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같은 동인데 4라인은 7%↑ 2라인은 11%↓… “비상식적 산정”

입력 : 2021-04-06 06:00:00 수정 : 2021-04-06 02:35:2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서초구·제주도 전면 재조사 촉구

보유세·건보료 기준… 소유자 민감
조망권 등 감안해도 신뢰성 도마 위

서초구 상승률 13.5% 3배 이상 초과
대부분이 다세대·연립주택에 집중

공시가 급격한 인상 따른 부작용 커
“이의신청 최대한 수렴해 반영해야”
국토부 “평수 등 따라 변동률 달라”
재조사 촉구 원희룡 제주도지사(오른쪽)와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이 5일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정부의 2021년 공동주택·개별주택 공시가격 산정 중단 및 재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공시가격이 실거래가를 추월하고, 같은 단지 같은 동임에도 라인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책정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정부의 공동주택 공시가격 산정의 신뢰성이 의심받고 있다. 전국 평균 19.1%나 오른 올해 공시가격은 당장 보유세와 건강보험료 등의 산정기준이 되기 때문에 주택 소유자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위기다. 올해엔 특히 서울 서초구와 제주도가 엉터리 공시가격을 전면 재조사하고, 공시가 결정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서 더욱 큰 파장이 예상된다.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5일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공시가격 산정 근거 공개와 전면 재조사, 공시가격 동결, 공시가 결정권의 지방자치단체 이양 등을 정부에 건의했다. 이들 지자체는 지난달 정부의 공동주택 및 개별주택 공시가격 발표 이후 자체적으로 공시가를 전면 재조사 및 검증한 결과를 이날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의 공시가 산정 기준에 의문이 제기될 만한 여러 유형이 포착됐다. 공동주택 내 같은 동에서 어떤 집은 공시가가 급등하고 어떤 집은 하락하는 ‘복불복’ 사례가 대표적이다. 제주 한 아파트 동에서는 2번째 라인에 있는 주택들의 공시가격이 11%가량 하락한 반면 4번째 라인의 공시가격은 6~7% 올랐다. 같은 동이라도 조망에 따라 특정 라인의 시세나 공시가격이 벌어질 수는 있지만 상승과 하락이 동시에 일어나는 건 비상식적이라는 평가다.

공시가격이 실거래가보다 높아진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준공된 서초동 A아파트 80㎡의 최근 거래가는 12억6000만원이었는데 공시가격은 15억3800만원으로 책정됐다. 1984년 준공된 잠원동 C아파트 전용 177㎡는 최근 거래가가 17억3300만원이었지만 공시가격은 18억7100만원으로 책정됐다.

공시가격이 평균 상승률보다 3배 이상 오른 주택이 서민주택에 몰려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서초구에 따르면 지역 내 평균 공동주택가격 상승률인 13.5%를 3배 이상 초과하는 주택이 총 3101호였는데, 그중 대부분이 다세대와 연립주택 등이었다. 서초구의 모 빌라는 기존 거래가 없어 낮은 가격을 유지하다 실거래가 발생하자 공시가격이 100% 이상 일시에 상승했다. 서초구 방배동 주민 A씨는 “거주 목적으로 달랑 한 채 분양받은 집이 비싼 세금을 내야 하는 애물단지가 돼버렸다”며 “1인 1가구로 거주하고 있는데 확 오른 공시가에 무슨 수로 세금을 감당한단 말이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부동산원의 부실한 현장조사가 의심되는 사례도 있다. 제주공시가격 검증센터 조사 결과, 총 11개의 공동주택은 주택이 아니라 숙박시설인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펜션 등으로 영업 중임에도 공동주택으로 과세된 것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현장에 가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인데, 수년간 공동주택으로 공시돼 왔다는 것은 한국부동산원의 현장조사 부실이 오랜 기간 지속돼 왔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조사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한편 공시지가 현실화를 너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는 “현실화율을 너무 빨리 하고 있다”며 “감정평가가 아닌 먹거리 싸움 문제로 상식을 벗어나는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기를 늦추더라도 중장기적으로 탄력적인 세금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공시가격 산정 기준을 공개하지 않아 깜깜이 논란이 나오는 만큼 부동산원이 전문성을 더 갖춰 신뢰도 있는 결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국토부는 이날 설명자료를 내고 “제주도에서 제시한 사례 주택 중 1, 4라인은 33평형, 2, 3라인은 52평형으로 면적이 다르고 52평형은 2019년 대비 2020년 시세가 하락, 33평형은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동일 단지 내라도 층·향별 특성, 실거래가 추이에 따라 공시가격 변동률이 다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토부는 “공시가격은 부동산에 대한 전국적으로 일원화된 공적 가격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부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등 일원화된 기준을 갖고 공정한 공시가격 결정에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세금폭탄’ 정부의 주택 공시가격 의견 접수 마지막 날인 5일 서울 용산구의 한 건물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단지 모습. 올해 정부 발표 공시가격안이 급등한 만큼 이의신청 건수도 역대 최대치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남정탁 기자

◆“공시가격 인정 못 해”… 단지별 반발 확산

 

정부의 주택 공시가격 의견 접수 마지막 날인 5일 주택 소유자들은 단지별 집단행동을 계속하는 등 반발 움직임을 이어갔다. 올해 정부가 발표한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이 전국 평균 19.1%나 급등한 만큼 이의신청 건수도 역대 최대치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날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권은 물론 강북과 세종시 등에서 공시가격에 반발해 관할 구청에 집단 항의하거나 단체로 이의신청에 나선 단지들이 다수 확인됐다.

 

이들 단지는 입주자대표회의 등을 통해 연명부를 돌린 뒤 이의신청을 제기했고, 국토교통부와 관할 구청 게시판 주소를 공유하며 단체로 항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서울 강남에서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등이 이미 공시가격에 반대하는 입주민 의견을 모아 전날 이의신청 접수를 마쳤다. 역삼동 역삼2차아이파크 등에서는 이의신청 접수 마지막 날까지 주민들에게 의견 제출방법을 안내하며 신청을 독려했다.

 

강동구에서는 고덕동 고덕그라시움과 상일 고덕아르테온 등 인근 5개 단지가 연대해 공동 대응을 하고 있다. 이들 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는 지난달 23일 국토부와 강동구청, 지역구 의원실에 공문을 보내 공시가격 인하를 촉구했다. 연합회는 공시가격 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조세 정책에 반대하는 서명 운동에 돌입하는 등 추가적인 행동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강북권에서도 노원구 하계동 현대우성아파트 등에서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개별 이의신청을 독려하고 연명부를 돌리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경기 성남, 고양, 남양주 등에서도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피해를 우려하며 이의신청을 독려하는 단지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세종시의 경우 대다수 단지가 단체행동을 검토했거나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주민은 “이미 3주 전부터 동네 아파트 단지마다 엘리베이터 앞에 공시가격 오른 내용이 붙어 있었다”면서 “입주한 지 2∼3년 만에 처음으로 반상회를 연 단지도 많다고 한다”고 전했다.

 

문재인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방침을 천명하면서 의견제출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정지혜·안승진·나기천·박세준 기자 wisdom@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