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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리얼돌은 못 막는다”… 대법 수입 허용에도 통관 보류 [뉴스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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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3-07 08:00:00 수정 : 2021-03-07 1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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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법 234조 근거로 수입업체와 소송전
“허용 기준 없어 세관 자의적 판단 불가피
법원 판결 났다고 모두 허용할 수는 없어
새로운 형태 리얼돌 제작·유통 대비해야”

관세청 '리얼돌'과 전쟁

관세법만으로 수입·판매 막기는 역부족
단순 수입뿐 아니라 제조·유통 걸려있어
“법무부·여가부·경찰청 등과 기준 협의”
국무조정실 “국회 발의 법안과 함께 논의”
지난해 5월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석에 성인용품 '리얼돌'로 추정되는 인형들이 설치된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관세청이 최근 크게 늘고 있는 불법 성인용품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전국적으로 성인용품 판매점이 크게 늘어 중국산 성인용품 수입이 증가하고 인터넷 쇼핑몰을 통한 성인용품 특송도 폭증하고 있지만 이래저래 단속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중략) 관세청의 고민은 어느 정도의 음란성이 풍속을 해치느냐는 기준이 명확지 않다는 데서 시작한다.”

<세계일보 2004년 5월1일자 15면 ‘밀려오는 성인용품 관세청 단속 딜레마’ 중에서>

관세청이 성인 여성 신체와 비슷하게 만든 성인용품 ‘리얼돌’(여성 전신인형)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성인용품과의 전쟁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리얼돌은 문제가 복잡하다.

5일 관세청 등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월14일 국내 리얼돌 수입업체의 리얼돌 수입 통관을 보류한 김포공항 세관장의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리얼돌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 왜곡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관세청은 법원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2일 항소했다.

관세청이 리얼돌 수입 통관 보류로 소송을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인천본부세관은 2017년 4월, 해외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들인 리얼돌 60개를 의류제작용 마네킹으로 둔갑시켜 밀수입한 업자들을 검거하고 보도자료도 배포했는데, 이 건이 소송으로 이어졌다. 당시 인천본부세관장이 현재 노석환 관세청장이기도 하다. 2018년 1심 재판부는 리얼돌 수입을 불허했는데, 2019년 2월 항소심에서는 수입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수입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그리고 2019년 6월 대법원이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도 수입을 허가했는데, 관세청은 여전히 리얼돌 수입 통관을 번번이 보류하고 있다. 지는 소송을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관세청이 이렇게까지 리얼돌을 막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세법 234조 ‘풍속을 저해하는 물품’이 근거, 허용 기준 없어

관세청이 리얼돌 수입을 막는 근거는 관세법 234조 1항이다. ‘헌법 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공공의 안녕 질서 또는 풍속을 해치는 서적·간행물·도화, 영화·음반·비디오물·조각물 또는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물품’은 수출하거나 수입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리얼돌이 풍속을 해친다는 판단이다.

관세연감을 보면 1999년 43건의 풍속저해 물품 밀수단속이 있었는데 비디오테이프 285점, VCD 590점, 성보조기구 489점, 도서류 2995점이었다. 금액으로는 6500만원 정도였다. 비디오테이프와 영상 CD, 성인잡지 등을 단속했던 것을 고려하면 리얼돌 수입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지만 비디오테이프와 영상CD, 성인잡지는 과거의 유물이 됐고, 이제 풍속을 저해하는 물품으로는 리얼돌이 유일하다는 것이 관세청 설명이다.

실제 관세법 234조에 따라 수입 신고 절차를 거치지 않는 위반 물품 검거는 있지만 건수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7년 성인용품 6건에 462점, 리얼돌 3건에 62점이 적발됐고, 2018년에는 성인용품 2건에 2231점, 리얼돌 1건에 3점, 2019년에는 성인용품 4건에 156점, 지난해는 성인용품 2건에 190점이 적발됐다.

