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초일류 경영 발맞춰 기부도 세계 최고… 이건희 회장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입력 : 2021-04-29 06:00:00 수정 : 2021-04-29 08:07:1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삼성, 역대급 납부계획 공개

상속세 12조… 세계 최대 규모
미술품 2만3000점도 기증
환원 규모 최소 15조 달할 듯
李회장 13년 전 기부 약속 지켜

지난해 10월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이 최소 12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상속세 납부 계획을 포함한 역대급 사회환원 계획을 28일 공개했다.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회사를 약 700배 가까운 규모로 불린 이 회장이 사후에도 한국 사회와 국민에게 길이 기억될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홍라희 여사,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이 회장의 상속인들은 이런 내용을 담은 사회환원 내용을 삼성전자를 통해 공개했다.

우선 유족이 납부할 상속세는 12조원 이상으로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고액이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3년간 국세청이 거둔 상속세 총액 10조6000억원보다도 많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역대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유족은 이 회장의 사재 1조원을 출연해 감염병전문병원을 설립하고, 소아암·희귀질환 어린이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이는 이 회장이 2008년 특검의 비자금 수사 당시 “실명 전환한 차명 재산 가운데 벌금과 누락된 세금을 납부하고 남은 것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는 계획을 밝힌 지 13년 만에 유족이 사회에 환원하는 의미도 지닌다.

이 가운데 감염병 대응을 위한 7000억원을 전달받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국립중앙의료원은 “기부금이 세계 최고 수준의 감염병 위기 대응 역량 구축이라는 목적에 맞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내며 반겼다.

 

정선·김홍도… 세상에 나오는 ‘이건희 컬렉션’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이 28일 현대사상 최대 규모의 미술품 ‘이건희 컬렉션’을 28일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했다. 그중에서도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귀한 역사의 유산으로 평가받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사진 위)와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아래). 삼성 제공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린 2만3000점에 달하는 미술품은 국립미술관 등에 기증된다. 미술계에서는 이 회장의 미술품이 감정가로 2조∼3조원에 이르며, 시가로는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는 이렇게 이 회장 재산의 60% 정도가 세금, 기부 등으로 사회에 환원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최소 15조원 이상의 사회환원 효과가 기대된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초일류’ 경영으로 삼성을 글로벌 ‘톱’ 반열에 올려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기여한 이 회장이 다시 상속세 납부와 기부를 통해 각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1987년 그룹 회장 취임 당시 1조원이었던 회사 시가 총액을 별세 당시 682조원까지 끌어올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일군 데 이은 또 다른 ‘보국(報國)’을 실천했다”고 말했다. 유족들도 “생전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 노력’을 거듭 강조한 고인의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환원 사업을 지속해서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에서도 삼성 일가의 막대한 상속세와 사회환원 규모에 주목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발표된 상속 내용, 미술품 기증 계획을 상세히 소개하고, 삼성 일가가 ‘사상 세계 최대 규모의 상속세 중 하나’를 낼 계획이라고 해설했다. 프랑스 AFP통신은 관련 기사에서 “한국은 엄격한 상속세법과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면서 “이는 이재용 부회장을 포함한 일가에 무거운 과세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죽을 때 입는 수의엔 주머니 없어” 李 생전 다짐 실천

 

“이번 상속세 납부와 사회환원 계획은 갑자기 결정된 게 아니라 그동안 면면히 이어져 온 이건희 회장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28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산 60% 이상이 상속세 납부와 의료공헌, 미술품 기증 등을 통해 사회로 환원된다는 사실을 유족을 대신해 전한 삼성전자 관계자가 이같이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회장의 유족들이 사상 최고 수준의 상속세를 납부하는 동시에 의료공헌과 미술품 기증 등의 사회환원을 실천하기로 했다”며 “이는 국가경제 기여, 인간 존중, 기부문화 확산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한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날 발표된 이 회장의 사회환원 규모는 상속세 12조원 이상과, 감염병과 소아암·희귀질환 극복 지원액 1조원,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문화재·미술품 기부까지가 총망라됐다. 세간의 기대를 훨씬 능가하는 규모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회장과 유족의 이 같은 행보는 이 회장이 삼성그룹 회장으로 처음 취임했던 1987년 이미 예고됐다는 분석이다.

