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 10년전 보선 정국 흡사
선거에 이기고 연속 승전고 울리거나
패배 후 재창당 전화위복 계기 되기도
서울시장 선거 승리 후 집권한 경우는
진보진영 정당 두차례·보수당 한차례
반대로 자만에 빠져 대선 패배하기도
여야 당대표 선출 전당대회에도 영향
민주 송영길·우원식·홍영표 ‘표밭갈이’
국민의힘 지도체제 개편 여부 등 주목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가 내년 대선과 당대표를 선출하는 여야 전당대회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보선에서 나타나는 민심은 11개월 후 치르는 20대 대통령 선거에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이 자파 진영의 후보단일화에 이어 정책대결보다 막판까지 상대후보 흠집내기에 올인하며 ‘혈투’를 벌이는 이유는 이번 선거가 대선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어서다.
선거에서 승자와 패자는 있기 마련이다. 7일 밤 선거에서 이긴 정당은 잔칫집으로 변해 인산인해가 될 터이다. 반대로 진 정당은 초상집처럼 스산한 분위기마저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선거 이후 정국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내년 대선에서 상황은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서울시장 선거 승리에 이어 대선에서 연속으로 승전고를 울린 정당이 있는가 하면 서울시장 선거 패배 후 재창당 각오로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 대선에서 반전을 시킨 전례도 있다. 여야가 보선 후 전당대회를 예정대로 열어 당대표를 선출할지 비대위를 구성할지는 보선 성적표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보선 성적, 대선에 독약·보약 양면성 지녀

보선 결과물은 내년 대선에서 ‘보약’과 ‘독약’ 양면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선거에서 비록 졌더라도 심기일전해 거듭 태어나는 노력을 보여 토라진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면 대선에서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장을 꿰찼다고 축배를 들며 승리에 도취해 국민은 안중에 없이 기고만장하면 내년 대선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는 의미다.
이번 서울시장 보선은 10년 전, 2011년 10월에 치러진 서울시장 보선 정국과 흡사하다. 그때도 대선 1년을 앞두고 선거가 갑자기 실시됐다. 당시 여당은 한나라당이었다. 박원순 야권 무소속 단일후보에게 서울시장직을 넘겨준 한나라당은 ‘이대로 가면 이듬해 예정된 4월 총선에 지고, 12월 대선에서도 정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위기감과 절박감이 감돌았다. 지금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여당의 유력 대선후보를 제치고 여론조사에서 1위 자리를 놓고 앞다투 듯 당시 안철수 바람이 거셌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총사퇴하고 ‘박근혜 비대위’가 출범했다. 당명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뼈를 깎는 자성의 모습으로 국민의 지지를 회복해 총선과 대선에서 연승했다.
반면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은 서울·인천시장, 경기지사 수도권 3곳을 싹쓸이한 후 이회창 대선후보 ‘대세론’이 팽배했다. 집권당 의원들이 대거 이탈해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야당이 여당 같아 보였다. 당의 구성원들은 대선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논공행상하며 ‘무장해제’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무방비 상태였던 한나라당은 후보등록 직전에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이룬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이번 서울·부산 선거에서 이겼다고 자만하며 긴장을 늦추는 정당은 내년 대선에서 낭패 볼 가능성이 크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차기 대선은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진보진영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그동안 궤멸 상태에 있다가 단일대오를 구축하려는 보수진영 간의 건곤일척 승부가 예상된다. 총성 없는 전쟁이나 다름없는 대선에서 방심은 금물이다. 한 방에 훅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무시하며 오만방자하다가 선거 때 혼쭐이 난 정당이 한둘이 아니다. 대선 정국에서 여야에 무슨 악재와 호재가 터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선거 다음 날인 8일 ‘서울시장 선거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신발 끈을 조여 매고 전열을 재정비해 국민과 함께하는 정당만이 내년 대선에서 유권자의 지지를 꾸준히 받지 않을까 싶다.

