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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의암호'…예보된 악천후 속 카누체험 강행 '끔찍'

입력 : 2021-05-04 10:26:51 수정 : 2021-05-04 10:2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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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잔잔·비바람 치면 격랑…"대부분 초보, 안전이 우선"
"1년 전 참사 교훈 잊었나"…업체 "천재지변, 구조에 최선 다해"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비가 많이 오고 있는데, 춘천 의암호에서 관광객 2명이 탄 카누 1척이 떠내려가고 있어요."

알갱이가 작은 싸락우박이 쏟아진 지난달 17일 오후 4시 21분께 강원도소방본부 119 상황실에는 급박한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

소방당국은 경찰 112 상황실에 공동대응 요청과 동시에 춘천시청에 통보하고 의암댐 발전소에는 발전 방류 중단을 요청했다.

지난해 8월 6일 경찰정과 행정선 등 선박 3척이 전복해 5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된 의암호 참사를 계기로 안전사고 대응체계는 한층 강화됐다.

다행히 카누에 탄 관광객 2명은 11분 뒤인 오후 4시 32분께 카누 업체 관계자들에 의해 안전하게 구조됐다.

하지만 가슴을 쓸어내린 것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A 업체가 운영하는 카누 체험에 나선 B(41)씨 가족을 비롯한 관광객 20여 명은 당시 끔찍한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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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은 가족·친구 단위로 2∼4인승 카누 8∼9대에 나눠 타고 오후 4시부터 1시간가량 소요되는 물레길 체험에 나섰다.

노를 저어 50∼60m를 나아갔을 즈음. 먹구름이 하늘을 덮자 비바람이 몰아쳤고, B씨 가족이 탄 카누는 출렁이는 물결에 따라 좌우로 심하게 요동쳤다.

자칫 중심을 잃게 되면 카누가 전복돼 일가족 모두가 의암호에 빠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앞서 출발한 카누들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부는 하중도 기슭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악천후에 놀란 카누 운영 업체는 모터보트를 이용해 3∼4차례에 걸쳐 관광객 20여 명을 구조했다. 하지만 어린 자녀 2명과 함께 체험에 나섰다가 가장 늦게 구조된 한 관광객은 두려웠던 나머지 업체를 향해 거세게 항의했다.

평소 의암호의 기상 변화를 가장 잘 아는 업체에서 악기상 전에 카누 운영을 잠시 중단했더라면 이 같은 공포 체험은 막을 수도 있었다는 게 일부 관광객들의 증언이다.

당시 춘천의 날씨는 정오부터 18시까지 소나기가 예보돼 있었다. 실제로 기상청의 실시간 강수 예측 시스템에는 오후 3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강한 비구름대가 춘천을 통과할 것이라는 예보를 기상 레이더로 사전에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당 업체 측은 출발 당시 물결이 잔잔했기 때문에 프로그램 운영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의암호 내 다른 카누 업체는 기상 상황을 고려해 오후 3시 이후 프로그램 운영을 중단, 상반된 대처를 보였다.

더욱이 운영 전 안전교육은 다소 형식적으로 이뤄져 대부분 초보인 이용객들이 돌발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처법을 알기도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A 업체 측은 "출발 당시 물결은 잔잔했다"며 "갑작스러운 돌풍에 물결이 높게 일어 처음 체험하는 관광객은 다소 위험하다고 느낄 수 있었지만, 이는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천재지변이기에 구조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4일 춘천시에 따르면 하천 점용 허가를 얻어 의암호에서 물레길 카누 영업 중인 곳은 4곳이다. 2011년 8월 물레길 카누가 첫선을 보인 이후 3개 업체가 더 늘어났다.

최근에는 관광객들 사이에 카누 체험 인기가 높아져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한 상황이다.

문제는 악기상일 때 전복사고 가능성이 높은 카누 체험에 대한 운영 중단 여부는 전적으로 해당 업체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는 점이다.

수상레저활동 운항 규칙에도 '기상특보가 발효된 구역에서는 수상레저기구를 운항해서는 안 된다'는 포괄적인 내용만 있다.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부분 초보인 카누 관광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는 또 있다.

의암호 내 4개 업체가 등록해 운영 중인 동력 수상레저 기구(보트)가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이동할 때 발생하는 인공 물결도 카누 전복사고의 요인으로 꼽았다.

수상 인명구조협회 관계자는 "대부분 관광객은 카누를 처음 접하기 때문에 악기상이 닥치면 매우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며 "작년 의암호 참사를 교훈 삼아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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