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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부, ‘가습기살균제 참사’ 1심 무죄 논리 깨기 위한 연구 실시

입력 : 2021-04-29 14:43:05 수정 : 2021-04-29 16: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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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판단 당시 논란 됐던 ‘CMIT/MIT’ 실험대상에 포함
재판부 “CMIT/MIT 성분 인과관계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려워”

참여연대 간사 “1심 재판부 독성학 특성 이해못한 채 결론”
“임상적으로 피해 드러난 상황인데 동물실험 근거로 부정당한 것”
최예용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해 11월 18일 서울 중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최초 가습기살균제 개발경위 및 제품공급 과정 조사결과 발표를 갖고 가습기살균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이 인체 세포에 미치는 독성 연구를 위해 내달부터 연구 용역을 실시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연구에는 가습기살균제 제조, 판매 업체인 SK케미칼과 애경 임원진에 대해 지난 1월 1심 재판부가 무죄 판단할 당시 논란이 됐던 원료 물질 클로로메칠이소치아졸리논(CMIT)/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이 실험대상에 포함됐다.

 

연구 결과 가습기살균제가 인체 세포에 상당 수준의 피해를 미치는 것으로 확인될 경우 1심 판단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커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 결과도 중요하지만 환경 피해에 대해 너무 엄격한 인과관계를 요구하는 재판부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논란의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 CMIT/MIT 대상 연구 실시

 

29일 환경부에 따르면 국립환경과학원(이하 과학원)은 ‘가습기살균제 성분(PHMG, CMIT/MIT)에 의한 세포 독성 기전 연구’라는 용역과제를 수행할 기관을 최근 선정했다. 과학원 관계자는 “이번달에 업체와 계약이 끝났고 과업내용을 세부적으로 조정하는 절차가 필요해 내달부터 연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가 ‘폐질환 등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 제조 및 판매 업체(SK케미칼, 애경산업 등) 임직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후 수행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특히 내달부터 9개월 동안 연구가 이뤄져 내년 상반기면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항소심 재판부가 이번 연구 결과를 참고할 확률이 높다.

 

과학원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번 연구는 배양된 세포에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을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구체적으로 과학원은 가습기살균제에 세포가 노출될 때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가 얼마나 손상되는지 또 손상됐다면 언제까지 손상이 지속되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안에서 각종 유기물질을 분해해 세포가 사용하는 에너지인 ATP로 전환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세포소기관이다. 미토콘드리아에 이상이 생길 경우 에너지 생성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각종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

 

과학원은 아울러 가습기살균제가 분무 형태로 인체에 들어간 점을 고려해 실제 피해 상황과 최대한 흡사한 환경에서 호흡기세포 이상 여부를 평가할 예정이다. 과학원 관계자는 “가습기살균제 노출로 이상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바로 질병이 발생한다고 할 순 없다”면서도 “세포 독성이 확인된다면 과학적 근거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사진 왼쪽)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뉴스1

◆“1심, 과학적 특성 이해 못하고 판결…항소심은 합리적 시각 가져야”

 

이번 연구를 통해 세포 독성이 입증될 경우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가습기살균제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업무상과실치사, 치상 혐의로 기소된 안용찬(62) 전 애경산업 대표와 홍지호(70) 전 SK케미칼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현재로선 CMIT/MIT 성분은 PHMG와 달리 인과관계가 확인 내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CMIT/MIT 성분이 담긴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확인하기 위해 동물 실험과 역학 조사 등이 이뤄졌으나 폐 질환과 천식에 영향을 줬다고 결론을 내린 보고서가 없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보건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의 위해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확실성이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피해’에 대해 너무 엄격한 수준에서 증명을 요구하고 있는 사법부의 태도 역시 항소심에서는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열린 ‘가습기살균제 무죄 판결의 학술적 검토 심포지엄’에서 정해관 대한예방의학회 회장은 “새로운 질환의 발견은 항상 인구집단에서 사례로 보고되고 역학적으로 규명된 이후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면서 “동물실험이 인구집단의 결과를 재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미 사람에게서 관찰되고 확인된 사실을 부정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의 심각한 오용”이라고 밝혔다.

 

지난 1월 12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해당 선고 결과를 부정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1심 무죄 판결 이후 “내 몸이 증거다”라고 외친 피해자들의 말처럼 각종 피해 사례 자체가 중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는 “과학에서는 100% 확실한 게 없고 보통 확률로 판단을 하는데 1심 재판부는 과학적으로 독성학이 갖는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결론을 내렸다”면서 “실제 피해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는 등 임상적으로 피해가 드러난 상황인데도 거꾸로 동물실험을 근거로 피해가 부정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들이 하는 말이 ‘사람은 쥐가 아니다’라는 것”이라면서 “과학의 특성을 고려하는 등 항소심 재판부는 합리적인 시각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998만개의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판매돼 최대 95만여명(추정)에게 피해를 초래한 단군 이래 최대 환경 비극이다. 지난달 기준 7365명이 피해를 신고했고, 1645명이 사망했는데 피해 규모는 아직도 파악 중이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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