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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자살 시도자 구조가 끝이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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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05 23:12:52 수정 : 2021-04-05 23: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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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하늘나라로 간다.” 얼마 전 기사가 될 만한 사건·사고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소방서에 알아보던 중 한 여성의 극단적 선택 시도 소식을 접했다. 40대 A씨가 유서를 남긴 채 집에서 약물을 삼켰다는 것이다. 당시 그의 옆에는 어린 아들도 있었다. 다행히 A씨는 구조 후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틀 뒤 문득 A씨가 걱정돼 소방서와 지구대에 안부를 물었다. 그러나 이들의 대답은 모두 “모른다. 우리 책임이 아니다”였다. 소방은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에 이송하는 것까지가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구타·살인 등 범죄 정황이 포착되지 않으면 사건을 종결한다고만 했다. 이들의 업무에 자살 시도자 관리까지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다른 기관에 제대로 연계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몰랐다. 아무도 A씨에 대해선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김병관 사회부 기자

소방서에 전화를 돌리다 보면 하룻밤 동안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울 영등포·구로·강서·양천구에서만 하루 평균 3∼4건의 출동 이야기를 듣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목숨을 끊은 사람은 하루 평균 38명에 달한다. 숨이 끊어지기 전 구조되는 사람도 많은 것을 고려하면 극단적 선택 시도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과 소방의 활약으로 극단적 선택 시도자 중 상당수는 목숨을 구한다. 문제는 이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극단적 선택 시도자는 나중에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보건복지부가 2017년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하다가 응급실에 실려 온 8500여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35.2%가 그 전에 자살을 시도한 적 있다고 한다.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은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자살 위험이 25배 높다는 조사도 있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던 사람들을 잘 돌보기만 해도 자살률을 많이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A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구조 이후 체계적인 관리가 부재한 게 현실이다. 전문성을 지닌 자살예방센터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현행 자살예방법에 따르면 자살 시도자 본인이나 가족 동의 없이는 경찰이 이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조차 할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국가’의 현실이다.

 

얼마 전 행주대교에서 뛰어내리려던 20대 여성 B씨를 60대 부부가 구조한 이야기를 보도했다. 엉엉 울며 살기 싫다고 말하는 B씨가 ‘자식 같아서’ 지나칠 수 없었다는 부부는 구조대가 오기까지 10여분간 B씨를 안고 다독였다고 한다. 훈훈한 소식에 감동했다는 독자들의 댓글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살아가야 하는 것은 그 여성인데 남은 생애를 책임져 줄 수 있냐”는 뾰족한 댓글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처럼 저마다의 사정으로 힘든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데서 사회의 역할이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이들이 ‘연장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가 구조의 종착지가 돼야 한다.

 

B씨를 구한 부부는 “인생은 힘들지만 살아봐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B씨가 그 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를, 그래서 앞으로도 용기 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김병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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