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 때 호텔업계 투신… 2019년 한국 부임
총지배인으론 ‘힐튼 나고야’ 이어 두 번째
최악의 코로나사태 , 과감한 변화로 돌파
객실마다 완벽한 방역 후에 ‘안심 스티커’
스위치 등 손 자주 가는 곳 추가 소독 실시
매일 직원식당 이용하며 구성원과 소통
조깅하며 출퇴근… “머리 비울수 있어 좋아”

“총지배인의 권한이요? 권한보다는 책임으로 설명하는 게 이해하기 쉽겠네요. 결정권이라기보다 모든 책임을 다 제가 집니다. 인사, 재무, 경영 등 호텔 업무 전반에서 제가 책임을 지고 해결을 해야 합니다.”
호텔업계의 별은 ‘제너럴매니저’다. 호텔 프런트, 식당 등 다양한 현장 업무에서 경험을 쌓은 호텔리어가 올라가는 가장 높은 자리다. 독일 출신 필릭스 부쉬 총지배인은 38년 역사를 지닌 서울 최고급호텔 밀레니엄힐튼 서울(이하 남산 힐튼) 총지배인으로 2019년 9월에 부임했다.
“십대 시절 호텔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있어서 레스토랑에서 서빙하곤 했죠. 그러면서 고객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는 일이 너무 좋아서 호텔업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원하는 분야에서 인턴을 경험하고 경력을 개발하는 건 고국 독일만이라기보다는 유럽에선 흔한 일이죠. 원래 첫 업무는 회계 쪽이었는데 고객과 소통하고 싶어서 업무지원부서가 아닌 현장 업무를 자원했어요.”
남산 힐튼은 25세에 호텔업계에 투신한 그의 총지배인으로서 힐튼 나고야(2015년)에 이은 두 번째 부임지.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호텔업계 최악의 사태를 겪어야 했던 필릭스 총지배인은 과감한 변화로 위기의 파고를 넘어섰다. 직원들과 함께 신메뉴를 개발해 호텔 뷔페 식단을 싹 다 바꾸다시피 했고 발 빠르게 투숙객이 객실에 들어서기 전 청소와 방역을 완벽하게 마친 후 객실 문에 안심 스티커를 부착해 밀봉하는 ‘힐튼 클린 스테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객실 방역 강화를 위해선 스위치, 손잡이, 리모컨, 온도 조절 장치 등 고객 손이 자주 가는 접점에 특별히 신경을 써 추가로 소독을 진행했다.
비즈니스 중심이었던 호텔 영업도 고객 친화형으로 바꿔 나갔다. 키즈카페를 객실 안에 들여놓은 패키지 상품을 선보였고 최근에는 반려견 전문 훈련 프로그램까지 출시했다. 필릭스 총지배인은 “비즈니스호텔에서 가족친화형 호텔로 나아가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 2019년까지 매출의 상당 부분은 당연히 해외고객이었는데 2020년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그 공백을 호캉스 등 국내 여행객으로 완벽히 채우지는 못해도 살아남아서 힐튼 존재감을 지켜 나갈 수 있었다.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호텔 총지배인 리더십은 각양각색이다. 구름 위 존재처럼 군림하는 경우도 있는데 필릭스 총지배인은 반대다. “호텔마다 총지배인 성향이 다른데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관여하는 쪽입니다. 고객과 접촉을 꺼리는 지배인도 많은데 저는 소통하려 해요. 사원급 직원들과도 많은 부분에서 소통하려 노력합니다. 사실 총지배인은 호텔 내 어느 레스토랑에서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저는 거의 매일 직원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직원들과 함께 먹습니다. 하하.”
많은 부분 비슷하고 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컸을 일본 생활과 한국 경험을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그는 직원과 고객을 나눠 답했다. “직원의 경우 일본은 대체로 변화에 무심하지만 한국은 적극적이고 기꺼이 변화에 동참하려 합니다. 변화를 위한 토론을 하자면 일본은 대략 열번은 토론에 앞서 사전 회의를 해야 합니다. (규칙에 엄한) 독일과 일본이 비슷하지 않으냐고요? 하하. 아닙니다. 의사결정에서 속도내는 걸 좋아하는 건 독일과 한국이 닮았습니다.”
투숙객도 한국이 훨씬 더 호텔 서비스 개선이 쉽다는 설명이다. “한국 고객은 보다 투명하게 호텔 서비스 이용 경험을 전하는데 그만큼 우리가 가진 문제를 빨리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힐튼호텔은 고객 만족을 보장하는 ‘메이크 잇 라이트(make it right)’를 고객과 약속하는데 일본 문화에선 고객이 겪는 불편을 몰라서 개선 기회를 놓칠 때가 많아요.”
호텔 총지배인은 식당 이용은 물론 거주도 호텔 최고급 객실에서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필릭스 총지배인은 서울 이태원에서 매일 조깅으로 출퇴근한다. “원래 총지배인용 거주공간에 다른 손님이 장기투숙 중이어서 호텔 밖에서 살게 됐어요. 어린 두 딸은 호텔 밖 생활이 처음인데 새로운 경험에 행복해합니다. 저도 출퇴근하는 동안에는 머리를 비울 수 있어서 만족스럽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일부러라도 하루에 한 번씩은 호텔 밖에서 시간을 보냈거든요.”
영국, 독일, 호주, 일본 등에서 여러 호텔을 경험한 그에게 최고의 호텔이 지녀야 할 조건에 관해 물었다. “역시 서비스죠. 돈만 들이면 훌륭한 호텔을 지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고객에게 잊지 못할 추억과 경험을 주는 건 서비스입니다. 저도 네 가족이 다른 호텔에 묵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좋은 호텔이라면 프런트에서 먼저 ‘저녁식사 예약을 해드릴까요. 네 식구 자리이면 예약을 하는 게 좋거든요’라고 세심한 신경을 써주는 거죠.”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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