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이 생각하는 고급 술의 대명사는 무엇일까? 아마도 ‘위스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 위스키는 어떠한 배경 속에서 여기까지 왔을까.
위스키는 곡물로 만든 증류주다. 증류주는 발효주를 열로 끓여 만든다. 즉, 위스키의 시작은 발효주였고, 그 당시 발효주는 맥주였다. 이러한 증류 기술은 서기전 1세기 전후로 등장한다. ‘증류기술소사(A Short History of the Art of Distillation)’라는 역사서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에서 증류했다고 기록돼 있다. 6세기 전반 중국 위진남북조시대에 쓰인 중국 최고(最古) 농업 서적 ‘제민요술(齊民要術)’에도 증류한 술을 화주(火酒)라고 언급했다.
본격적인 위스키의 시작은 1144년 이슬람 연금술을 번역한 ‘연금술 구성의 서(Book of the Composition of Alchemy in Europe)’가 유럽에 발간된 이후로 추정된다. 당시 유럽은 십자군전쟁이 활발할 때. 예루살렘을 침략한 십자군 원정대가 해당 서적을 유럽으로 가지고 왔고 이후 위스키가 알려진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위스키는 성직자 또는 연금술사가 만드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그래서 위스키를 비롯한 증류주는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치료제로 쓰인다.

위스키(Whisky)는 생명의 물을 뜻하는 켈트어 ‘위스커 바하(uisge beatha)’에서 나왔다. 의역하면 ‘몸을 살리는 약주(藥酒)’로, 위스키의 시작은 약주였던 것이다. 잉글랜드 중세 신학자 로저 베이컨(Roger Bacon)도 증류주(위스키)는 몸을 풀어주고 장수할 수 있게 한다고 기록했다.
그래서 최초의 위스키 허가는 의사에게 주어졌다. 1506년 영국의 제임스 4세로, 당시 이발사이며 외과의사 조합에 증류주 독점권을 내준 것이다. 이로 인해 연금술사와 수도사들이 만든 위스키가 의사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마법에서 과학으로, 신의 손길에서 인간의 기술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참고로 조선시대 궁중에서 소주 및 증류주를 만들던 기관이 있었다. 수라간이라고 생각되지만 아니다. 바로 궁궐의 건강을 책임지는 내국, 내의원이다. 조선에서도 의료기관에서 위스키와 같은 증류주(소주)를 내렸던 것이다.
위스키가 상용화되니 원료인 곡물이 부족해져 기근에 대한 우려가 생겼다. 그래서 나온 것이 16세기 말에 발포된 금주령이다. 하지만 위스키는 귀족 및 신사 계급 이상은 만들 수 있고, 또 마실 수 있었다. 우리 역사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세종실록’에 보면 탁주를 마신 서민은 잡히고, 청주를 마신 양반은 잡히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독일 역시 1517년 맥주 순수령 발포 시 서민에게는 보리맥주만 허용한 반면 귀족들은 밀맥주를 마실 수 있게 했다.
결국 가진 자를 위한 법, 무전유죄·유전무죄와 같은 모습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금주령은 1644년까지 이어지는데, 이때 정부가 생각을 달리한다. 바로 이 증류주가 부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임을 안다. 바로 주세, 세금이었다. 이때부터 술에 세금이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한다. 드디어 술이 세금을 짜내는 도구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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