 기록에 전하는 것처럼 최고의 내절강도-접었다 폈다를 반복했을 때 견디는 강도-를 갖는 것인지에 대한 근거나 실험 결과도 찾을수가 없다. 한지를 세계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는 일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 고유의 독특성을 지닌 한지에 대한 기록과 고려· 조선시대 최고 정점에 이르렀던 수준의 한지를 생산에 낼 수 없다면 자칫 국제망신을 당할 우려도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진정한 전통한지’와 현재 생산되는 전통한지는 엄연히 다르다. ‘진정한 전통한지’의 질은 고해(叩解)작업부터 다르다. 잿물로 삶아 세척한 닥을 방망이로 두드려 섬유와 섬유 사이에 마찰을 일으키고 찢어 잔가지와 솜털을 생성시키는 이 작업은 한지 특유의 밀도와 통기성을 창조한다. ‘진정한 전통한지’의 고해 비법을 알고 이행하는 장인은 찾기가 쉽지 않다. 그 다음은 종이를 뜨는 초지(抄紙) 기술이다. 초지를 마쳐 건조한 종이는 섬유의 방향성이 없어야 한다. 방향성이 없는 종이는 가로 세로에서 줄고 느는 정도가 거의 없고 사방 모두 질긴 특성을 가져 잘 찢어지지 않는다. 방향성이 없으면서 질기고 뛰어난 보존성을 갖게 하는 것은 한지 고유의 양보할 수 없는 기술이다.

김호석 수묵화가

마지막은 가공이다. 중국과 일본에 없는 이 기법은 한국만의 고유한 특성이다. 닥 섬유는 장섬유의 특성으로 인해 섬유와 섬유사이에 수많은 기공이 형성되어 있다. 이 구멍을 좁히고 메워 인쇄에 최적의 조건을 형성한 제지 과정과 표면처리기술은 가히 우리만의 세계 최고 기술력이다. 이 기술이 고려와 조선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조선시대 기록물과 서화 작품에선 먹이 번지는 현상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맑고 투명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는 바로 ‘도침 기술’ 때문이다. 이런 고유의 독특성을 가진 한지는 고려, 조선시대 유물로만 전할 뿐 현재 단 한 장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전통한지’는 어떻게 사라졌는가. 일제강점기에 일본 화지제지법이 수용되면서 한지제지법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지 고유의 재료와 원료처리 공정과 다양한 초지법이 사라졌다. 한지 특유의 표면 가공처리법도 자취를 감췄다. 1953년 이후 전통적인 초지법조차 발틀에 끈이 매달린 생산성 위주의 초지법으로 바뀌면서 전통한지는 사라졌다.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외발 뜨기는 전통적 근거가 없다. 종이 한 장은 한 장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 장으로 만들지 못하는 모순과 부족한 기술력을 감추기 위해 위와 아래의 두께가 다른 종이를 서로 뒤집어 합쳐 한 장으로 만드는 것이 지금 정부에서 외치는 세계적(?) 전통 방식이다.

 

필자는 정부가 제 역할을 해주길 당부한다. 사라진 전통을 복원하기 위해 기록을 찾고, 그 기원의 끝점을 찾아 재현과 복원이 가능한지 검토해야 한다. 원천기술을 연구하여 잘못된 사이비 전통을 바로잡을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지금 우리 전통문화는 한국 고유의 얼을 되찾으려는 노력은커녕 왜색으로 물든 기술이 마치 전통인 것처럼 알고 있는 일부 전공자의 무지에 의해 송두리째 망가지고 있어 개탄스럽다.

 

김호석 수묵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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