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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부, 6·25 때 중공군과 싸우다 전사한 19살 영웅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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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07 06:00:00 수정 : 2021-04-06 18: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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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의무병으로 해병 장병들 구조·치료 ‘살신성인’
중공군 기관총에 쓰러진 미군 병사 살리려다 산화
6·25전쟁 당시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보여준 ‘살인성인’의 자세를 인정받아 사후 명예훈장이 추서된 리처드 디워트 미국 해군 상병. 1951년 4월 전사 당시 불과 19살이었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미국 국방부가 6·25전쟁에 참전해 중공군과 필사적으로 싸우다 19살 나이로 전사한 전쟁영웅을 기려 눈길을 끈다. 최근 한국과 중국이 외교장관 회담을 갖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관련 협력에 합의한 가운데 미측이 ‘6·25 당시 중국은 한·미동맹의 적(敵)이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명확히 전달하고자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6일 미 국방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리처드 디워트(1931∼1951) 해군 상병은 전사 후 명예훈장이 추서된 미국의 전쟁영웅이다. 명예훈장은 미국에서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에 해당하며, 디워트 상병은 6·25에 참전한 미 해군 장병으로선 2번째로 명에훈장 수훈자가 됐다.

 

매사추세츠주(州)가 고향인 디워트 상병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숨지면서 홀어머니 손에 자랐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나서 그는 어린 나이에도 ‘어서 커 군복을 입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2차대전 종전 이후인 1948년 17살 나이로 해군에 입대한 그는 1950년 한국에서 6·25전쟁이 터지며 처음 실전에 투입된다.

 

의무병이었던 디워트 상병은 1950년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한국에서 싸웠다. 처음엔 미 해병 1사단 소속 의무병으로 활약하다가 나중에 해병 7연대로 옮겨 계속 부상당한 장병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1951년 4월 초 그가 속한 부대는 38선 부근에서 숫적으로 우세한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적의 기관총 공격으로 아군 4명이 부상했다. 이를 본 디워트 상병은 재빨리 달려가 부상자 1명을 무사히 구출했다. 이 과정에서 본인도 다리에 총을 맞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2번째 부상병을 구출하는 과정에선 어깨에 총을 맞기도 했다. 동료가 응급치료를 해주겠다고 했으나 디워트 상병은 이를 거절하고 3번째 부상병 쪽으로 달려갔다. 안타깝게도 3번째 부상병은 이미 전사한 뒤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4번째 부상병을 구하기 위해 디워트 상병이 다시 발걸음을 떼자마자 이번엔 적탄이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채 20살도 되기 전에 디워트 상병은 머나먼 이역만리 한국 땅에 뜨거운 젊은 피를 쏟으며 산화했다.

미국 매사추세츠 국립묘지에 있는 리처드 디워트 해군 상병의 묘소. 미 국방부 홈페이지

당시 디워트 상병과 함께 있었던 어느 전우는 1984년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디워트가 언젠가 ‘훗날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며 “그를 좀 더 잘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디워트는 명예훈장 수훈자로 선정됐고 아직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5월 해군장관이 고인을 대신해 그의 어머니에게 훈장을 전달했다. 고인은 고향인 매사추세츠 국립묘지에서 영면에 들었다. 미군은 그를 기리고자 해군 초계함 한 척에 ‘USS 디워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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