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헤움 마을에 마젤이라는 정치지도자가 있었다. 어느 날 말과 마차를 보관하는 커다란 헛간에서 불이 났다. 사람들이 불을 끄기 위해 헛간으로 달려갔으나 진화 방법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그때 마젤이 소리쳤다. “새 짚을 가져다 불길을 덮으면 화마가 짚더미에 눌려 날뛰지 못할 것이오.” 어떤 이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만류했지만 그는 듣지 않고 밀어붙였다.

마젤의 추종자들은 그의 지시에 따라 마른 짚을 가져와 헛간의 불길 속으로 던졌다. 이제 불길은 짚더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환성을 질렀다. 하지만 불길은 짚더미 속에서 맹렬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도자는 짚을 더 많이 가져오라고 채근했다. 불길은 약해지더니 잠시 후 더 거세졌다. 마젤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후임 정치지도자는 헛간에서 불타고 있는 짚들을 꺼내 골목에 흐트러뜨리라고 명했다. 온 마을이 불길에 휩싸였다.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더 많은 짚을 가져오시오.” 류시화 작가가 쓴 ‘인생 우화’에 나오는 내용이다.

헤움의 우화는 정부 부동산정책의 판박이다. 정부는 가격을 옥죄고 보유세를 올리는 규제대책으로 집값 폭등에 대응했다. 부동산 불길은 잡히는 듯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책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반색했다. 그의 장담과는 달리 불길은 더 거세졌다.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전문가의 목소리는 묵살된 채 더 센 대책이 동원됐다. 그렇게 쏟아낸 대책이 25번이다. 급기야 불길은 온 나라로 번지고 말았다. “더 많은 짚을 가져오라”는 지도자의 엉터리 대책이 낳은 결과물이다.

집값의 불길보다 더 매서운 것이 사람의 가슴을 태우는 ‘부동산 내로남불’이다. 집권층은 집값 폭등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의 책임을 과거 정부의 적폐 탓으로 돌린다. 전·월세 인상 제한 임대차 법안을 대표발의한 여당 의원은 미리 자기 아파트의 월세를 9% 올렸고, 청와대 정책실장은 법 통과 하루 전에 집 전세금을 14%나 인상했다. 입으로 서민 임차료를 걱정하던 이들의 가면 속 얼굴이다. 우화보다 더 기막힌 일들이 대한민국의 일상이 되고 있다.

배연국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