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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선택' 생각하는 청소년 늘어만가는데… 학생 정신건강 예산은 '제자리'

입력 : 2021-05-03 18:19:56 수정 : 2021-05-03 18: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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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동·청소년 4.4% '극단선택 생각해 봤다'
2018년에 비해 3배 이상 늘어
우울·불안 늘고 건강 상태 나빠져

정신건강 증진사업 예산 늘었지만
아동·청소년 예산은 지난해와 같아

전문가 "선별적 지원해 주다 보니
전신 건강 문제 있어도 지원 못 받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아동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떨어지고 우울감과 불안감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 있다고 응답한 아동 비율이 코로나19 사태 전과 비교해 3배 증가해 아동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상황이 이렇지만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증진사업을 위해 책정된 올해 정부 예산은 지난해와 비교해 같은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이 점점 악화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가 소극적 대응에 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코로나19 이후 악화일로 걷는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학령기 아동·청소년(초4∼고2학년) 1825명을 상대로 지난해 10월부터 2개월간 조사한 결과를 2017년·2018년 데이터와 비교 분석해 3일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가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아동·청소년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코로나 이전 2017년에는 10점 만점에 7.27점이었으나 2020년은 6.93점으로 하락했다.

 

행복감은 2017년(7.22점)과 2020년(7.24점)이 비슷한 수준이었다. 반면 우울·불안은 2018년 3점 만점에 1.17점에서 2020년 1.24점으로 소폭 상승했으며, 걱정도 1.31점에서 1.56점으로 높아졌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아동·청소년은 2018년 전체 응답자(2510명)의 1.4%였지만, 2020년엔 4.4%로 증가했다.

 

스스로 평가한 건강 상태도 2018년엔 5점 만점에 4.4점이었지만, 2020년엔 3.84점으로 낮아졌다. 또 아동의 행복감을 가구 소득에 따라 살펴본 결과 빈곤 가구 아이들이 비(非)빈곤 가구 아이들보다 상당히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10점 만점 기준으로 비빈곤 가구 아동의 행복감은 7.47점으로 조사됐지만, 빈곤가구 아동은 6.73점으로, 코로나19 속 가정환경에 따른 행복감 격차가 확인됐다.

 

이런 경향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7∼10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청소년 8623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확인됐다. 연구원에 따르면 중·고등학생 5669명 중 27.0%(여학생 35.0%가, 남학생 19.6%)가 ‘최근 1년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청소년들은 이처럼 극단적 생각을 한 이유로 학업 부담이나 성적 문제 등 학업 문제(39.8%)를 가장 많이 들었다. 다음으로 미래와 진로에 대한 불안감(25.5%), 가족 간의 갈등(16.0%), 선후배나 또래와의 갈등(4.8%), 경제적 어려움(1.7%) 등의 순으로 답했다.

 

초등학생을 포함한 전체 응답자의 우울 정도를 파악한 결과 ‘이유 없이 슬프거나 우울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27.0%로 나타났다. ‘이유 없이 불안한 적이 있다’(26.1%)라거나 ‘이유 없이 외로운 적이 있다’(27.7%)는 응답도 비슷한 비율을 보였다.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경고등 켜졌지만 정부 예산은 제자리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이 이처럼 악화하고, 소득 격차에 따라 아이들이 느끼는 행복감의 격차도 커지는 위기 상황이 확인되고 있지만 정부 예산은 그대로인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증진사업’을 위한 예산은 44억원으로 지난해와 같았다. 정신건강 증진사업 전체 예산이 지난해 대비 234억원이 증가(2020년 685억원→올해 919억원)했지만 아동·청소년을 위한 정신건강 사업 예산은 증가하지 않은 것이다. 또 교육부의 ‘학생건강 지원강화 사업’과 관련한 예산도 지난해 11억8200만원에서 올해 12억1500만원으로 3300만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아울러 여성가족부가 각 시군구 지자체에 국비 50%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청소년상담복지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올해 센터 1개소 당 지원 금액은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전체 시군구 45개 중 센터가 설치돼 있지 않은 14곳을 대상으로 한 센터 건립 비용 등은 증가했다고 여가부는 설명했다.

 

각 부처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교육부와 복지부는 학생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조기검진 및 조기 중재 사업을 시행한다. 교육부가 초중고생을 상대로 선별검사를 실시해 관심군을 전문기관에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면 복지부는 취약계층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고위험군에 대한 사례관리를 담당한다. 여가부는 청소년상담복지지원센터를 통해 현장, 전화 및 온라인으로 청소년을 상담하고, 센터에 찾아오길 원하지 않는 청소년을 대상으로는 상담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하는 ‘찾아가는 상담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동·청소년과 관련한 정신건강 사업은 1차적으로 교육부와 여성가족부가 하고, 복지부는 고위험군에 대한 지원을 주로 하는데, 앞으로 관련 예산을 증가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좀 더 관리가 필요한 아이를 대상으로 맞춤형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지난해부터 예산 편성을 해서 일부 센터들에게 관련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예산을 편성할 때 이 사업과 관련해 증액 요구를 해도 (심사에서) 잘리다 보니까 센터 차원에서 예산이 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최정원 박사는 “각 부처의 정책기조를 보면 정신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있진 않은데 현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선별적으로 지원을 해주다 보니까 적정 기준이 안 되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어도 지원을 못 받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최 박사는 “학생 정신건강과 관련해 예산이 많이 배정이 된다면 심각한 질환이어야만 진료를 받는 등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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