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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주고 떠난 정진석 추기경… “행복이 하느님의 뜻”

입력 : 2021-04-29 06:00:00 수정 : 2021-04-29 01: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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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말부터 악화… 여러 차례 고비
기도 속에 편안한 표정으로 임종
文대통령 “너무나 안타깝다” 애도

서울대 재학 중에 6·25 참상 겪어
발명가 꿈 접고 사제의 길 들어서
사제 수품 60년… 최연소 주교돼
명동성당 내부 모습 전날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의 시신이 유리관에 안치돼 있는 28일 명동성당 내부 모습. 허정호 선임기자

우리나라의 두 번째 추기경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12대 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이 27일 오후 10시15분 노환으로 선종(善終)했다. 향년 90세.

정 추기경은 2월 말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이후 여러 차례 고비를 넘겼지만, 이날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교와 사제들의 기도 속에 편안한 표정으로 임종을 맞았다. 정 추기경의 시신은 명동대성당 제단 유리관 속에 안치돼 30일까지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정 추기경 선종에 “한평생 천주교 신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 평화를 주신 추기경님의 선종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애도를 표했다.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문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추기경님, 지상에서처럼 언제나 인자한 모습으로 우리 국민과 함께해 주시길 기도합니다”라며 “추기경님의 정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영원한 평화의 안식을 누리소서”라고 말했다.

◆통장 잔고 털어 5곳에 전액 지정 기부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정 추기경은 지난 25일, 통장 잔액을 꽃동네, 명동밥집, 서울대교구 성소국,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아동신앙교육, 정진석 추기경 선교장학회 등 5곳을 본인이 직접 지정해 기부하면서 통장 모든 잔액을 소진했다”고 밝혔다.

또한 “최근 두 달 동안 모아진 현재 통장 잔고는 200만원과 은퇴 후에 교구에서 매달 지급되는 비용, 보훈처에서 참전용사인 정 추기경에게 주는(매달 30만원) 금액으로 800만원 정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마저도 남김없이 자신이 입원 중 수고해주신 의료진과 봉사자들에게 선물하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허 신부는 “정 추기경은 오래전부터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자주 말씀하셨고, 이 말씀이 마지막 말씀이었다”고 전했다.

교황 알현 2013년 3월 정진석 추기경(왼쪽)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새 교황 프란치스코를 처음 알현하는 모습. 천주교서울대교구 제공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은 1931년 12월 7일 출생으로 1961년 사제품을 받고 1970년 6월 25일 청주교구장에 임명되면서 만 39세로 최연소 주교가 됐고, 같은 해 10월 3일 청주교구장에 착좌했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지냈다. 정 추기경은 2006년 3월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됐으며, 2012년 은퇴 이후에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신학대학) 주교관에서 머물며 저술 활동에 매진하여 매년 한 권씩 책을 냈다. 정 추기경의 저서는 총 51권, 역서는 14권이다.

◆6·25 겪으며 공대생에서 신학생으로

정 추기경은 1950년 4월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으나 두 달 만에 6·25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발명가, 과학자의 길을 접었고 종전 후 신학대에 입학해 종교인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가톨릭평화신문에 연재한 ‘추기경 정진석’에 의하면 정 추기경은 1950년 9월 6촌 동생과 함께 은신해 있던 집에서 잠이 들었는데 그만 폭격으로 무너져 내린 서까래에 동생이 숨지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충격적인 사건은 그에게 동생 몫까지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불러왔고, 후에도 그는 동생의 안식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정 추기경이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 데는 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 정 추기경의 부친 정원모는 일제강점기 만주의 여순(旅順) 공과대학을 나와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1931년에 이어 1944년 두 번째 옥살이 중 광복을 맞아 석방되었으나 곧 월북해 북한에서 공업성 부상(차관)을 지내다가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추기경은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 채 외동아들로 성장했다.

그가 서울대교구장으로 부름을 받은 건 1998년이다.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이 정년을 맞아 교황청에 사직서를 내자 당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었던 그가 후임 교구장으로 선택된 것이다. 그는 2012년까지 14년간 서울대교구장을 지내며 여러 변화를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뒤로 신부들의 투표로 교구 지구장을 선출토록 해 지구 중심의 사목 체제를 만들었다. 2000년에는 교구 시노드(synod)를 개최했다. 시노드는 교리와 규율 등을 전반적으로 토의하는 자문기구 성격의 교회 회의체다. 교구 시노드는 1922년 열린 이후 약 80년 만에 다시 개최된 것이다.

◆생명운동 관심… 교회법 연구에도 몰두

청주교구장 때부터 생명을 사목활동의 맨 앞에 둔 정 추기경은 2005년 생명운동을 본격 추진할 위원회를 발족했다. 이를 통해 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 뜻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 관련해 “4대강 사업은 과학적·전문적 분야이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다른 의견이 있는 만큼 비전문가가 나서서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발언해 설화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소신을 지켰고, 평양교구장서리로서 “북한은 국민의 생존에 대해 양식(糧食)이 없다고 손을 벌리고, 진리를 차단하고 자유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추기경의 생애를 돌아볼 때 교회법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사제가 된 뒤 신학교 교사를 하며 라틴어를 익혔던 정 추기경은 1968년 로마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교회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했다. 청주교구장으로 있던 1983년 교회법번역위원회를 출범하고, 교회법을 전공한 사제 10여명과 함께 교회법전 번역 작업에 돌입했다.

