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보의 세계/장프랑수아 마르미옹 엮음/박효은 옮김/윌북/2만2000원
“역사는 자기가 한 일이 뭔지 모르는 멍청이들에 의해 쓰인다.” 사뭇 충격적인 이 말은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것이다. 인류의 혁명적인 발전을 가져왔던 농업의 발명이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농업혁명으로 인해 인간은 자발적으로 길들여졌고, 나약해졌으며 수많은 질병에 노출됐다.
책은 동서고금의 다양한 시공간 속에서 인간의 멍청한 행동, 각 시대와 문화마다 어리석음을 규정하던 방식을 각 분야의 석학들이 분석한 글을 모아 만들었다. 인류 역사 속의 수많은 어리석은 인물과 행위, 나아가 그에 대한 당대의 평가까지 소개한다.
중세의 점성술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과학적 학문이라 인정하기 어려운 비합리성을 띤 분야이다. 하지만 신학이 지배하던 시대에 내로라하는 지식인들보다 더 과학적인 사고를 보여주기도 했다. 예수회와 ‘키보드 배틀’을 벌인 18세기 계몽주의자들처럼 어리석다는 평을 들었던 사람들이 역사적으로는 더 슬기로웠다는 것으로 판명 나는 경우도 있다. 변방의 보이아티아인을 욕한 고대 그리스인들이나 아프리카의 피식민자를 깔본 프랑스의 식민주의자들처럼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한 쪽이 현대에는 더 어리석었다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한다.
고대사 전문가인 폴 벤 교수는 역사 속에서 민중이 보여온 어리석음을 분석한다. 그는 이 어리석음이 우매한 광기로 나타나기도 했고, 자기 권리에 대한 합당한 요구로 표출되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마르크 페로는 2차대전의 발발, 스탈린의 독재, 알제리 전쟁 등의 순간에 각국 수뇌부와 지식인이 드러냈던 판단 착오와 오류를 위트 있게 그려낸다.
출판사는 “역사 속에서 어리석음이 작용하는 방식은 늘 복잡했다”며 “다채로운 멍청이들의 역사적 일화 하나하나도 흥미롭지만 그 속에서 일관하는 본질적인 통찰을 던져주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강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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