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청자 존중의 미덕이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하고 있다.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된 시청자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바로 요즘 예능판 얘기다. SBS ‘조선구마사’의 중국식 접대, tvN ‘빈센조’의 중국 비빔밥 사건 등, 자본을 좇은 드라마들이 얕은 상술을 부렸다가 시청자들로부터 철퇴를 맞고 있는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빅데이터 연구 민간 업체인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지난 4일 공개한 ‘4월 예능 프로그램 브랜드평판’ 조사 결과를 보면, 1위는 TV조선 ‘사랑의 콜센타’, 2위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다. 두 프로그램 모두 일반인 시청자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조사는 2월 4일부터 한 달간 예능 프로그램 50개의 브랜드 빅데이터 약 1억6000만개를 분석해 브랜드 확산량, 소비량, 소통량 등을 측정한 것이다. 30위 안에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MBC ‘구해줘 홈즈’ 등 일반인과 호흡하는 프로그램이 8개 이름을 올렸다.
일반인이 무대와 TV 화면을 장식하는 프로그램이 과거 KBS ‘전국노래자랑’ 정도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일반인의 예능 출연 현황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또 연예인 지망생의 데뷔용이나, 일반인의 연예인 흉내 내기가 아니라 요즘 일반인의 예능 출연은 자기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채널A ‘하트시그널’이나 음악 경연 프로그램들은 연예인의 자리를 일반인이 대신 채운 격이었지만, 이젠 한발 더 나아간다.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의 일반인 출연자들은 스마트폰을 사달라는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첫사랑에게 어떻게 고백할지와 같은 사소한 사연부터 이혼을 당한 사연, 사기를 당한 사연, 가족과의 불화, 트라우마를 입은 사연까지 어디서도 고백하기 힘들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서 꺼낸다. 보살 역을 맡은 서장훈은 멘토처럼 전문적 조언을 하기도, 가족·친구보다 더 높은 공감능력을 보여주며 카운셀링의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선배처럼 ‘팩트폭력’으로 따끔한 질책을 하기도 한다. 프로그램의 중심은 출연자의 사연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아예 재야의 고수를 찾아 떠나는 프로그램. 연예인 흉내 내기도, 연예인 못지않은 예체능적 능력을 가진 이들도 아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궈나가고 있는 성과와 노력에 두 진행자가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매회 반복되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다. 물체의 한 꼭짓점으로 물체를 세우는 특이한 능력자부터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찍는 청년, 거액의 부를 이룬 자산가나 사업가까지 출연자들은 각양각색이다. 다양한 영역에서 무언가를 이뤄나가고 있는 이들은 모두 나름의 교훈을 준다. 지향해야 할 가치가 다양해지고 권위는 점차 수평적으로 변해가는 사회 변화 속에서, 모두가 서로의 멘토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일반인 예능 출연은 이제 보편화하고 대세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강혜원 성균관대학교 문화예술미디어융합원 선임연구원은 6일 “요즘 시청자들은 짜인 것을 싫어하고 즉흥적이고 변수가 많은 스토리를 좋아한다. 예전 버라이어티 쇼는 짜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었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고, 이제는 이 자리가 일반인에게 넘어간 상태”라며 예능 프로그램의 변천사를 설명했다. 이어 “텔레비전만 보는 게 아니라 게임과 유튜브 사용이 훨씬 증가하는 등 시청자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 자체가 크게 변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 내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에 한층 익숙해졌고 그걸 무리 없이 즐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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