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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아이 낳기도, 키우기도 힘든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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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3-31 22:59:41 수정 : 2021-03-31 22: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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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예산 올해만 46조… 낳고 싶은 환경부터 만들어야

최근 주말에 아내와 아이 셋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동네 식당에 갔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5명인데, 우리는 가족”이라고 설명했다. 식당 관계자는 “가족관계를 증명할 서류를 보여달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규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미리 인터넷을 통해 주민등록표등본을 발급받아 종이에 인쇄한 뒤 작게 접어서 지갑에 넣어두고 있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 있게 지갑을 꺼냈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그 서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요즘 스마트폰으로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해 어지간해서는 지갑을 잘 들고 다니지 않아 업무용 가방 안쪽 포켓에 넣어뒀었는데, 그 안에서 서류가 빠져버린 모양이었다.

우상규 경제부 차장

내가 당황해하며 “서류를 안 가져온 것 같다”고 했더니, 식당 관계자는 “가족이라는 말을 안 믿는 것은 아니지만, 방역지침이라 어쩔 수 없다”며 자리를 내줄 수 없다고 했다. 각자 스마트폰이 있었지만, QR코드로 개인 식별은 가능해도 가족임을 증명할 방법은 찾지 못했다. 식당 관계자도 “서류 제시 말고 다른 방법은 모른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식당 문을 열고 나오는데, 아이들의 눈동자에 실망과 원망이 가득해 보였다.

며칠 지났을 때 문득 ‘스마트폰으로 웬만한 민원서류는 발급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였다. ‘정부24’ 앱으로 주민등록표등본의 전자지갑 발급이 가능했다. 언제든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정부의 안내 자료는 물론 어디에서도 본 기억이 없다. 하긴 아이가 두 명 이하라면 굳이 알 필요도 없다. 세 자녀 이상 가정이 얼마나 된다고 정부가 꼼꼼하게 그런 것까지 따져보고 안내하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식당 추방’ 경험은 아주 사소한 개인적인 문제다. 스마트폰 발급을 떠올리지 못한 내 잘못도 있다. 그런데 정부의 세심한 배려가 없어서 아쉽다고 느끼는 건 지나친 걸까.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하는 ‘전자정부’도 정작 필요할 때 몰라서 못 쓰면 무슨 소용일까 싶다.

정부가 지난해까지 15년 동안 저출산 대책에 225조원의 재정을 투입했다고 하지만 출산율은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출산율은 0.84명으로 역대 최저였다. 아이를 더 낳으라는 구호만 외쳤지, 아이를 더 낳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데 얼마나 신경을 써왔는지 모르겠다.

청년이 좋은 일자리를 가져야 마음 편히 연애를 하고, 보금자리를 장만할 수 있어야 결혼도 하고, 양육 걱정이 없어야 아이도 낳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주위를 보면 사상 최악 수준의 청년 취업난, 집값 급상승, 경력단절과 사교육비 걱정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출산율이 떨어지면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잠재성장률이 하락한다. 사회보장제도가 붕괴하고, 군사력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성장한 한국이 저출산 때문에 빛의 속도로 쇠퇴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상황도 썩 좋지 않다. 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혼인 건수가 급감해 올해 출산 지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마침 올해는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년)의 첫해다. 저출산 관련 예산은 올해에만 46조70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번에는 부디 아이를 낳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데 성공해 곳곳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우상규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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