그렇게 시작한 장도(壯途)는 1989년 라틴어-한국어 대역판 교회법전을 내놓으며 결실을 봤다. 그는 역작을 낸 뒤로도 교회법을 쉽고 정확히 알리고 싶어 했던 바람을 놓지 않았다. 교회법 해설서를 틈틈이 쓰기 시작해 2002년까지 총 15권짜리 교회법 해설서를 완간했다. 50년 이상 교회법에 매달린 성과였다.

길게 늘어선 줄 28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 전날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의 조문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신도들과 시민들이 길게 줄서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좋은 곳에서 잘 쉬셨으면”… 아침부터 조문 발길

 

정진석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는 28일 이른 아침부터 조문객들이 삼삼오오 들러 고인을 추모했다. 대성전에서는 1시간마다 천주교식 위령기도인 연도(煉禱)가 낭송됐다. 시민들은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1m 이상 떨어져 기다리다가 차례가 되면 대성전 제대 앞에 마련된 투명 유리관에 안치된 정 추기경의 시신 가까이에서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정 추기경은 모관을 쓰고 반듯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일부 시민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고, 또 다른 시민은 쉽게 대성전을 나설 수 없는 듯 한동안 발을 떼지 못하고 서 있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 김영숙(55·안젤라)씨는 “마지막 모습을 일찍 뵙고자 아침 8시에 도착했다. 추기경님을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오전에는 종교계의 애도가 이어졌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이날 추도문을 내 “평소 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바라셨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복지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셨다”며 “추기경님이 남기신 평화와 화해 정신은 우리 종교지도자들이 이어나가겠다. 부디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바란다”고 염원했다.

 

한국교회총연합은 대표회장 명의로 보도자료를 내 “정 추기경님의 삶의 궤적을 기억하고, 그분이 지키려고 했던 생명과 가정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노력이 한국 사회에서 지속되기를 소망한다”고 추모했다.

 

원불교 오도철 교정원장은 “하느님의 품에서 행복하시길 축원드린다”고 추도했고, 전국 유림 대표조직인 성균관 손진우 관장도 애도 성명을 내 “한 분의 현존 성현이 저희 곁을 떠나신 것 같다. 큰 스승을 잃은 천주교인들의 슬픔을 함께하며 고인께서 보여준 평생의 가르침이 실현되기를 기원한다”고 염원했다.

 

오후에는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박병석 국회의장과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가 빈소를 찾은 데 이어 김상희 국회부의장,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국민의힘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 양승조 충남도지사, 원유철 전 미래한국당 대표 등이 조문했다. 뮤지컬 배우 바다와 최정원 등 연예인들도 다녀갔다.

 

28일 서울 명동성당 본당에 마련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고 정진석 추기경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명동성당 유리관에 안치… 5일장 치러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전날 선종한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의 장례위원회를 구성했다고 28일 밝혔다. 위원장은 현 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이, 부위원장은 손희송·유경촌·정순택·구요비 주교가 각각 맡는다. 전날 자정을 넘어 거행된 추모미사를 시작으로 천주교 의례에 맞춰 5일장으로 치러진다.

 

정 추기경 시신은 ‘사주 각막기증’ 약속에 따라 이날 서울성모병원에서 안구 적출 수술을 마치고 밤 12시 넘어 빈소인 서울대교구 명동성당 대성전 제대 앞에 마련된 투명 유리관에 안치됐다. 일반 사제의 경우 지하 성당에 안치되지만, 천주교 예규에 추기경은 성당 대성전에 안치하는 의례에 따른 것이다.

 

이날 추모미사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봉헌됐다. 주교들과 명동성당 사제, 교계 취재진 등 제한된 인원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됐다.

 

신자를 포함한 일반 시민은 장례 나흘째인 30일 정 추기경 시신이 정식 관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유리관에 안치된 시신 가까이서 마지막 인사를 올릴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지속하는 만큼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을 지킨 채 조문에 참여해야 한다. 참배 시간을 지난 밤 사이 시간대에는 명동성당 신부와 수녀들이 자리를 지킬 것으로 예상된다.

 

장례기간 명동성당 대성전에서는 고인을 위한 연도(煉禱·위령기도)와 미사가 매일 거행된다.

 

30일에는 정 추기경 시신을 정식 관으로 옮기는 입관 예절이 치러진다.

 

입관에 앞서서는 비공개로 염습이 있을 예정이다. 염습은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기고 옷을 입힌 뒤 염포로 묶는 것을 말한다.

 

장례 마지막 날인 5월 1일 오전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장례미사가 거행된다. 미사가 끝나면 고인의 시신은 명동성당을 떠나 장지인 경기도 용인 성직자묘역에 안장된다. 이곳에는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한국인 첫 대주교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 등의 묘가 있다.

 

조정진 선임기자, 이도형·이복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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