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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없는 껍데기” “처벌 과해 경영 위축”… 국회 통과 ‘중대재해법’ 어떻길래? [심층기획]

입력 : 2021-01-18 08:00:00 수정 : 2021-01-18 08:3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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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여기저기 구멍 뚫린 속빈강정”
5인 미만 업체 빠지고 50인 이하 3년유예
“규모 축소 위해 사업장 쪼개기 속출할 것
산재 발생해도 처벌 어렵고 피해자 여전”

재계 “산업안전보건법 있어 이중처벌”
“경영 직접하는 사업주 처벌 경제 악영향
근로자 사망사고 때 ‘1년 이상 징역’ 과도”
교장도 처벌 대상 포함… 교육계로도 불똥

법 통과 후에도 산재 잇따라… 효과 물음표
“정부 예방능력 강화 지원 우선” 목소리도
게티이미지뱅크

근로자가 죽거나 다쳤을 때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재계나 노동계 모두 안전한 근로환경을 조성하자는 법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내용을 두고서는 불만이 가득하다. 노동계는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반쪽짜리’ 법이라며 반발하고, 재계는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어렵게 할 만큼 처벌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17일 재계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은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자 대표를 처벌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법은 중대산업재해를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동일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받는 노동자가 2명일 경우, 또 1년 내 3명 이상의 직원에게 동일 유해요인으로 인한 급성중독 등 질병이 나타났을 때로 정의했다. 책임자는 사업자 대표 등으로 정해졌다. 사망사고가 났을 때 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회사 대표이사가 근무환경 개선에 앞장서고 재해방지시스템 구축에 힘써 노동자를 보호하라는 취지다.

◆노동계, “사업장 쪼개기 속출하고 피해자 꾸준할 것” 비판

하지만 노동계는 알맹이가 빠지고 껍데기만 남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5인 미만 사업자는 제외됐고, 50인 이하 사업장에 3년의 유예시간을 줬다”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2019년 발생한 전체 산업재해(10만2305건) 중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가 78.3%(8만122건)를 차지한다. 원안에는 공포 후 6개월 뒤부터 사업장 규모와 상관없이 모두 적용하게 돼 있었다. 민주노총은 “사업장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일부러 쪼개는 업체가 속출할 것”이라며 “산재가 발생해도 실제 처벌로 이어지지 않고 피해자만 꾸준히 나오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안에 있던 경영자의 조직문화 관리 책임도 삭제됐다.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사업주가 처벌을 피하게 된 것이다. 또 하도급 관계에 있어도 원청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에 대한 관리 의무를 갖는다는 부분과,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한 공무원을 처벌할 수 있다는 ‘공무원 처벌’ 조항 등이 원안에서 빠졌다. 노동계에서 핵심이 없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지난 12일 오전 광주 북구 오룡동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민주노총광주본부가 최근 전남 여수산단에서 작업 중 사망한 노동자를 추모하고 있다. 뉴스1

◆재계, “산업안전보건법에 이어 과도한 처벌…경제에도 부정적” 성토

재계 역시 반발 강도가 세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국내 기업 654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0.9%가 중대재해법을 반대했다.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상황에서 중대재해법까지 제정한 것은 이중처벌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사업주를 산업재해로 처벌하게 될 경우 경영활동이 위축되고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항변한다. 또 근로자 사망 시 ‘1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한다는 하한형 형사처벌도 과도하다고 토로했다.