◆역대 서울시장 선거와 대선 상관관계는
역대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정당이 여세를 몰아 집권한 예는 진보진영은 두 차례, 보수진영은 한 차례 있었다. ‘서울시장 선거 당선=대통령 선거 당선’ 등식이 반드시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1995년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5명 중 조순 서울시장 등 4명(민자당 5, 자민련 4, 무소속 2명)을 당선시켰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서울시장 선거 승리 불씨를 살려 199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한나라당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6명 중 오세훈 서울시장 등 12명(민주당 2, 열린우리당 1, 무소속 1명)을 석권한 데 이어 이듬해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7명 중 서울시장 등 9명(새누리당 8명)을 거머쥐었다. 2016년 총선 때는 더불어민주당 당명으로 새누리당보다 1석 많은 123석을 얻어 원내 제1당이 됐다. 여소야대 국회가 된 것이다. 이어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내세워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웃은 정당이 총선과 대선에서 운 적도 있다. 1998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등 6명(자민련 4, 한나라당 6명)의 광역단체장을 차지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으로 문패를 바꿔 달고 115석의 원내 제2당으로 전락했다. 한나라당도 2002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등 11명(새천년민주당 4, 자민련 1명)의 광역단체장을 배출했으나 6개월 후 실시한 대선에서 어이없이 무너졌다.
◆보선 성적표, 여야 전당대회 개최 여부 결정
민주당은 보선 결과가 좋으면 5월 전당대회를 예정대로 치른다. 그러나 참패하면 전당대회 개최가 불투명해지는 등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2016년 20대 총선 후 전국 단위 선거에서 국민의힘 전신 정당을 상대로 전승을 기록한 민주당이 이번에 일격을 당하면 그 충격과 파장은 크다. 이번 선거에서 밀리면 지도부 총사퇴와 비대위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위 당직자 입에서 벌써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6일 “서울·부산시장 선거에 모두 패하면 당내에서 책임론이 나올 것”이라며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당의 달라진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 가시적인 조치의 일환으로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비대위를 출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청와대와 정부도 선거 패배에 따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당·정·청 쇄신론을 제기했다.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 보선에 직접 영향을 미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다.

송영길, 우원식, 홍영표 의원 당권 주자 3인은 보궐선거 공식선거운동 하루 전날인 지난달 24일 공동보도를 통해 “4월7일까지 일체의 당대표 선거운동을 중지하고 재보궐선거 승리를 위해 헌신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만큼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송, 우, 홍 의원은 지난 2, 3월 여의도에 선거 사무실을 각각 차린 후 전국을 돌며 조직을 점검하는 등 표밭갈이를 열심히 하고 있다.
당 안팎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민의힘은 상황을 지켜봐야 할 듯하다. 우선 보선에서 압승하면 전당대회가 열릴지,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연장될지가 관심사다. 또 전당대회를 개최하더라도 ‘선(先) 범야권 통합, 후(後) 전당대회 소집’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지도체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보선 실적이 저조하면 다시 혼돈에 빠져들 게 자명하다.
‘보선 후 사라진다’는 김종인 위원장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비대위 체제 유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당내에 존재한다. 그러나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당권 주자나 대선 후보군들은 당 정상화 명분을 앞세워 비대위 연장론에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한 당권 주자는 “김 위원장 체제가 계속할 조짐이 엿보이면 의원들이 전당대회 소집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릴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은 보선이 끝나면 조속히 전당대회를 열어 집단지도체제로 차기 지도부를 뽑아 대선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내지도부는 얼마 전 현재 단일지도체제를 집단지도체제로 당헌을 개정하는 문제와 관련해 소속 의원 상대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다. 일부는 집단지도체제는 계파 나눠먹기를 하겠다는 의도로 외부인사 영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어 지도체제 개편을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주호영 원내대표, 정진석, 서병수, 조경태, 홍문표, 윤영석 의원, 나경원 전 원내대표 등이 당대표 출마 예상자로 거론된다. 일부 의원은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와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킨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를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로 추천하고 있다. 선거 후 여야는 이래저래 시끌벅적할 것이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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