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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기식 정책… 애먼 9급 공무원까지 잡아" [당·정·청, 투기방지대책 발표]

입력 : 2021-03-29 18:59:16 수정 : 2021-03-30 00: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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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 ‘부글부글’

전공노 “하위직 전세 사는 사람이 태반
인력만 낭비하고 부패방지 효과 없어”
"부모 재산 물려받으면 투기꾼 몰릴라”
일각 “차라리 모든 걸 밝히는 게 나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3기 신도시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정치권과 공직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 25일 정부세종청사 인근에서 점심시간에 맞춰 공무원들이 인근 식당가로 향하고 있다. 세종=뉴스1

“9급까지 잡는다는 게 어이없죠.”

 

29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에서 만난 9급 공무원 준비생 박모(30)씨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전날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촉발한 부동산 투기 문제를 근절한다며 내놓은 대책 중에 ‘모든 공무원의 재산등록을 의무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박씨는 “특정 공기업에 들어가거나 고위직이 되지 않는 이상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투기나 재산 증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실효성 없는 대책인데 괜히 ‘뭔가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애먼 9급 공무원까지 잡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모든 공무원의 재산등록을 의무화하는 입법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공직사회에서는 “과도한 규제”라는 부정적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일부는 “투명하게 공개해 오해를 불식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 공무원(일부 부서는 7급 이상)만 재산등록이 의무화된다. 그러나 최근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국회는 LH와 부동산 관련 공직 유관단체 모든 직원이 의무적으로 재산을 등록하도록 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정은 여기서 더 나아가 9급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까지 재산등록을 의무화한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재산신고 대상은 현행 약 23만명에서 150만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8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당 대표 직무대행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부동산 투기 근절 및 재발 방지대책을 위한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다수 공무원과 공무원 준비생은 규제가 과하다는 반응이었다. 지방직 7급 공무원 정모(36)씨는 “물론 일부가 잘못을 저지른 것은 맞지만 이번 대책은 과도한 것 같다. 모든 공무원을 투기 세력으로 보는 것 같아 기분도 안 좋다”며 “이렇게까지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뭔가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9급 공무원 준비생 허모(28)씨도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공무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들어간 정책”이라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라도 있으면 투기꾼으로 몰릴지 모르는데 공무원은 청렴을 넘어 가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무원 노조도 반발하고 있다. 채장원 전국공무원노조 서울본부 사무처장은 “실제 하위직 공무원들은 고급 부동산 정보는 갖고 있지도 않고 집 없이 전세 사는 사람이 태반인데 재산 정보를 관리하느라 행정 업무는 많이 증가할 것”이라며 “인력만 낭비하고 부패 방지 효과는 없을 거라고 본다”고 꼬집었다. 이어 “기술직 중 인허가·공사부서는 이미 7급부터 재산공개대상이라 상대적으로 낮은 급수의 공무원부터 재산 공개를 해왔지만 하위직 공무원 비리를 찾아냈다는 사례는 들어본 적 없다”며 “등록의무자로 부모님들까지 재산 공개해야 하는 등 오히려 가정불화만 유발했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김창호 전국공무원노조 대변인은 “이번 대책은 모든 공무원을 잠재적 범죄자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으로 공무원들의 사기만 저하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또 “당정이 LH사태가 촉발한 위기를 벗어나려 꼼수를 부리기보다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드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모든 걸 밝히는 편이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지방직 9급 공무원은 “공무원 입장에서 다소 불쾌한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최근 LH 사태로 국민들의 불신감이 커져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며 “떳떳하다면 재산 공개를 못 할 이유도 없는 만큼 공직자로서 감수해야 할 불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지원·이지안·구현모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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