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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의공감산책] 신경심리학적 관점에서의 학폭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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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3-08 22:57:14 수정 : 2021-03-08 22: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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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학폭 겪은 피해자
스트레스 대응 호르몬 적고
노화·질병 막는 세포도 부족
몸과 마음에 심각한 악영향

프로배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시작된 학교폭력 미투, 즉 학투가 스포츠계 전반뿐 아니라 연예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학창 시절 학교폭력에 대한 피해자들의 폭로로 가해자들의 사과와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 몇 년 전 심지어 십 여년 전 사건이기에 피해자의 호소는 가해자에게 기억에서 잊혀진 일이다. 몇몇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당황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폭력은 피해자에게 분명히 기억되고 시간이 지나도 재경험되는 트라우마이다.

최근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학교폭력의 특징과 양상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만 14세를 전후해서 가장 심하게 나타난다. 이는 진화심리학적으로 의미가 있다. 원시사회에서 청소년기가 되면 사냥을 시작하고 점차 가정을 꾸릴 채비를 하였을 것이다. 이때 공격성이 강한 이는 자신의 우월한 신체적 조건과 공격적인 성향을 사용하여 음식을 갈취하는 등, 공격적이지 않은 사람들보다 생존하기가 더 쉬웠다. 이처럼 공격성이 높은 청소년들은 또래와의 경쟁에서 일반적으로 우위에 있으며 더 많은 자원을 얻을 수 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공격성의 표출이 청소년기에 가장 빈번하고 학교폭력 또한 청소년기에 주로 일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한때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로빈 톰린(Robin Tomlin)의 사례는 학교폭력의 피해 경험이 오랜 시간 지속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1970년 고등학생 시절에 심각한 학교폭력을 당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학교폭력과 학교의 차별에 대한 트라우마에 계속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42년 만에 과거의 학교 폭력과 차별을 공개적으로 폭로하였다. 학교는 40여년 전 사건을 그 당시 분위기에 따라 무심히 넘겨버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하였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가해자들이 42년 동안 나를 막대기로 때리는 듯한 느낌을 계속 받고 살아왔다”고 했다.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으나 학교폭력의 피해와 고통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은 장기적으로 신체적 건강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최근 이러한 악화 원인이 코르티솔 각성 반응(CAR)의 비정상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학대 혹은 학교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아침에 코르티솔 분비량이 적었다가 점점 높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코르티솔 각성반응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코르티솔 분비가 신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문제는 이처럼 비정상적인 코르티솔 분비가 장기적이며 만성적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학교 폭력 피해자들은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시스템인 시상하부 뇌하수체 부신 축(HPA)에서 이상반응을 보인다. 이 부위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 코르티솔을 분비하여 위협이나 스트레스 상황에 맞설 수 있도록 대응하는 역할을 한다.

학교폭력 피해자는 학교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학생에 비해 코르티솔이 적게 분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코르티솔 분비량은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사회적 스트레스 상황에 상대적으로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한다. 이는 일상생활의 코르티솔 분비량에도 악영향을 주어 생활하면서 종종 맞닥뜨리게 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어린 시절의 폭력 피해 경험은 오랜 시간에 걸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 살인사건 유가족과 같은 어린 시절 끔찍한 경험을 입은 사람에게도 비슷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대다수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경험한다. 장난이라고 포장된 학교폭력 행위가 피해자에게는 일시적인 문제가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학교폭력은 코르티솔 분비량뿐 아니라 DNA 메틸화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NA 메틸화는 유전자 형질 발현을 조절하는 신체의 화학적 변형과정인데 신경정신병학적 장애를 예측하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DNA 말단은 완전히 복제하기가 어려운데 텔로미어(telomere)는 염색체 말단을 안정화시키고 생체 내에서 완전한 복제를 가능하게 한다. 이런 텔로미어는 분열할 때마다 그 길이가 점차 짧아지게 된다. 흡연, 비만, 질병, 노화는 텔레미어가 짧아질 때 나타나는 현상인데, 텔로미어의 길이는 특히 심리적 스트레스와 연관이 있고 사망률과도 연관이 있다. 최근 한 종단연구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자의 텔로미어 길이가 평균보다 더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학교폭력을 경험하는 것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수명과 건강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어릴 때 폭력 경험은 몸과 마음이 증명해주고 있을 정도의 끔찍한 피해이다. 그러니 절대 잊혀질 수 없는 고통이라 할 수 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 옛날이야기를 언급하느냐고 의아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는 그 시간들을 결코 잊지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바로 뇌가 그걸 증명해주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를 밝혀서 지나간 시간에 대해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지워지지 않는 그 기억은 진정 어린 사과를 통해서만 치유되고 비로소 잊혀질 수 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지금 내가 무심코 한 행동이 그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을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늘 스스로를 경계해야 할 거 같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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