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내 불신·반목만 심화시켜
사법 신뢰 추락 책임 잇단 지적
수장 자리, 막중한 무게감 느껴야
일주일 전 천대엽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김명수 청문회’를 보는 듯했다. 국민 누구나 동의할 만한 사법부의 신뢰 추락에 김명수 대법원장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천 후보자는 자신을 대법관 후보로 제청한 대법원장과 관련해 비판적인 질의가 나올 때마다 곤혹스러운 답변을 해야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신뢰로 존립할 수 있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많이 멀어졌다는 것을 여러모로 체감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청문회를 마친 후에는 “사법부와 대법원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 대법관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게 됐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이 이날 청문회를 지켜봤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뜨끔하지 않았을까. 2017년 9월 26일 취임할 때 “국민으로부터 진심으로 사랑받고 신뢰받는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도록 통합과 개혁의 소명을 완수하는 데 모든 열정을 바칠 것”이라고 다짐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를 더욱 망가뜨렸다는 평가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벌어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사법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대법원장 자리에 올랐다. 전임자와 비교해 사법연수원 기수가 13기나 아래인 데다 대법관 경험도 없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파격적인 지명 덕분에 가능했다. 당초 박시환, 전수안 전 대법관이 유력후보로 검토됐으나 둘이 완강히 고사하면서 춘천지방법원장에 불과했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는 설이 파다했다. 당시 법원 안팎에서 ‘김명수 카드’의 화제성과 함께 대법원장직을 잘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뒤섞였던 배경이다. 더욱이 새 대법원장은 만신창이가 된 법원 조직을 추스르고 쇄신하면서 추락한 사법 신뢰를 회복시켜야 하는 책임이 막중했다.
그는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문 대통령의 ‘깜짝 지명’ 직후 자신을 향한 기대에는 한껏 부응하고 우려는 불식시킬 것이란 의지를 천명했다.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다음날 대법원을 방문하면서 “저도 불안하지만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아마 시작을 안 했을 것이다. 기대에 부응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춘천에 있던 그가 그날 시외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서초동에 도착한 뒤 대법원에 걸어 들어온 것도 눈길을 끌었다. 왜 굳이 춘천지법 관용차를 놔두고 그런 수고를 했는지 이해가 안 됐지만 말이다.
한 달여 후 취임사도 돋보였다. 자신이 대법원장에 취임한 것 자체가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사법부 안팎을 둘러싼 문제의식도 날카로웠고, 국민과 법원 구성원들에게 약속한 사법개혁·신뢰회복 방안들은 솔깃했다.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시작하더니 어느덧 4년째를 앞둔 ‘김명수 코트(법원)’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국민이 박수쳐 줄 수 있는 사법부 개혁과 신뢰회복은커녕 사법부를 우스운 꼴로 몰아간 김 대법원장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몇 개 사례만 봐도 그렇다. 그는 정권이 관심 가질 만한 주요 사건 담당 판사들을 법원의 인사원칙에서 벗어나 한 자리에 오랫동안 유임시켜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자초했다. 고법부장이 대법원장을 단독 면담하면서 몰래 녹음까지 할 만큼 법원 내 불신과 반목 심화도 막지 못했다. 특히 대법원장이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거나 정치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듯한 발언이 담긴 녹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국민이 입법부, 행정부와 달리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에 독립적이고 막강한 권위를 부여한 것은 인권과 정의, 법치주의 수호의 마지막 보루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믿음을 사법부 스스로가 발로 차버리는 일이 되풀이되고 그 중심에 대법원장이 있으니 기가 막히다. 사법부가 바로 서야 나라도 바로 설 것 아닌가. 사법부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얼마나 크고 그 수장의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김 대법원장이 지금이라도 깨닫고 2년여 남은 임기 동안 제대로 감당했으면 싶다. 그럴 의지도 자신도 없다면 선택지는 자명하다.
이강은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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