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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최신 항모의 이례적 방한… ‘군함 외교’ 닻 올린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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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01 06:00:00 수정 : 2021-04-30 15: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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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항모 퀸 엘리자베스호가 F-35B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를 싣고 대서양을 항해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영국이 자랑하는 최신예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호가 오는 하반기 한국을 방문한다. 1997년 경항모 일러스트리어스호가 부산에 입항한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영국 항모의 방한이다. 

 

영국 국방부는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항모 퀸 엘리자베스호가 한국, 일본, 인도, 싱가포르를 포함한 40개국을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대서양과 지중해, 홍해, 인도양을 거쳐 태평양에 이르는 4만8000㎞의 대장정이 조만간 시작된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인한 글로벌 영향력 약화를 막으려는 영국의 ‘군함 외교’가 닻을 올리는 셈이다.

 

◆항모 1척으로 수많은 나라를 연결

 

2017년 취역한 6만5000t급 중형 항모 퀸 엘리자베스호는 수십년간 위축됐던 영국 해군이 21세기에 다시 부활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900척의 함정을 보유했던 세계 제1의 해군국이었다. 경사갑판을 비롯한 현대 항모에 적용된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영국 항모 퀸 엘리자베스호가 지브롤터 인근을 항해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전후 아시아와 아프리카 식민지가 잇따라 독립하고,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해군력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1960년대 건조하려 했던 5만4000t급 항모 2척은 재정 문제로 취소됐다. 항모에 탑재할 전투기도 비용이 많이 드는 자체 개발 대신 미국 F-4에 자국산 장비를 추가한 F-4K를 사용했다. 

 

1980년부터 취역한 인빈시블, 아크로열, 일러스트리어스 경항모는 2만t급 함정으로 해리어 수직이착륙 전투기를 탑재한 채 포클랜드 전쟁과 걸프전 등에 참가했다. 하지만 예전 같은 위압감을 주지는 못했다.

 

영국이 31억 파운드(4조8045억 원)라는 거액을 투입해 퀸 엘리자베스호를 만든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영국 해군은 북대서양과 흑해 등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함께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고 있다. 지브롤터, 포클랜드 등 해외 영토도 지켜야 한다.

 

하지만 경제적 문제로 함정을 필요한 만큼 확보하는 작업이 늦어져 작전 투입이 가능한 군함은 늘 부족하다.

영국 해군 45형 방공구축함 디펜더함이 항모 퀸 엘리자베스호와 함께 항해를 하고 있다. 영국 해군 제공

그런 상황에서도 영국은 구축함과 호위함, 보급함 6척과 핵추진잠수함 1척을 퀸 엘리자베스호와 함께 다음달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보낸다.

 

미국을 포함해 유럽, 아시아 우방국들과의 안보협력을 한층 강화해 ‘브렉시트 리스크’를 낮추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다. 브렉시트로 위축될 영국의 외교적 입지를 지키는 선봉장 역할을 맡은 셈이다. 

 

실제로 퀸 엘리자베스호를 호위할 ‘2021 항모전단’에는 영국 해군 외에 네덜란드와 미 해군 구축함이 합류한다.

 

지난해 말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립, 공개한 네덜란드는 한국 해군 세종대왕함과 유사한 방공구축함 드 제벤 프로빈센급(6000t) 4번함 에베르센함을 투입한다. 퀸 엘리자베스호와의 동행을 위해 6주에 걸쳐 대대적인 정비를 받았다.

 

미 해군은 알레이버크급 이지스구축함 설리번함을 투입한다. 

네덜란드 해군 방공구축함 에베르센함이 다멘 조선소에서 수리를 받고 있다. 다멘 조선조 제공

미 해병대 F-35B 수직이착륙 스텔스전투기도 합류해 영국 F-35B와 함께 움직인다. 

 

영국은 F-35B의 단가 상승으로 필요한 수량만큼 F-35B를 제때 도입하기 어려워지자 미 해병대와의 연합작전을 대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퀸 엘리자베스호는 다음달 출항 이후 프랑스 핵추진항공모함 샤를 드골호와의 연합훈련을 포함해 미국, 캐나다, 그리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일본, 아랍에미리트(UAE),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등과도 훈련을 함께할 예정이다. 

