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노래 새롭게 들려주려 편곡
곡 많아 우선 3집까지 ‘알짜’ 담아
20대 초반 불평·불만 담긴 노래들
어쿠스틱 기타·피아노 선율 입혀
묵직한 랩 벗어나 밝아지고 경쾌
나이 먹으니 여유 갖고 즐기게 돼

요즘 힙합에는 돈이나 자동차, 집 등 재력을 자랑하는 ‘스웨그(Swag)’가 대세이지만, 1990∼2000년대에는 감미로운 멜로디에 연인, 사랑, 이별 등 감성을 노래한 ‘감성 힙합’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MC 스나이퍼는 이들과 달랐다. 감성 힙합도, 스웨그도 아니었다. 멜로디는 감미롭지만, 가사는 단순히 사랑 등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현실을 직설적으로 비판했고, 은유적으로 세태를 풍자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감성을 어루만졌다. 삶이 힘들 때 시집 한 권 읽고 마음의 안정을 얻듯이 그의 노래를 듣고 편안을 가졌다. 그의 노래는 가사만 따로 적으면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았다. 그래서 그는 ‘힙합계의 음유시인’으로 불렸다.
그런 그가 지난 11일 자신의 대표곡을 들고 돌아왔다. 리메이크 앨범 ‘크로니클스(Chronicles)’다. 앨범에는 정규 1∼3집 중 ‘BK LOVE (Feat. 이해리)’, ‘기생일기 (With 유월)’, ‘뉴욕 스타일’, ‘So Sniper’,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Could Be Luv’, ‘나의무덤’, ‘Baby don’t cry’, ‘Gloomy Sunday (With 나은정)’, ‘신의시 (Feat. BK)’, ‘Puregal (Feat. 소낙별)’, ‘Seoul Station’, ‘대화’, ‘BK LOVE (Feat. 하진)’까지 14곡이 담겼다.
“6집까지 편곡은 우선 다 했는데, 앨범 하나에 담기에는 생각보다 노래 수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우선 3집까지만 이번에 담고, 4∼6집은 다음에 발표할 것 같아요. 선곡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스나이퍼는 이번 앨범이 의도했던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튜브에 기존 노래를 새롭게 들려주기 위해 편곡을 시작했던 것”이라며 “유튜브 영상이어서 편안한 마음에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앨범에서 멜로디나 랩 스타일은 기존 MC 스나이퍼 스타일과 다소 달랐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어쿠스틱 기타’였다. 기존 MC 스나이퍼는 피아노 음을 기반으로 강렬하면서도 묵직한 랩으로 노래를 꾸몄다. 이번 앨범에서는 피아노와 더불어 어쿠스틱 기타 선율까지 더해져 멜로디가 밝아지고 경쾌해졌다. 랩도 이에 맞춰 변했다.
“과거 곡을 발표했을 때는 20대 초반이었는데, 그때는 세상에 대해 많은 불만과 불평을 가지고 있었어요. 노래에도 그런 마음이 담겼죠.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 좋아요. 저도 나이를 먹으면서 많이 바뀌었죠. 그냥 즐겁게 살고 있어요.”

이런 변화에 일부 팬들은 ‘저격형(MC 스나이퍼 애칭) 스타일이 아니다’며 아쉬워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MC 스나이퍼는 “예전 버전이 좋다면 그걸 찾아서 들으면 된다”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리메이크를 시작했던 게 아니라, (혹평을 받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MC 스나이퍼 노래에는 피처링에 참여하는 보컬진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앨범에는 소낙별, 하진, BK 등 MC 스나이퍼와 인연이 있던 보컬을 비롯해 여성듀오 다비치의 이해리가 함께했다.
“타이틀곡 BK LOVE 피처링을 부탁하려고 주변 분들께 도움을 요청했는데, 제가 너무 오래 쉬었기 때문인지 다 거절당했어요. 그러다가 ‘혹시’ 하는 마음으로 이해리씨에게 연락드렸고, 흔쾌히 해주신다고 하셨어요. 너무 감사했죠.”

이해리는 피처링은 물론이고 유튜브 영상 촬영까지 함께했다. MC 스나이퍼 개인 채널에 공개된 해당 영상에서 MC 스나이퍼와 이해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 마지막에는 서로 ‘짱’이라고 응원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번 앨범은 유튜브 영상 제작이라는 가벼운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론 정규 3집까지 알짜를 모은 베스트 앨범과 같다. 그런데도 노래는 음원으로만 공개했다. ‘피지컬(실물) 앨범 제작 계획은 없다’고 말했던 그는 인터뷰 도중 “그럼 LP로 주문 제작해볼까”라며 마음을 바꿨다. MC 스나이퍼는 “유튜브 등을 통해 피지컬 음반으로 제작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며 “하지만 LP로 주문 제작하는 건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자꾸 일이 커진다”고 말했다.
MC 스나이퍼는 올가을에는 아내와 두 아들, 반려견을 이야기한 ‘가족’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다. 4∼6집이 담긴 ‘크로니클스 2’는 내년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정확한 건 아니다.
“인생 편안하게 대충 삽시다. 열심히 산다고 더 잘 되는 것도 아닌데, 좀 안 될 때는 한발 물러서서 여유를 가지세요. 될 건 되고 안 될 건 안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저처럼 여러분도 대충 삽시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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