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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소풍을 즐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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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05 08:57:33 수정 : 2021-05-05 08: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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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이다. 봄꽃이 만개한 아파트 인도 변에 퀵보드 하나가 서 있다. 아마 어젯밤에 어떤 아이가 놀다가 그냥 두고 간 듯했다.

 

문득 유년 시절의 풍경 한 토막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아이들이 동네 공터에서 뛰어놀고 있다.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으라고 부르면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다. 철수가 가고 영희가 가고 마지막 남은 길동이도 떠난다. 공터는 검은 공기와 고요에 젖는다.

 

아이들이 떠나는 장면은 삶의 마지막 모습과 흡사하다. 황혼의 나이에 접어들면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신의 부름에 속절없이 응해야 한다. 인도 변에 덩그러니 남겨진 퀵보드처럼 애지중지하던 물건들도 그냥 두고 떠나야 한다.

 

저승으로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빈손으로 세상에 왔듯이 빈손으로 떠나야 한다. 권력과 영화를 누린 황제들도 결국엔 빈손이었다. 죽을 때 입는 수의에 주머니를 만들지 않는 이유이다.

 

알렉산더는 임종을 앞두고 신하들에게 이렇게 명했다. “나를 장례식장으로 옮길 때 관 바깥으로 두 팔이 나오게 하라.” 깜짝 놀란 신하들이 연유를 묻자 황제가 대답했다. “인간은 누구나 빈손으로 죽는다. 그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분명히 깨닫게 하라.”

 

알렉산더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었지만 모두 빈손의 진리를 망각한다. 숨이 멈출 때까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삶을 탕진한다. 죽음이 자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아등바등한다. 심지어 죽음조차 부인하고 거부한다. 마치 더 놀고 가겠다고 엄마에게 떼쓰는 아이들처럼.

 

어른들은 아이들의 놀이에서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놀이에 집중한다. 퀵보드 타는 아이는 퀵보드를 타고, 놀이터의 아이는 재잘거리며 미끄럼틀을 오르내릴 뿐이다. 엄마가 자기를 부를까봐 걱정하는 아이도 없고, 밀린 숙제로 불안해하는 아이도 없다. 아이와 놀이는 언제나 한 몸이다.

 

천상병 시인은 삶을 소풍에 비유했다. 소풍의 느낌은 즐거움이다. 삶이 소풍이라면 즐겁고 기쁘게 보내야 한다. 물론 소풍에서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다. 아끼던 물건을 잃을 수도 있고, 넘어져 다친 경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삶 역시 그렇다. 긴 인생을 살면서 몸과 마음이 아픈 간난신고(艱難辛苦)가 왜 없겠는가. 하지만 힘든 이승도 저승보다는 낫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를 바란다. 그런데 만약 누가 지금 그곳으로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한다면 선뜻 따라나서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갖춰진 천국도 죽어서 가고 싶지, 살아서 당장 가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행복은 이승에 있다.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이 기쁨이고, 파릇파릇 돋는 나무의 새싹이 환희이다. 오늘이 소풍 가는 날이다. 아이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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