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걸·이규진 1심 유죄 의식 분석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두 달 만에 재개된 재판에 출석해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의 광풍이 사법부에까지 불어왔다”며 작심발언을 했다. 최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것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재판장 이종민)는 지난 2월 정기 인사로 재판부가 변경된 뒤 7일 처음으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 대한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선 검찰 측이 공소사실을 다시 설명하고, 이에 대한 피고인 측의 입장을 듣는 절차가 이뤄졌다.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취지의 답변을 했고, 이후 발언 기회를 얻은 양 전 대법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른바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의 광풍이 사법부에까지 불어왔다”며 “자칫 형성된 예단이 객관적인 관찰을 방해하는 게 사법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윤종섭)가 이 전 기조실장과 이 전 상임위원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일부 혐의에 양 전 대법원장이 공모했다고 밝힌 것을 지적한 발언으로 보인다.
박 전 처장과 고 전 처장도 작심발언을 했다. 박 전 처장은 “어느 언론인은 수사 초기 요란하고 창대했던 재판 거래 프레임이 먼지가 돼 사라졌다고 일갈했다”며 “검찰 주장이 얼마나 기교적인 형식논리로 구성됐고, 침소봉대와 견강부회로 돼 있는지 추후 재판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강조했고, 고 전 처장은 “검찰의 공소사실에는 유독 여러 목적이 장황하게 설명된 것이 눈에 띈다”며 “추측이나 예단에 따라 판단하지 말고 엄격한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따라 판단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검찰 측은 첫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과 함께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 독립을 침해할 수 있는 위법·부당한 지시를 실행했다”며 이들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장본인이란 주장을 재확인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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