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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년… ‘재난 유토피아’ 가능성 보이나

입력 : 2021-04-03 03:00:00 수정 : 2021-04-02 20: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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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영세업자… 불평등 최하층 사람들
양극화가 지어낸 복지 사각지대 방치 확인
팬데믹 사태로 국가 적절한 역할 필요 제기

김누리·최배근 교수 등 각계 최고 전문가들
코로나 이후 우리사회 드러난 민낯들 분석
새로운 세계로 나가기 위한 해결책 등 모색
코로나19 팬데믹은 한국사회의 낡은 질서를 드러내며 그 아래서 신음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배가시켰다. 사진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구제대책을 요구하는 자영업자들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코로나 사피엔스-새로운 도약/김누리 등 지음/인플루엔셜/1만6500원

 

재난은 예상치 못한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거대한 재난은 낡은 사회질서를 작동 불능으로” 만들어 그간의 규칙들은 깨지고 체제는 전복되어 뜻밖에 질적으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밝혀주는 것이다. ‘재난 유토피아’란 말로 대변되는 재난의 이면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재난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가. 대답은 코로나19 사태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민낯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에서 얻을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낡은 질서는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 불능으로 만들어 사회 변화를 촉발하는 혁명의 가능성으로 만들 것인가.

책은 각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이들이 모여 진행했던 ‘2020년 경기도 지식콘서트’의 주요 강연 8개를 선별해 엮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선명하게 드러난 문제를 짚으며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김누리 등 지음/인플루엔셜/1만6500원

#‘빈곤’이라는 치명적 기저질환

바이러스의 공격성이야 사람을 가리지 않는지라 전염병 앞에 인간은 평등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응은 공평하지 않다. 중앙대 김누리 교수는 “코로나19가 특정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에게 더욱 위험하다고 하는데, 그에 못지않게 위험한 사람은 불평등 구조의 최하단에 있는 사람”이라며 “소규모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길이 막막한 그들 역시 ‘빈곤’이라는 치명적인 기저질환을 피할 길이 없다”고 단언한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를 “어떤 안전망도 보호장치도 없는 불안 사회가 대한민국을 ‘현대 니힐리즘(허무주의)의 가장 급진적 형태’로 만들었다”는 한 외국인 철학자의 진단에 동의한다. 팬데믹은 극심한 양극화, 불평등의 그늘이 만들어낸 복지의 사각지대를 고통스럽게 확인하도록 했고, “국가가 불평등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했다.

김 교수는 경제발전의 혜택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돌아가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국가의 적절한 개입과 역할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재정지출 확대는 구체적인 방안이다. 그는 지난해 한국의 기초재정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7%로 34개 주요 국가 중 두 번째로 적다는 사실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른 나라들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고 고통에 빠진 국민들을 돕기 위해 막대한 수준의 재정을 쏟아부을 때 한국은 상대적으로 인색했다는 말이거든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사회적 투자’,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약간의 경험치를 얻긴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낯설고, 논란이 거센 주제다.

건국대 최배근 교수는 미국, 핀란드, 독일, 스위스 등에서 기본소득을 추진 중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한국 역시 2016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첨예한 찬반 논쟁으로 발전했다”며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충격이 가해졌고, 극심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움직임에 속도가 붙으면서 기본소득이 전 세계적인 어젠다로 떠오르게 됐다”고 분석한다.

그가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며 집중하는 것이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많이 일자리를 잃은 청년층이다. 월세, 등록금, 스펙 쌓기를 위한 비용 등에 시달리며 오랫동안 취업을 준비해도 기다리는 건 비정규, 저임금의 불안한 일자리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청년이 희망을 가질 수는 없고, 그런 사회에 미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최소 생계비의 일정 부분을 국가가 부담하는 정책으로서 기본소득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최 교수는 특히 청년층에 대한 기본소득 지급이 “‘복지’나 ‘퍼주기’의 관점이 아닌 ‘투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성장과 혁신의 주체가 되어야 할 청년층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고, 이를 위해 노동시간을 줄여주어야 한다. 줄어든 노동시간 만큼 소득의 감소를 보존해주는 것이 기본소득이며 “그런 점에서 청년 대상의 기본소득 지원은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언컨택트 시대의 핵심은 수평성, 공평성”

화상회의는 코로나 시대의 키워드인 언컨택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직위에 상관없이 동일한 크기로 분할된 화면 속에서 의견을 나누는 풍경은 위계에 따라 배치된 사무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김용섭 소장은 “언컨택트 시대에는 수평성과 투명성이 높아져 진짜 실력자와 밀도 높은 콘텐츠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권위주의 해체는 모든 조직에서 오랫동안 추구했던 바이지만, 실제를 들여다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언컨택트 시대는 이런 사정을 크게 바꿔놓았다. 서열화된 공간에서 벗어나 재택근무 혹은 원격근무를 하고, 네트워크에 쌓인 데이터가 업무성과를 말해주는 게 일상화되다시피하면서 극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김 소장은 권위주의와 연공서열을 깨고 수평화를 가져온 비대면 업무 방식이 깨뜨리고 있는 악습 중 하나로 “기성세대의 ‘짬짜미’ 문화”를 꼽는다. 얼굴을 보며 밥을 먹고, 술도 마시며 우리 편, 남의 편을 가르던 것이 비대면으로 일을 하다보니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대면이 주는 인간적 정서와 유대의 필요성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한 살만 많아도 선배, 윗사람 노릇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언컨택트는 서열화와 인맥주의의 문제를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수평성, 투명성을 핵심으로 하는 언컨택트를 인류 진화의 지향점으로 설명하며 “앞으로 그 속도가 빨라질 것이고, 당장은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이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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