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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바둑의 개척자’ 김인 “바둑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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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04 16:07:22 수정 : 2021-04-04 1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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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영면한 김인 9단은 바둑계에서 ‘영원한 국수’로 통했다.

 

올드팬들은 김인을 ‘한국 현대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9단의 아성을 무너뜨린 기린아’로 기억하고 있다.

 

1966년 10기 국수전에서 23세의 김인은 당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조남철에게 3-1로 승리하며 국수 타이틀을 쟁취했다. 현대바둑 사상 첫 세대교체였다. 1966년 2월 11일자 동아일보 1면은 ‘새 國手에 김인 5단, 조남철 棋聖 10년 만에 붕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1943년 전남 강진 바닷가에서 태어난 김인은 13세 때 바둑판을 안고 야간열차로 혼자 상경했다.

원로 김봉선과 아마 고수 이학진을 사사한 김인은 15세인 1958년 프로가 됐다.

 

19세 되던 1962년 제6기 국수전에서 조남철에게 도전한 김인은 1승 1무 3패로 패했다.

 

국수전이 끝나고 나흘 뒤인 3월 9일 김인은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조남철의 소개 편지로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문하생이 된 김인은 기타니 도장 사범 시절 조치훈을 지도하기도 했다.

김인이 같은 또래 유망주들을 상대로 80% 전후의 승률을 기록하자 당시 일본에서는 ‘머지않아 김죽림(金竹林) 시대가 올 것’을 점치기도 했다. 한국, 일본, 대만 출신 유망주들인 김인,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 린하이펑(林海峰)이 조만간 바둑계를 지배한다는 얘기였다.

 

김인은 1963년 11월 스승 기타니 9단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본 생활 20개월 만에 귀국했다. 엄격하고 규율이 강한 기타니 도장 생활이 자유분방한 성격의 김인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국한 김인은 이후 국수 6연패, 왕위 7연패, 패왕 7연패 등 국내 전 기전을 휩쓸었다.

1978년 김인은 13기 패왕전과 4기 기왕전에서 각각 조훈현, 김희중에게 패하며 마지막 타이틀을 잃었다. 이후 김인은 타이틀 획득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한국 바둑 일인자 계보는 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이세돌로 이어졌으며, 현재 박정환·신진서 9단이 뒤따르고 있다.

 

이목이 수려하고 기품 있는 김인의 대국 태도는 팬들을 매료시켰다. 중후한 기풍을 지닌 김인은 상금과 대국료로 가난한 동료들에게 밥과 술을 많이 산 것으로도 유명하다.

백남(白南)배라는 타이틀전은 김인이 타이틀을 잃자마자 사라졌다. 대회 스폰서였던 모대학 이사장이 오직 김인 만을 위해 만들었던 대회였기 때문이다.

 

바둑이 지닌 도(道)의 가치를 고수했고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한 김인 9단은 TV바둑이 바둑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고집스레 참가하지 않았다. 후배들은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을 변치 않는 청산(靑山)이라고도 부른다.

2016년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세기의 대국’을 앞뒀을 때도 김인은 “바둑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며 “흔히 바둑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바둑은 단순한 수 싸움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인은 2007년부터 고향 강진에서 개최된 ‘김인 국수배’에 참가하며 아마추어들과 만나는 것을 즐거워했다. 2007년 전국어린이 바둑대회로 출범한 김인국수배는 2008년 국제시니어바둑대회로 업그레이드됐고, 매년 해외에서 대회장인 전남 강진까지 출전한 선수들로 국제대회의 위상을 갖춘 바 있다.

2019년 10월 제13회 김인국수배를 참관한 고인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회가 취소되자 무척 안타까워했다.

 

김인은 위암으로 오랜 기간 투병했고, 간암으로 전이돼 최근 급속히 병세가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부터 한국기원 이사를 지낸 그는 투병 중에도 바둑대회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빈소는 연세대학교 신촌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한국기원장으로 치러진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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