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권력 정당화하려는 듯

이반 4세(1530∼1584년)는 러시아 최초의 차르(황제)다. 16세기 러시아를 37년간 통치한 그는 폭군의 대명사로 통한다. 노브고로트 대학살 때 수천명이 불타 죽거나 익사했고, 후계자인 아들까지 죽였다. 영어 이름도 끔찍하다는 뜻의 형용사가 붙은 ‘이반 더 테러블’(Ivan the Terrible)이다.
러시아에서 이런 이반 4세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를 두고 블라디미르 푸틴(사진) 정권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수정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4일(현지시간) 영국 타임스에 따르면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연방안보회의 서기는 최근 현지 언론에 “이반 4세는 생전 자신을 가학적 통치자로 잘못 묘사한 16세기 서양인들의 표적이 됐다”며 “이는 스페인 종교재판이나 마녀사냥 같은 종교적 박해, 식민지화에 수반되는 인권 침해로부터 유럽인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격인 그는 푸틴 대통령 측근이다.
이에 대해 타임스는 “차르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라며 “푸틴 집권 이래 러시아는 스탈린의 숙청을 축소하는 등 크레믈궁이 지원하는 민족주의 의제에 맞게 역사를 수정한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고 꼬집었다. 러시아 정치학자 글레프 파블롭스키는 역사에 대한 정보요원들 의견을 듣는 것 자체를 경멸한다고 타임스는 전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21세기 차르’로 불리는 푸틴 대통령의 권력을 정당화하려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파트루셰프 서기는 “(서방의) 이반 4세에 대한 중상모략은 반(反)러 감정의 초기 사례”라며 “서방 국가들은 계속해서 러시아를 자유와 관용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한다”고도 말했다.
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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