관세청 관계자는 “리얼돌은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하고, 통관 보류 대상이라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특히 아동·청소년이나 특정 인물 형상의 리얼돌 유통 등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리얼돌 모습이나 형태 천차만별… 아동·청소년 형태 막아야

관세청과 소송을 이어가고 있는 한 리얼돌 수입업체에 따르면 이 업체가 지난달 현재 진행 중인 수입 통관 보류 처분 취소 소송만 22건이다. 수입 통관 보류 처분 취소 소송과 별도로 수입 보류 처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진행 중이다. 이미 5건의 소송에서 승소했다.

관세청은 리얼돌의 국내 허용 기준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세관이 자의적으로 통관을 보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특정 한두 개의 리얼돌이 법원에서 수입허가가 났다고 해서 그 이후 들어오는 모든 리얼돌에 대한 수입을 허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아동, 청소년이나 특정 인물 형상의 리얼돌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리얼돌마다 형태와 이미지 등이 모두 차이가 있고, 그중에는 아동 또는 청소년 형상을 한 제품이나 특정 인물의 모습을 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판단을 보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관세청이 관세법 234조로만 리얼돌 수입이나 판매 등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수입 문제가 아니라 국내 제조와 유통의 문제도 걸려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법무부, 여성가족부, 경찰청 등과 기준 등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이 조정… 국회 법안도 함께 논의

2019년 국회입법조사처의 ‘성인용 전신인형 규제 현황 및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용 전신인형 수입·판매 규제는 관세법 외에도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청소년보호법’ 등에서 가능하다.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 3조에는 음란한 문서, 도화, 영화, 음반, 비디오물, 음란한 물건 등에 대한 판매·대여·진열·보관·사행 행위에 대해 규제하고 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11조에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수입·수출한 자에 대해 처벌을 규정하고 있고, 청소년보호법 59조는 청소년 유해 물건으로 ‘음란한 행위를 조장하는 성기구 등’, ‘성 관련 물건’에 대해 판매·대여·배포·제공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 법률 등을 고려해 규제와 수준 등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법원은 수입 허용 판결을 했지만 실제로 수입하는 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실무적으로 부처 협의를 진행하고 있고, 국회에서 발의되고 있는 법안 등과 함께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9년 9월2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리얼돌 수입 허용 판결 규탄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리얼돌’ 규제 법안 속속 발의 중

 

‘리얼돌’ 규제를 위한 법안도 속속 발의 중이다.

 

5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은 지난 1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심의 중이다.

 

법안은 아동·청소년 신체형상 성기구를 제작·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이 골자다. 영리를 목적으로 아동·청소년 신체형상 성기구를 판매·대여·배포·제공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소지·운반·광고·소개하거나 공연히 전시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같은 당 송기헌 의원은 지난달 더 강력한 법안을 발의했다.

 

송 의원은 아동 리얼돌을 제작하거나 수입·수출하는 경우 7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7000만원 이하 벌금형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수위를 높였다. 상업적 목적의 아동 리얼돌 제작과 판매는 최장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아동 리얼돌을 소지하는 경우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처벌된다.

 

송 의원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도 함께 발의했다. 유명인이나 주변 지인 등 특정인의 모습을 본뜬 리얼돌을 규제하기 위해서다.

 

개정안은 당사자 동의 없이 특정 사람의 얼굴이나 신체, 음성을 이용해 리얼돌을 제작 또는 수입·수출하는 등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상업적 목적이라면 최대 7년의 징역형까지 받는다.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소지한 경우라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9년에 발간한 ‘성인용 전신인형 규제 현황 및 개선과제’ 보고서는 “해외 국가들은 리얼돌 자체의 제작·판매에 대해 규제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동·청소년의 성적 대상화와 성 상품화의 문제로 접근해 아동의 형상을 한 리얼돌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거나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영국은 관련 법률에 의한 검찰청 가이드라인을 통해 구체적으로 규제를 명시하고 있고, 미국과 호주는 관련 법률과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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