 

영국으로서는 퀸 엘리자베스호를 중심으로 전 세계 우방국들과의 국방 협력을 증진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브렉시트 이후의 국가전략인 ‘글로벌 브리튼’을 실질적으로 진행하는 동력이 생긴 셈이다.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하는 쿼드에 영국이 발을 들여놓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을 ‘시스템적 경쟁자’로 규정한 영국으로서는 쿼드 합류로 대서양 동맹과 아시아와의 국방협력을 함께 강화할 기회다.

영국 F-35B가 항모 퀸 엘리자베스호 갑판에서 이륙하고 있다. 영국 해군 제공

◆경항모 건조하려는 한국에도 영향 

 

퀸 엘리자베스호의 방한 소식에 한국 정부는 환영 의사를 밝혔다.

 

국방부는 지난달 27일 “한국과 영국의 국방 협력 증진을 위해 올 하반기 퀸 엘리자베스호의 부산 기항 요청을 수용했다”며 “양국은 항모전단 방한과 관련해 철저한 방역조치를 강구한 가운데 구체적인 교류 협력 활동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국군과 정부 내에서는 이번 방한이 해군의 3만t급 경항모 건조 계획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미국은 항모 운용 경험이 가장 많고, 한국 해군과의 연합훈련 실적도 풍부하다. 하지만 핵추진항모와 대형 강습상륙함을 운용하고 있어 경항모를 만들려는 한국 해군이 벤치마킹하기에는 적합지 않다.

 

반면 영국은 1980년대부터 수직이착륙 전투기와 재래식 동력 항모를 실전에 투입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경항모에 F-35B를 탑재할 예정인 한국 해군이 참고할만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한국 해군의 3만t급 경항모 상상도. 해군 제공

실제로 지난 1월 해군이 공개한 경항모 개념도는 퀸 엘리자베스호와 유사했다. 기존 개념도에서는 함교가 1개였지만, 새로운 개념도에는 함교가 퀸 엘리자베스호처럼 2개로 늘어났다. 함재기를 비행갑판으로 이동시키는 엘리베이터 2기가 오른쪽에 집중된 것도 비슷하다.

 

F-35B 엔진에서 내뿜는 고열을 견디는 갑판 기술과 항모의 전투지휘체계, 함 내 전자장비 가동에 필요한 전기 생산 및 배분 체계 등에 대한 협력도 가능할 전망이다. 

 

국내 기술로도 개발할 수 있지만, 시행착오를 줄여 개발 기간을 단축한다면 경항모 전력화도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운용 개념에서도 참고할만한 부분이 적지 않다. 해군 함정의 작전 개념은 ‘정비-훈련-작전’으로 구성된 3직제다. 

 

3직제에 따르면, 영국 해군은 항모 3척이 필요했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3척 건조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항모 퀸 엘리자베스호를 중심으로 구성된 영국 해군 항모전단이 대서양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영국 해군 제공

이에 BAE 시스템스를 비롯한 영국 방위산업계는 첨단 장비 수리 주기를 대폭 늘려 2척만으로도 작전 투입과 정비가 가능하도록 했다. 

 

예산 증가를 막기 위해 미 해군 핵항모 제럴드 포드호에 쓰이는 전자기 캐터펄트(EMALS)나 원자로를 비롯한 고가의 첨단 장비 대신 스키점프대와 롤스로이스 가스터빈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안을 선택했다. 

 

예산 문제로 경항모 추가 건조가 쉽지 않은 한국에서 퀸 엘리자베스호의 사례는 참고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경항모 사업 연구용역과 타당성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1억 원을 들여 10월까지 한국국제정치학회가 진행하는 연구용역은 경항모 운영개념, 효과성을 분석해 사업 추진의 필요성을 검증한다. 사업 타당성 조사는 8월까지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퀸 엘리자베스호 건조와 운용과정은 상당한 참고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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