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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850살 반룡송 따라 떠나는 시간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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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04 09:00:00 수정 : 2021-04-04 02: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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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비상하듯 850살 반룡송 푸른 생명력 ‘꿈틀’
천년고찰 영원사 은행나무도 840살 ‘어르신’
육괴정 늠름한 느티나무 여섯 선비 우정·풍류 담겨
이천 반룡송

마구 비틀어지며 사방으로 뻗어나간 몸통은 마치 용틀임하는 듯하다. 그 기묘한 모습에 보는 순간 입이 쩍 벌어진다. 수백년 세월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신비한 소나무는 경기도 이천의 반룡송.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하다. 나무의 생명력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이천의 고목들을 따라 시간여행을 떠난다.

이천 반룡송 전경
이천 반룡송 표지석

 

#신비로움 가득한 850살 반룡송

 

이천 산수유마을에서 원적로를 따라 동쪽으로 5분 정도 달리다 보면 도립리 어산마을의 광활한 논밭 한가운데 진한 초록의 키 낮은 나무 군락이 섬처럼 둥그렇게 떠 있다. 저런 곳에 울창한 나무 군락이 있는 것이 신기해 가까이 다가가 본다. 반룡송은 겉에서 볼 때는 그냥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가지 사이로 헤치고 들어가자 그 진가를 드러낸다. 기생하는 작은 소나무를 제외하면 커다란 군락으로 보이던 소나무는 단 한 그루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더구나 하나의 거대한 몸통에서 부챗살을 펴듯 원형으로 쫙 뻗어나간 팔다리의 희한한 모습에 입을 다물 수 없다. 전체 높이는 4.25m, 가슴높이 둘레는 1.83m인데 높이 2m 정도에서 용틀임하듯 180도로 휘어지며 사방으로 갈라져 넓게 퍼져 나갔다. 특히 갈라지기 직전의 몸통은 밧줄을 칭칭 감듯 360도로 회전하면서 똬리를 틀은 모습이 아주 신비스럽다. 여행자들은 “와 신기하다”를 반복하며 두 팔을 벌려 영험한 기운을 듬뿍 받는다.

이천 반룡송
이천 반룡송

이천 9경 중 제6경인 반룡송 수령은 850살로 추정되며 1996년 천연기념물 제381호로 지정됐다. 피부가 용비늘 같은 붉은색인 데다 마치 용이 하늘로 비상하기 직전 땅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듯한 형상이라 ‘반룡송(蟠龍松)’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일만년 이상 살아갈 상서로운 소나무로 여겨져 ‘만년송(萬年松)’으로도 불린다. 신비로운 소나무라 당연히 많은 전설이 담겨 있다. 신라 말기 풍수지리의 큰 스승으로 불리는 도선대사가 장차 난세를 구할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 예언하며 심은 소나무 중 하나라는 얘기가 대표적이다. 도선이 전국 팔도의 평당을 두루 찾아다니며 이천 백사면과 함흥, 서울, 강원 통천, 충청 계룡산 등에 나무를 심었는데 함흥에서 이성계, 서울에서 영조, 계룡산에서 정감록을 지은 정감이 태어났단다.

이천 반룡송
이천 반룡송

도선이 심은 열 그루 소나무 중 반룡송만 살아남은 것으로 전해진다. 나무의 껍질을 벗긴 이가 병으로 죽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영험한 기운을 얻기 위해 최근까지도 반룡송 앞에서 굿을 하는 등 무속행위가 잦았다. 이에 이천시는 ‘무속행위로 적발되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고발하겠다’는 경고문을 반룡송 앞에 크게 세워 놓았다. 백사면 신대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53호 이천백송과 함께 이천을 대표하는 고목이다. 껍질이 하얀 백송은 우리나라에 8그루에 불과한 희귀한 소나무다.

이천 영원사 전경
이천 영원사 대웅전

 

#‘영원불멸의 삶’ 영원사 840살 은행나무

 

반룡송 인근 천년고찰 영원사로 향한다. 이곳에도 신비로운 나무 한 그루가 터를 잡고 있어서다. 입구로 들어서자 원적산 동쪽 산중턱에 자리 잡은 영원사 대웅전 앞을 한눈에도 고목으로 보이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지키고 있다. 840살 정도로 추정되는 은행나무의 높이는 25m, 둘레는 4.5m다. 고려 전기 문종 때 해거국사가 이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용문사 은행나무 수령은 1100살로 높이 42m, 줄기 아래 부분 둘레는 약 15m다. 이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영원사 은행나무가 800년을 넘게 노란 잎을 피우는 모습은 신기할 따름이다. 아직 잎이 나지 않은 상태라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나간 줄기의 자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절의 창건과 내력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적기에 따르면 신라시대인 638년(선덕왕 7년)에 창건됐다. 1300년이 넘은 역사를 간직한 사찰을 거닐어 본다. 고요한 산사에 울려 퍼지는 새소리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1068년(문종 22년)에 혜소국사가 화재로 소실된 절을 중건했고 1825년(순조 25년)에 중건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천 영원사 은행나무
갈산리 석불입상

 

은행나무 앞 갈산리 석불입상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일대 다른 석불입상보다 몸체가 호리호리한 모습이 독특하다. 원래 인근 갈산동의 폐사된 미륵사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있던 석불로 세 동강 나 있던 것을 2019년 영원사로 옮겨 복원했다. 고려 중기에 조성된 석불로 양볼이 넉넉하고 미소가 따뜻해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불상의 머리는 높고 위가 평평해 마치 관모를 쓴 것 같은 모습이 독특하다. 이천시 신둔면과 백사면에 걸쳐 있는 해발 634m 원적산은 이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머무른 곳이다. 사찰 오른쪽으로 원적산과 정개산, 천덕봉으로 연결되는 등산로가 시작돼 많은 등산객들이 이곳을 거쳐 간다.

이천 육괴정
육괴정 느티나무

#선비 6명 우정 담긴 육괴정 500살 느티나무

 

백사면 도립1리 산수유마을로 들어서면 작은 연못 남당 뒤로 도립리 육괴정과 한눈에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늠름한 느티나무가 여행자를 맞는다. 육괴정은 조선 중종 14년(1519년) 기묘사화 때 난을 피해 낙향한 엄용순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의를 높이 우러르며 학문이 깊던 그는 당대의 대학자이던 김안국, 강은, 오경, 임내신, 성담령과 어울려 시를 읊고 학문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그 우정과 의리를 기리기 위해 정자 앞에 연못을 파고 주변에 느티나무 여섯 그루를 심었다. 이에 느티나무의 나이는 500살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14m, 둘레 6.35m에 달하는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 서니 여섯 선비가 정자에 앉아 연못에 비친 달을 즐기고 술잔도 기울이며 시를 읊조리는 풍류가 그려진다. 여섯 그루 중 세 그루가 고사했는데 후손들이 새 느티나무를 심어 여섯 선비의 우정을 후대에 전하고 있다. 

 

이천=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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