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관망 자세서 비난으로 태세 변화
전략전술 무기개발·선전 강화 나설 듯
김여정의 ‘상응한 행동’ 경고 담화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전례 고려
조평통 정리·군사합의서 파기할 수도
바이든식 대북 해법 분석
오바마는 北核프로그램 개발시간 주고
트럼프, 北 정상국가 이미지 부여 실책

북한이 2일 하루에 한국과 미국을 향해 세 건의 담화를 쏟아낸 건 매우 이례적이다. 담화 발표 시점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 완료’ 발표 직후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힘에 따라 북·미 대화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 북한은 앞으로 대미·대남 압박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지난 1월 열린 제8차 노동당 당대회에서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밝히고 대북 적대정책 철회 등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해 왔다. 그동안 대미 비난 발언을 자제하면서 관망하는 자세를 보인 이유다. 하지만 미 정부 대북정책이 북한이 원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날 두 건의 담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 연설 내용과 국무부 대변인의 북한 인권 공세를 비난한 것에서 드러난다. 권정근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이날 담화에서 “미국이 아직도 냉전시대의 시각과 관점에서 시대적으로 낡고 뒤떨어진 정책을 만지작거리며 조·미(북·미) 관계를 다루려 한다”고 지적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는 일괄타결과 전략적 인내가 아닌 실용적 접근이라는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의 유화적 대북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것으로서 북한이 당분간 북·미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에 실망한 북한이 도발을 재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담화에서 “우리에게 있어서 인권은 곧 국권”이라며 “미국에 우리를 건드리면 다친다는 데 대하여 알아들을 만큼 경고하였다”고 했고, 권 국장도 “미국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적대정책 등과 관련해 군사적 상응조치를 본격적으로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미뤄놓은 전술전략무기 개발과 시험발사, 나아가 국제사회에서의 선전선동 공세도 강화하는 다차원적 공세를 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상응하는 행동’을 경고하는 담화를 낸 것도 예사롭지 않다. 김여정이 지난해 6월 두 차례 담화를 통해 남측 당국이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했다면서 강력한 대응조치를 예고한 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여정이 이번 담화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할지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이 지난해부터 한·미 연합훈련 등을 계기로 거론했던 대응 조치들이 실행에 옮겨질 수도 있다. 김여정은 지난 3월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대남대화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정리, 금강산국제관광국 및 관련 기구 폐지, 남북군사합의서 파기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김여정의 담화가 (대미 담화와) 같은 날 발표된 건 대미정책과 대남정책의 연계성을 보여준다”면서 “남한에 대한 경고와 ‘상응하는 행동’을 예고함으로써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 대미 압박 효과를 도출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향후 행보와 관련돼 주목되는 건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다. 회담 결과가 북한의 후속 조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 전까지 조평통 정리, 금강산 국제관광국 해체 등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의제를 최우선 순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對北 제재와 압박 유지하며 대화 모색… ‘빅딜’ ‘전략적 인내’ 사이 균형 맞추기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윤곽이 일부 드러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은 제재와 압박을 유지하면서 외교적 대화를 시도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당시 도출된 합의를 일부 받아들였다는 해석도 있다. 청와대는 미국과의 ‘사전 공유’를, 외교부도 ‘긴밀한 공조’를 각각 강조하고 나선 가운데 21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이 초미 관심사로 떠올랐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일괄타결(빅딜)’이나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답습하지 않은 점이 핵심이다. 그간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발전시킬 시간만 벌어줬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의 이미지를 갖게 했다’는 비판을 각각 받았다.
전임 정부 정책과의 차이를 부각하며 바이든 정부는 북핵 동결 등에서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일괄타결, 톱다운 외교’와 오바마의 ‘거리를 둔 대북 접근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라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단계적 합의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외교가 대북 접근법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제하며 다만 남북 간, 북·미 간에 대화가 완전히 중단된 상태에서 어떻게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일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실레스트 애링턴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다가오는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좋은 징조”라면서도 “그 사이 미국이 어떤 구체적인 관여와 억지 조치를 취할지, 북한이 어떤 행동과 반응을 보일지 세부사항을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도 “조기에 북·미 협상이 재개되고 성과를 내도록 앞으로도 미국과 지속적으로 공조해 나갈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관련 합의가 이뤄지면 북·미가 물밑 접촉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선 적대정책 폐기·후 대화 원칙’을 천명한 북한이 새로운 대북정책을 내놓은 미국과 쉽게 접촉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더 짙다.
원재연 선임기자,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이도형·홍주형 기자 march2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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