재계 관계자는 “패스트푸드점에서 근무하던 배달원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을 경우 사업주가 실형을 선고받는 무서운 구조”라며 “반복적인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책임자를 처벌하는 등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회장 최교진, 이하 협의회)는 지난 14일 오후 세종시교육청에서 열린 제76회 총회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 시 학교장 제외 촉구 결의문을 채택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제공

이중처벌에 대한 논란도 있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법학)는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 기소와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이 청구되고, 법인에 대한 과태료와 산업안전보건법상 영업정지처분 등 민사와 행정상 처벌도 뒤따른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해서도 원청에 의무가 부과돼 책임 범위가 과도하게 넓어 명확성의 원칙 위배 소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계로도 불똥이 튀었다. 중대재해법 적용대상에 학교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학교의 특수성을 고려해 학교장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는 결의서를 채택했다. 결의문에는 “학교장에 대해 교육시설법 등 책무와 처벌이 규정돼 있는데 중대재해법까지 적용할 경우 이중처벌을 받게 된다”며 “공립학교 학교장은 교육감으로부터, 사립학교 학교장은 학교법인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이기 때문에 적용대상에 포함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재해 정부 책임도 커…예방능력 강화 지원해야” 목소리도

산업재해를 막아보겠다며 중대재해법을 통과시켰지만 효과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에도 산업재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사업장에서 협력업체 소속 기계 정비원 A(33)씨가 물류설비에 끼여 숨졌고, 같은 날 광주 광산구 평동산업단지 인근 플라스틱 재생 사업장에서 B(51)씨가 기계에 빨려 들어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12일에는 부산 수영구의 한 오피스텔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C씨가 9층 높이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13일에는 경기 파주시 LG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유해화학물질이 새 나와 6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일도 벌어졌다.

정부가 산업재해의 책임을 경영계에게만 돌리고 처벌만 강화할 게 아니라 예방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예컨대 고용노동부가 영세 사업자 등을 대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을 얼마나 준수하는지 확인하고, 근로자 보호 역량을 키워주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중대산업재해 대부분이 취약한 곳에서 발생하는 만큼 정부가 영세사업장의 예방조치능력을 강화하는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며 “지킬 수도 없는 조치들을 위반했다고 사업주를 처벌하면 결국 회사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이해당사자 모두를 포용하지 않는 편향된 법”이라며 “처벌 규정 대신 사고 예방과 관련된 개선방안을 논의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G5보다 산재 낸 기업 처벌 수위 높아

 

한국이 G5(미국·영국·일본·독일·프랑스)보다 산업재해 발생 시 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17일 재계와 경영계 등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한국은 사업주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또 근로자 사망이 5년 이내에 반복 발생할 경우 형량의 50%를 가중한다.

 

하지만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는 위반사항에 대해 벌금만 부과한다. 일본은 6개월 이하의 징역, 영국은 2년 이하 금고로 징역형 수준이 한국보다 낮았다.

 

재계는 한국은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상 처벌 형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중대재해법을 추가로 제정했다고 주장한다.

 

영국은 우리나라처럼 산업법 위에 별도의 제정법(과실치사법)을 뒀다. 단, 영국의 과실치사법은 최고경영진의 ‘중대한 과실’이 산업재해 발생의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원인으로 작용해야 처벌이 가능하며 처벌요건이 제한적이다.

 

한국은 중대재해법 제정으로 근로자의 사망이나 상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법인이 모두 처벌받을 수 있는 구조이지만 영국은 사망에 한해서 법인에만 책임을 묻는다.

서울 시내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 연합뉴스

산업재해 방지를 위해 강력한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2003년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 처벌을 강화한 호주의 경우 근로자 10만명당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2003년 2.3명에서 2009년 2.7명까지 증가했다가 최근 소폭 감소했다. 캐나다에서는 처벌을 강화한 2003년 2.9명에서 2018년 1.9명으로 소폭 낮아졌다.

 

영국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됐다. 영국은 산업재해 사망자가 2009년 0.5명에서 2013년 0.9명으로 늘었다. 2015년에는 0.8명을 기록했다. 과실치사법으로 처벌받은 중소기업 28곳 중 57%(16곳)가 영업을 중단하는 일도 벌어졌다. 결국 영국은 과실치사법 대신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산업재해 유발 기업을 처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영국 내에서는 기업이 노동자의 사망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기업활동 위축과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산업현장의 효과적인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우리나라 같은 중대재해법을 만들지 않는 이유는 ‘엄중한 처벌만으로 산업재해가 예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이유를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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