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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지상도로 택배차량 출입 금지…택배물품 그대로 방치

입력 : 2021-04-04 10:05:51 수정 : 2021-04-04 10: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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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차량 지상운행 금지, 주민대표기구가 안전사고·시설물 훼손 우려 등을 이유로 내린 결정

최근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지상도로에 택배차량 출입이 금지되자 배송기사들이 정문 근처에 택배를 쌓아놓아 택배 물품이 그대로 방치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택배차량 지상운행 금지는 주민대표기구가 안전사고와 시설물 훼손 우려 등을 이유로 내린 결정이다.

 

하지만 배송기사는 물론 일부 주민까지 차량 통제에 반대하고 나서 과거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나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벌어진 '택배 대란'과 유사한 양상을 보일지 주목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4일 서울의 A아파트 주민들과 관리사무소 등에 따르면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아파트 단지 내 지상도로에서 차량 통행을 전면 금지하기로 하고 이달 1일부터 통제를 시작했다.

 

아파트 측은 긴급차량과 이사차량 등 지상 통행이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지하주차장을 통해 이동하도록 했다. 하지만 일반 택배차량(탑차)은 차체가 지하주차장 진입 제한높이인 2.3m보다 높아 아예 단지 내에 들어가지 못한다.

 

지난 2일 오후 A아파트 후문 인근 경비실 앞에는 택배 상자 1천여개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아파트 입구까지 택배를 직접 받으러 나온 주민들은 불편은 물론 물품 손상이나 분실이 우려된다고 입을 모았다.

 

주문한 김치를 찾으러 온 김모(52)씨는 "아내가 김치가 쉰다고 빨리 가져오라고 해 급히 왔다"면서 "맞벌이하는 사람들은 뙤약볕에 몇 시간 동안 택배를 놔둬야 하는데 음식이 상하면 어떡하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택배차량 지상 출입금지 공지를 받지도 못했고 그런 결정에 동의하지도 않았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건강식품을 직접 가지러 왔다는 정모(74)씨도 "낮에는 나 같은 노인이 대부분인데 어떻게 여기까지 무거운 짐을 가지고 가겠나. 길에 널브러진 택배를 누가 집어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라고 했다.

 

택배기사들은 뾰족한 수가 없다는 반응이다. 택배기사 유모(39)씨는 "어제부터 3개 택배사 탑차 4대가 입구 앞에 택배를 내려놓고 있다"며 "1년간 받을 고객 항의전화를 하루에 다 받은 것 같은데, 우리도 딱히 방법이 없다"고 했다.

 

유씨는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는 저상차량으로 바꾸라는 아파트 측 요청도 있었지만, 개인사업자인 기사들이 사비 수백만원과 수개월의 시간을 들여 차를 개조할 여유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각 동 근처 도로에 차를 세우고 배달하려 해도 불법주차로 교통범칙금을 내게 될 우려가 있어 어렵다"고 말했다.

 

아파트 측은 지난해부터 택배사에 출입통제 방침을 충분히 예고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애초 이 아파트는 지상에 차가 다니지 않는 '공원형 아파트'로 설계됐다"며 줄곧 택배사들의 편의를 봐주다 주민들의 거듭된 요구에 제한을 시작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작년 말 단지 내에서 택배차가 아이를 칠 뻔한 적도 있었고, 택배차가 자주 다니면 보도블록이 파손돼 관리비 부담이 늘어나 주민들이 판단한 것"이라며 "택배기사들이 아파트 지침에 협조하지만, 일부 기사만 '배짱 영업'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A아파트 주민 3천500명가량이 가입한 온라인 카페에서는 이달 1일 이후 택배 관련 글이 다수 올라오며 대안을 찾으려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일부 주민은 택배차량을 위한 별도 동선을 만들거나, 단지 내에 배송된 택배 물품을 노인 배달원들이 각 세대로 재배송하는 '실버 택배'를 도입해 갈등을 해소한 인천지역 사례를 공유하기도 했다.

 

주민 정모(44)씨는 "생각이 다른 주민과 택배사가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한 동네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오래가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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