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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기술 표준’ 줄세우기… 韓 경제도 ‘줄타기 외교’ 직면

입력 : 2021-04-05 18:44:34 수정 : 2021-04-05 22: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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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반도체 등 첨단기술 경쟁 가속
美, 反中 네트워크로 주변국 포섭
中도 AI 등 공들이며 대응책 부심
재계 “정부 기술 교류 대비책 시급”

최근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 워싱턴과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각기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회의, 한·중 외교장관회의는 안보분야와 더불어 향후 5G,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한국에 미칠 영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은 여전히 미·중의 기술 경쟁에서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데, 전통적 동맹관계가 명확하게 작용하는 군사·안보분야에 비해 더 어려운 선택의 압박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중, 주변국 ‘기술 표준’ 줄세우기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5G 분야에 ‘클린 네트워크’를 만들어 반(反)화웨이 연합을 구축했고,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글로벌 데이터 안보 이니셔티브를 만들어 이에 대항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5일 통화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 역시 사실상 클린 네트워크를 이어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는 다른 기술분야를 포괄하는 새로운 개념을 모색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싱크탱크 일각에선 반도체 분야에 주목해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 반도체 선진국들의 모임’, 즉 T12(Techno democracies 12)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초기단계일 뿐 공식적으로 언급되는 개념은 아니다.

 

이번 한·미·일 안보실장회의와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미·중 양국이 보인 행보는 불붙은 기술 경쟁과 그 사이에 놓인 한국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중국 외교부는 3일 한·중 외교장관회담 뒤 보도자료에서 5G·직접회로·인공지능(AI)·보건협력(백신) 등을 콕 집어 양국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한·미·일 안보실장회의 개최 하루 전날인 1일(현지시간)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한·미·일 3국은 반도체 핵심기술국”이라며 “이 섬세한 공급망을 공통된 규범과 기준에서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중이 주변국들을 자신의 기술 표준으로 포섭하려고 하는 것은 이 경쟁이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미·중 경제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5G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AI 기술은 최근 중국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한국은 어디로

 

한국은 아직 기술·경제분야의 미·중 경쟁에서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명확한 군사·안보분야와 달리 경제, 기술분야에서의 미·중 경쟁은 한국이 어느 한 쪽을 택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그럴수록 우리만의 원칙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오지만 이 분야에서 명확한 원칙이나 관행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다.

 

우리 기업들은 정부가 이 분야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정리하느냐 따라 상당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특히 5G나 AI 등 첨단기술을 주력 성장동력으로 삼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곤혹스러운 처지다. 삼성전자는 오는 12일 미국 백악관이 주요 반도체·완성차 기업들과 최근 반도체 부족 사태에 대한 긴급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회의 자리에 초청받았다.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추진 중인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의 미국 내 신규 투자를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중국도 투자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우리나라 반도체 최대 수출국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도와 방법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의 기술·무역 관련 분쟁이 발생하면 이는 한국 경제에 분명한 ‘적신호’”라며 “정부와 경제계가 함께 불확실한 통상·기술 교류 환경에 대비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주형·나기천 기자,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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