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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다 다르고 개별적인 것 ‘우리’라는 말로 보편화는 안 돼”

입력 : 2021-05-04 20:01:51 수정 : 2021-05-04 20: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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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시집 ‘지독히 다행한’ 펴낸 천양희 시인
삶과 존재에 대한 끝없는 성찰 담아내
깊은 사유·탄탄한 짜임새·반전 큰 매력
“세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한 그리운 것”

상당수 작품들 시의 힘과 시인 삶 노래
‘사소한…’ ‘저녁을…’ 등 대표 추모작 꼽혀
“시인, 늘 긴장하며 나그네처럼 떠돌아야”
“아침 바람은 가로등에 스치고/ 눈 내리는 날엔 풍경이 풍경을 본뜨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하루에도 사계절이 있고/ 매일 실패하며 살기도 한다는 걸 알았을 때// …마음에도 벽이 있고/ 생각에도 동굴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닫고 살기보다 열어놓고 살기란/ 더 강력한 삶이라는 걸 알았을 때// …마음에도 야생지대가 있군, 중얼거리며/ 내가 마침내 할 일은/ 죽기 살기로 세상을 그리워해보는 것이다”(‘마침내’ 부문)
아홉 번째 시집을 펴낸 천양희 시인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시와 시인은 우뚝 하니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물론 유행을 무시할 필요는 없지만 무조건 따라가서도 안 된다”며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시인들은 각자 항성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천양희 시인 제공

등단 56년의 천양희 시인이 최근 상재한 아홉 번째 시집 ‘지독히 다행한’(창비)에 담긴 시들은 현란한 수사는 없지만 오랜 시력에서 나오는 매력을 다양하게 뿜어낸다. 깊은 사유와 따뜻하고도 서늘한 시선, 탄탄한 짜임새와 형상화, 적확한 문장 등도 그렇지만 반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시 ‘마침내’의 구절 “죽기 살기로 세상을 그리워해보는 것이다”를 가리키자, 천 시인도 공감을 표했다.

“제 시를 좋게 보는 분들이 반전을 기가 막히게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것이야말로 시인의 할 일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떻다고 해도 살고 있는 한, 세상은 그리운 것이죠.”

천 시인을 지난달 28일 수락산역 인근 커피숍에서 만났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시인은 그대로인 듯했지만, ‘젊은 기자’는 간데없고 머리도 조금 빠지고 기억력도 쇠퇴한 ‘선임 기자’만 앞에 있었다.

많은 시편에서 더 깊어진 사유와 따뜻하고도 서늘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시 ‘의외의 대답’은 인간의 존재 의미라는 형이상학적 질문을 시적으로 잘 담아낸 절창이다.

“내가 세상에 와/ 제일 잘한 것이 무엇이냐고 거듭 묻는다면/ 사람의 말로 거듭 말하겠다/ 무릎 끓고 앉아/ 남의 고통 앞에 ‘우리’라는 말은 쓰지 않았던 것/ 나는 왜 사람인가 물어보았던 것// 내가 세상에 와 끝까지 잘한 것이 무엇이냐고 끝까지 묻는다면/ 마지막 남은 나의 말로 끝까지 말하겠다//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 살려주고 떠나는 것/ 다시는 몸 받지 않겠다며/ 나를 잃는 것”( ‘의외의 대답’ 부문)

시의 끝자락은 대승불교의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 사상을 담은 듯하다.

-“남의 고통 앞에 ‘우리’라는 말은 쓰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고통이란 다 다르고 개별적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너와 나의 고통이 같다고 하는데, 고통은 모두 다 다르기 때문에 절대로 우리라고 하면 안 되지요. 고통은 각자의 것이고, 각자 느끼기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각자 절대적이죠. 보편화시키면 안 됩니다.”

시 ‘있다’의 끝 부문에도 엇비슷한 내용이 담겼다. “함께 있어도 거리를 지키는 벼가 있다/ 우짖음으로 자신을 지키는 새가 있다/ 울음소리로 존재를 알리는 벌레가 있다/ 하루에 몇 십만 번씩 물결치는 파도가 있다/ 물살이 역류하는 개울이 있다/ 나무 위에 사는 나무가 있다/ 잎 끝에 돌기를 가진 꽃이 있다/ 한평생 물 안 먹는 짐승이 있다/ 죽어가면서 빛을 달라고 한 사람이 있다/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내가 있다”(‘있다’ 전문)

시인은 벼, 새, 벌레, 파도, 개울, 나무, 꽃, 짐승, 사람 등을 노래하고선 왜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내가 있다”고 했느냐고 묻자 사람, 특히 여자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답한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굉장히 복 받은 것이고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없겠지만,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특히 여자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다음 생에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은 것일까. 그는 대답 뒷자락에 작은 오빠에게 전해들은 어릴 때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넓은 집 뒤에는 들이 있고, 감나무나 치자나무 등 유실수가 있었으며, 앞에는 개울도 있었지요. 거기에서 물장구도 치고. 저녁에 모기가 많아 모닥불을 피우곤 했습니다. 별이 우수수 쏟아지곤 했지요. 제가 여섯 살 때, 돌아가신 작은 오빠에게 이러더래요. 나 죽으면 별이 될란다. 오빠가 야단을 쳤다고 하더라고요. 어린 것이 죽는 것부터 말하느냐, 어린 것이. 오빠가 소름이 끼쳤다고 전해주더군요.”

천 시인은 상당수 시편에서 시의 힘과 시인들도 노래한다. 시 ‘사소한 한마디’는 맹인을 살린 시인 앙드레 브르통의 실화이고, ‘저녁을 부려놓고 가다’ 역시 허수경이나 최정례 시인이나 황현산 평론가 등을 추모했다.

시 ‘들여다본다’에선 자신의 50여 년 시력을 회고하기도 한다. “들여다보니/ 내가 독무를 춘 지도 오십년이 되었다/ 놀라서/ 오십년의 시력을 들추어본다/ 말을 벼려 시에 이르는/ 시인 노릇 하기 혹독하다”(‘들여다본다’ 부문)

부산에서 태어난 천 시인은 1965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새벽에 생각하다’ 등이 있고, 산문집으론 ‘시의 숲을 거닐다’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공초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받은 그였다.

등단 반세기를 훌쩍 넘은 시인에게 무엇이 그렇게 혹독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어 물었다.

“늘 긴장하여 살아야 하고, 새로운 발견을 해야 하며, 나그네처럼 떠돌아야 합니다. (시인이 여유를 가지면 안 됩니까) 시인은 여유를 가지면, 너무 느슨하면 안 됩니다. 눈은 구경꾼이 되고, 발은 나그네가 돼야 하죠. 낯선 곳, 새로운 곳을 찾아야 해요. 한자리에 있으면 안 됩니다. 저는 산책을 좋아합니다. 산책도 백 미터 다르고, 이백 미터 다르고 늘 새롭습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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