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힘을 지니지 못한 보통사람은 유리처럼 투명한 월급봉투 무게대로 부과된 세금을 꼬박꼬박 내야 한다. 반면 세계 부의 절반 이상을 갖고 있다는 ‘상위 0.1% 슈퍼리치’들은 자격증으로 무장한 전문가 도움을 받아 재산을 숨기거나 도피시켜 응당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줄이거나 벗어나고 그 몫은 다시 보통사람들이 나눠서 지게 된다.
극단 드림플레이 신작 ‘자본2 : 어디에나, 어디에도’(사진)는 이처럼 첨예하나 정작 피해자인 대중은 좀처럼 인식하기 쉽지 않은 글로벌 금융자본 폐해를 일깨우는 다큐드라마다. 전작 ‘알리바이 연대기’와 역시 경제문제를 다룬 ‘자본1: We are the 99%!’에서 감칠맛 나는 전개로 보는 이를 사건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는 흡입력을 보여줬던 김재엽 극작가·연출가가 다시 한 번 이야기꾼으로서 실력을 보여줬다.
무대는 ‘파나마 페이퍼스’와 ‘코펜하겐 경영대학원 브룩 해링턴 교수의 자산매니저 연구’, 그리고 ‘시리아 난민 사태’라는 세 가지 실화를 촘촘하게 엮는다. 실제 사건 전개에 충실한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면서도 익명의 제보자 ‘존 도’ 정체를 추리하는 가상의 스토리를 넣어 긴장감을 높였다. 이를 통해 슈퍼리치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기만하는지, 그 여파로 시리아 난민 같은 피해자가 생겨나는지 좀처럼 실마리 잡기 쉽지 않은 자본 이동의 흑막과 여기에 얽매인 인생들 간 인과관계를 보여준다.
2016년 세계를 뒤흔들었던 조세회피처 파나마의 로펌 ‘모색 폰세카(극中 모저 폰타나 다이너스티)’ 기밀 문건 폭로(파나마 페이퍼스). 그러나 잘 알려진 이 사건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건 코펜하겐 경영대학원에서 경제사회학을 전공하는 로사 교수와 그의 조교 댄비 이야기다. 로사 교수는 ‘세계 경제 불평등’을 연구하는 사회학자. 갑부들을 돕는 자산관리사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2년을 공부해서 자산관리사 자격증까지 획득했을 정도다. 조세회피처까지 날아간 로사 교수와 조교 댄비는 각종 자격증으로 무장한 자산관리사와 변호사, 회계사 등이 어떻게 세계 부를 독차지한 이들의 재산 증식을 도와주는지 그 실체를 보게 된다.
다큐드라마인 만큼 무대는 영상을 적극 활용한다. 독재정권은 글로벌 자본의 도움으로 국제사회 제재를 피해 쌓은 부를 전쟁에 동원한다. 퍼붓는 포화가 덮친 시리아에서 생겨난 난민은 망망대해까지 떠내려간다. 참혹한 그들의 피난길은 무대 뒤편을 화면 삼은 영상으로 실시간 전송된다. 뉴스 화면 속 나라 밖 소식에 둔감했던 이들도 뉴스와 현실이 합쳐진 참상에서 눈을 돌릴 수 없다.
외딴 섬나라에 막대한 부를 도피시켜 세금을 피하는 슈퍼리치를 다루지만 정작 그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슈퍼리치를 위해 일하는 변호사·회계사 등 전문 자격증 집단,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파헤치는 저널리스트와 학자에 시리아 난민이 등장할 뿐이다. 이를 통해 ‘자본2’가 강조하는 건 ‘공동체’의 복원이다. 김재엽은 “상위 1% 자본가들은 바뀔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들을 위해 일하면서 수수료를 받는 사람들은 다르다. 전문가 집단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국가가 자격증을 보증해주고 국민이 믿어줘서 ‘선생님’ 소리 듣고 사는데 이런 이들이 국가나 국민을 배신하면서 1%를 위해 일해서 되겠는가.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서울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6월 6일까지.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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