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화학공장 노동자였던 그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시와 희곡을 썼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는 언제나 벌어진 틈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 사이로 서서히 들어가야 합니다. 눈이 색깔을 바라보고 귀가 소리에 익숙할 때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내면의 공간으로 깊이 들어가십시오.” 그의 시 ‘다정한 사람’의 한 대목이다. 그는 이승을 하직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2009년 우리 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도 시를 썼다.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제목의 이 시는 노래로도 만들어져 널리 회자됐다. 그는 가장 높은 성직에 있었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 서기를 좋아했다. 스스로 ‘바보’로 부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죽은 뒤에는 각막 기증을 통해 두 사람에게 빛을 선사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유언처럼 평생 사랑의 길을 걸었다.

27일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은 사랑의 선물을 전하는 ‘산타’였다. 그가 세례명으로 삼은 니클라오는 자선을 많이 베풀어 산타클로스로 추앙받는 가톨릭 성인이다. 그는 장기기증 서약에 따라 각막 등을 마지막으로 선물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라는 자신의 사목 표어대로 이웃에게 한없이 베풀었으나 자신에겐 누구보다 엄격했다. 교구장 시절엔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았고, 바지 한 벌을 18년 동안 입었다. 그렇게 모은 돈을 꽃동네 장학기금으로 모두 쾌척했다. 그는 임종 순간에 이런 유언을 남겼다.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행복은 무엇일까. 최고 성직자들은 행복을 사랑에서 찾고 베풂으로 그것을 실천했다. 김 추기경은 생전에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며 이런 고백을 했다. “나는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습니다.” 늘 사랑을 실천했던 추기경이 70년 걸렸다면 범인(凡人)인 우리에겐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분의 사랑이 한없이 커 보이는 오늘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