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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같은 형…동생과 밝은 미래 꿈꾸는 청년의 이야기 [김기자와 만납시다]

입력 : 2021-05-05 08:00:00 수정 : 2021-05-04 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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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KBS ‘동행’에서 방송된 ‘건호-진우’ 형제의 사연 / 유일하게 의지할 존재는 서로뿐인 형제 / 입대로 동생과의 이별 준비했던 형의 일상은 어떻게 바뀌었나
지난 1일 강원도 춘천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건호(24·사진)씨는 여느 20대 청년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지만,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동생 진우(15)군에게 세상에서 하나뿐인 보호자이자 때로는 아버지의 역할까지 해내는 매우 든든한 형이라는 사실이다. KBS ‘동행’ 영상 캡처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린 탓에 봄의 한복판인데도 날씨가 다소 쌀쌀했던 지난 1일.

 

이날 강원도 춘천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건호(24)씨는 여느 20대 청년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도내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그는 졸업을 앞두고 있으며, 취업을 위해 열심히 준비 중이라고 기자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겉으로는 보통의 청년이지만 그에게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건호씨는 동생 진우(15)군에게 세상에서 하나뿐인 보호자이자 때로는 아버지의 역할까지 해내는 매우 든든한 형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기댈 곳은 서로뿐…입대 앞두고 동생 보육원 알아보기도

 

앞서 ‘건호-진우’ 형제의 사연은 지난해 7월 방송된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동행’에서 먼저 알려졌다.

 

11년 전 교통사고로 엄마를 여읜 형제는 아빠마저 집을 나갔고, 이들을 보살펴주던 외고모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세상에서 기댈 곳이 서로뿐이다. 아버지와는 연락이 아예 끊겨 어떻게 살아가는지조차 지금도 알 길이 없다고 한다.

 

건호씨는 2016년 신체검사에서 현역입영대상 판정을 받았다.

 

외고모할머니의 별세로 실제 형제들의 보호자는 없지만, 당시 가족관계증명서 등 서류상에는 집을 나간 아버지가 여전히 법적 보호자로 되어 있어서 이러한 판정이 나온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그러던 중 건호씨는 2019년 9월 중순, 아버지가 ‘거주지불명’ 등록 1년이 지난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군면제 관련 문의를 했지만 당국은 확신을 주지 못했고, 건호씨도 ‘군대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동생과의 약 2년의 이별을 준비하던 중 이들의 사연이 방송을 탔다.

 

방송에서는 잠들기 전, 보육원 다녀온 사실을 동생에게 이야기하는 건호씨의 모습도 등장했다.

 

건호씨가 무거운 마음을 안고서도 보육원을 알아봤던 건, 입대 후 홀로 남게 될 동생이 조금이나마 안전한 곳에서 지내기를 바랐던 이유에서다.

 

보육원 알아보러 다녀왔다는 건호씨 말에 진우군은 “응”이라 짧게 답했고, “시설도 괜찮고 밥도 잘 나와”라는 형의 이야기에는 “(보육원에) 안 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가야지”라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반응해 시청자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당분간은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다는 것과 형의 마음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갈 수밖에 없다면 가야지’라고 괜찮다는 듯 답했지만, 속으로 먹먹했을 동생의 마음은 더 짐작할 것도 없다.

 

나아가 진우군이 들어갈 보육원을 알아본다는 자체가 건호씨에게는 속이 타들어가는 일이었을 거다.

 

동생에게는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막막함을 안겨주는 거고, 본인에게는 동생에 대한 커다란 미안함이 물밀듯 밀려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KBS ‘동행’에 나왔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중인 건호씨의 모습. KBS ‘동행’ 영상 캡처

 

◆병무청에서 날아온 군면제 통보…밝은 미래 준비하는 형제

 

방송 후,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형제의 일상은 다소 달라졌다.

