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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태풍이 지난 후 맑은 하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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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02 22:35:29 수정 : 2021-04-02 22: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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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네의 ‘태풍’

서양미술사 최고 전성기로 불리는 르네상스 미술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을 나타냈다. 피렌체를 중심으로 다 빈치, 미켈란젤로, 그리고 라파엘로 등의 예술적 성과가 빛을 발했다면,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에서도 나름대로 예술적 성과가 나타났다. 그중에서 피렌체만큼 중요한 도시가 베네치아였다.

피렌체가 지식인과 성직자들의 도시였고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다면, 베네치아는 무역과 상업으로 돈을 번 상인들의 도시였으며 자유로운 성향을 나타냈다. 항구 도시 특유의 밝은 대기와 물 위에서 반사되는 빛의 화려함도 베네치아가 지닌 중요한 특징이었다. 두 도시의 이런 성격 차이에 따라 피렌체 미술은 원근법이나 구도 같은 지적인 측면을 중시하고 소묘를 강조했고, 베네치아 미술은 색을 강조하고 밝은 대기의 효과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베네치아 미술의 시작을 연 대표적인 화가는 조르조네였다. 그의 그림 ‘태풍’에선 색채들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선이나 형태 보다 색채의 감각적인 측면이 눈을 사로잡는다. 화면 전체에 흐르는 충만한 빛과 대기와 색채 층의 변화가 베네치아 미술만의 독특함을 이루면서 부드럽고 따스한 분위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내용은 이렇다. 도시에서 도망 나온 한 여인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언덕 위에 앉아 있고, 그 옆에서 목동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안고 있는 아기는 장차 영웅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 한다. 전경의 인물들 뒤로 나무와 다리가 보이고, 멀리 건물들과 밝은 빛으로 충만한 하늘과 구름이 펼쳐지고 있다. 이것들이 단지 배경 역할에만 그치지 않고, 전경의 인물이나 장면과 일체감을 이루면서 그림 전체의 통일성과 깊이감도 만들어낸다.

복선도 있다. 구름 사이로 번쩍이는 번개가 곧 태풍이 몰아칠 것을 암시하고 있다. 미세먼지, 계속되는 코로나, 지도자들의 위선에 선거까지 겹쳐 마치 태풍 한가운데 서 있는 심정이다. 영웅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책임 있는 지도자를 보면서 마스크 벗고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봄을 만끽하고 싶을 뿐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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