 

당시 취임사에서 이 회장은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지금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이상으로 봉사와 헌신을 적극 전개할 것”이라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이후 이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도 “죽어서 입고 가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고 사회환원 의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생전에도 이 회장은 수시로 사회와의 상생철학을 역설하며 여러 사회공헌 사업을 펼쳤다. 한국의 의료·병원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로 1994년 삼성서울병원이 설립됐고, 리움미술관도 문화유산을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해야 한다는 고인의 뜻에서 출발했다.

 

이 회장은 부모 없이 길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목격하고 1989년 천마어린이집을 개원했다.

 

이외에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삼성호암상 등 삼성이 전개하는 학문 지원사업도 모두 이 회장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회장은 “사회적 요구에 관심을 갖고 사회와 더불어 발전하는 것이 기업의 또 다른 책임이다. 저는 이것을 기업의 ‘보이지 않는 책임’이라고 여기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생전에 이처럼 사회환원 철학이 각별했던 이 회장이 사후에도 한국 사회에 ‘위대한 유산’을 남기고 떠났다고 추모했다. 삼성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치열한 삶을 통해 거둔 거대한 업적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했다.

 

‘초일류’ 경영으로 삼성을 일궈 대한민국 경제 도약을 주도한 이 회장이 다시 세계 최대 규모의 상속세와 기부를 통해 마지막 사회공헌을 실천한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특히 이 회장이 남기고 떠난 유산은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그리는 ‘뉴 삼성’의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역시 이 회장의 뜻을 계승해 사회 상생·공헌을 경영 전반에서 강조하고 있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과 유족이 앞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 노력’을 거듭 강조한 이 회장의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환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어 “삼성전자 등 관계사들도 다양한 사회공헌을 통해 사업보국(事業報國)이라는 창업이념을 실천하고 ‘뉴 삼성’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고’ 감염병 전문병원 짓는 데 5000억 투입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이 감염병 극복과 소아암 퇴치 등을 위해 각각 7000억원과 3000억원 등 총 1조원을 기부하기로 한 것은 고인의 평소 철학과 이재용 부회장의 뜻이 모여 도출된 최적의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8일 삼성전자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은 평소 인간 존중과 상생, 인류사회 공헌의 철학에 기반해 의료분야 사회공헌에 각별한 관심을 쏟아왔다. 이 회장은 1994년 11월 서울 강남구 삼성의료원 개관 때 의료원 출입구 벽면에 새긴 글에서 “건강한 사회와 복지국가 실현을 위하여 이웃과 함께하는 따뜻한 기업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자 여기에 삼성의료원을 설립하였다”고 적었다.

 

2010년 5월에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이 회장은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기업의 사명”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유족이 감염병 극복 지원금으로 7000억원을 후원키로 한 것은 이런 이 회장의 철학과 현재 상황을 적절히 감안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도 심각하지만, 2000년의 사스와 2015년 메르스 등이 그간 계속 이어지며 감염병은 인류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최대 위험 요인이 됐다. 유족들은 감염병 극복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 고인의 유지를 따르며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의 “위기를 딛고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자”는 지론도 반영됐다.

 

7000억원 중 5000억원은 ‘초일류’ 감염병전문병원을 건립하는 데 지원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감염병연구소 건설과 백신·치료제 개발 등에도 모두 2000억원이 지원된다.

 

이 회장의 어린이 보육과 교육에 “소매 걷고 나서야 한다”는 생각과 돈이 없어 암 치료를 못 받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소아암·희귀질환 환아를 돕는 3000억원 기부 결정으로 이어졌다. 이 회장 유족은 소아암(13종, 약 1만2000명)·희귀질환(14종, 약 5000명)의 진단과 치료에 2100억원,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 지원 등에 90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유족들은 서울대 어린이병원을 주관기관으로 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 환자 지원 사업을 운영하기로 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이 회장 유족의 기부로 소아암·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의료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어린이 환자들에 대한 민간 차원의 지원·기부가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기천·남혜정·이진경 기자 n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