 

병무청이 지난 3월 면제 판정을 통보하면서, 건호씨는 동생을 남겨둔 채 자리를 비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함께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자신의 취업과 함께 내년이면 고등학교에 진학할 동생도 잘 이끌겠다는 이정표를 세우면서 자신감도 되찾았다.

 

이러한 소식이 오기 전까지는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어서, 마치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았던 게 연락받기 전까지 건호씨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형의 이야기를 들은 동생 반응은 어땠을까.

 

인터뷰에서 건호씨는 “(병무청에서 연락이 온 뒤) 동생에게 ‘형이랑 같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더니 (진우가) 혼자 씩 웃고 말았다”며 “함께 더 좋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진우군은 평일에는 기숙사에 있어서 형제는 주말에 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건호씨는 이 시간의 대부분을 동생의 미래 준비에 활용한다.

 

동생이 가고자 하는 길을 선택하려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학업수준을 갖춰야 한다는 게 건호씨 판단이어서, 진우군이 공부에 흥미를 잃지 않게 돕는다.

 

아울러 건호씨는 “동생에게 꿈을 찾아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며 “좋아하는 과목과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조언한다”고 말했다.

 

동생만 공부시키고 흐트러질 수 없어서 건호씨도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 2월에는 한국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토익 등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으려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내년 공기업 입사를 목표로 하는 건호씨는 취업 후 여유가 생기면 동생의 대학 진학에도 도움이 많이 되어주겠다며, 언젠가는 동생과 함께 여행도 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건호씨의 굳건한 취업 성공 의지에는 좋지 않은 경제적 여건을 이유로 동생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형이자 보호자로서의 마음이 가장 크게 들어있다.

 

어머니의 기일에 맞춰 형제가 준비했던 음식. KBS ‘동행’ 영상 캡처

 

◆‘왜 우리 낳았어’ 때론 엄마 원망도…동생 이끌고픈 의지 거듭 다져

 

이날 만난 건호씨는 인터뷰 내내 밝은 모습이었지만, 사실 과거에는 힘들었던 시간도 적지 않았다.

 

특히 자기와 동생을 남기고 사고로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정말 힘들었던 날에는 ‘왜 우리를 낳았어’라며 울분을 토했고, ‘나도 평범한 집에서 크고 싶고, 부모님 사랑받으며 살고 싶어’라는 생각에 속도 많이 상했다.

 

하지만 원망을 이제는 떨치고, 엄마가 어디선가 동생과 자기를 지켜볼 거라는 믿음을 발판 삼아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건호씨는 거듭 다진다.

 

건호씨에게 진우군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때로는 속마음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다.

 

그는 ‘동생은 형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아마 저를 아버지와 형의 중간쯤으로 생각할 것 같다”고 답한 뒤, 동생이 어긋나지 않고 잘 성장하게 해주고 싶다면서 자기에게 의지할 수 있게 이끌고픈 마음이 크다고 덧붙였다.

 

외출하기 전, 동생을 위해 건호씨가 준비한 음식. KBS ‘동행’ 영상 캡처

 

한편, 지난해 형제의 이야기가 방송된 후, 전국 각지에서 밀려든 후원금에 건호씨는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거듭 인사했다.

 

이어 “더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해주셔서, 도와주신 분들을 직접 찾아뵙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이라며 “취업 후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이들을 본다면 돕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춘천시청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계속해서 마음을 써준 관계자들에게도 연신 고마워했다.

 

동생 앞에서는 든든한 버팀목이지만 건호씨는 법과 제도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무기력함을 느낀 적이 많았다.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많을 것 같다면서, 복지의 사각지대를 향한 당국의 적극적인 관심을 그가 요청한 이유다.

 

건호씨는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고,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하다 입대하는 등의 사연도 많은 것으로도 알고 있다”면서, 먼저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나서지 않는 이상 사회적 약자가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는 법·제도 측면에 대한 아쉬움 언급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춘천=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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