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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이 빚은 장엄한 동막해변 얼음바다 풍경에 ‘심쿵’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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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1-17 03:00:00 수정 : 2021-01-17 11: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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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 다녀갔나...파도 얼어붙은 ‘겨울왕국’/북극발 한파 몰아친 동막해변 넘실대는 파도 대신 새하얀 눈얼음 꽁꽁/얼음 녹일 듯 장엄한 낙조에 넋을 잃다/강화의 숨은 보석 황산포구를 아시나요/해든뮤지엄 ‘추락한 천사’ 이카로스...올해는 욕심 부리지 말고 살아야지

 

얼음왕국으로 변한 강화 동막해변

 

동막해변

남극인가, 북극인가. 바다가 얼어붙다니. 순간 눈을 의심한다. 과연 여기가 한국 맞아? 한적한 모래사장에 파란 파도만 밀려왔다 사라지는 쓸쓸한 겨울바다를 예상했는데 파도는 아예 없고 저 멀리 수평선까지 광활한 얼음바다라니. 태어나 처음 보는 기괴하고 장엄한 풍경에 입을 다물 수 없다. 항구에 정박한 어선들마저 오도 가도 못 하고 얼음덩이에 꼼짝없이 갇힌 풍경. 그리고 얼음바다 위로 떨어지는 커다란 불덩이 같은 노을은 ‘역대급’이다. ‘북극 한파’는 인천 강화군 동막해변 바다를 꽁꽁 얼려 생애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판타지 영화 같은 진풍경을 펼쳐 놓았다.

 

황산포구와 초지대교

 

#강화의 숨은 보석 황산포구를 아시나요

 

섭씨 영하 18도까지 떨어진 지난 주말. 환기 좀 하려고 거실 창문을 열자 숨결마저 금세 얼려버릴 듯, 매서운 찬바람이 쏟아져 얼른 문을 닫는다. 북극 한파라는 말이 실감난다. 코로나19도 무섭지만 동장군 기세에 눌려 나갈 엄두를 못 내겠다. 소파에 누워 뒹굴뒹굴하며 TV 채널만 요리조리 돌리다 살만 찔 것 같은 공포감이 갑자기 밀려와 현관문을 박차고 나섰다. 멀리 가긴 어려울 것 같아 수도권에서 가까워 인기 높은 강화도로 길을 잡는다.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는 북쪽 강화대교와 남쪽 초지대교뿐이다. 그중 동막해변, 전등사, 마니산으로 이어지는 초지대교는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요즘에도 주말이면 다리를 건너려는 차들로 매우 붐빈다. 대명항 교차로를 통과하는 데 몇십분씩 걸릴 정도다. 지난 연말 유명한 강화 낙조를 보러 길을 나섰다가 초지대교 근처에서 도로가 꽉 막혀 40여분을 기다리다 차를 돌리기도 했다.

 

황산포구 농게 조형물

 

황산포구

여행자들이 늘 많지만 오늘은 초지대교가 뻥 뚫려 있다. 동장군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한걸음에 다리를 건너 초지사거리에서 좌회전한다. 5분 거리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예쁜 항구가 있어서다. 이름도 낯선 황산포구다. 초지대교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 김포시 대명포구와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다. 여행자들은 황산포구를 대부분 그냥 지나친다. 초지대교를 건너면 84번 지방도를 따라 직진하기 때문에 황산포구의 존재도 모른다. 당연히 ‘강화 가볼 만한 곳’ 순위에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숨은 보석 같은 곳이다. 사계절 언제 가더라도 한적하고 아담한 어촌풍경은 기억에 잔잔한 수채화로 남는다.

 

황산어판장

 

반건조 농어

커다란 배 모양으로 지어진 황산어판장 처마에는 어른 팔뚝만 한 농어가 주렁주렁 매달린 채 겨울 햇살을 받으며 꾸덕꾸덕 맛있게 익어가는 중이다. 반건조 농어는 보통 찜으로 많이 먹는데 도톰하게 오른 살과 담백한 맛 덕분에 밥반찬은 물론, 출출한 겨울밤 술이 술술 넘어가는 안주가 돼 준다. 한편에서는 조기도 말리고 있다. 바다 풍경을 즐기며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즐길 수 있지만 코로나19에 강추위까지 겹쳐 인적이 드물다.

 

강화나들길 8코스 황산포구 해안산책길

 

강화나들길

포구의 진정한 매력은 황산어판장 건물을 지나 바다쪽으로 나가야 만난다. 손에 닿을 듯한 바다를 곁에 두고 해안 산책로가 이어진다. 눈이 수북하게 쌓인 데크길을 따라 걷는다. 바닷바람은 매섭지만 바다 위를 걸으면 즐기는 갈매기 나는 포구 풍경이 매우 낭만적이다. 이곳에서 강화나들길 8코스 ‘철새 보러 가는 길’이 이어진다. 초지진∼황산포구∼소황산도주차장∼선암교∼동검도입구∼선두5리어판장∼후애돈대∼분오리돈대∼동막해변 코스로 18.7km다. 코로나19 때문에 황산포구 해안산책로는 얼마 못 가 사건 현장마냥 붉은 테이프로 막아 놓았다. 아쉽지만 겨울바다 풍경을 즐기는 데 충분하다.

 

해든뮤지엄 ‘토르소 디 이카로(Torso di Ikaro)’

 

#바다로 추락한 이카로스처럼 욕심 부리지 않기

 

호기롭게 나섰으나 짧은 산책에도 강추위에 몸이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따뜻한 커피로 몸도 녹일 겸 10분 거리에 있는 해든뮤지엄으로 향한다. 장흥제2저수지를 왼쪽에 두고 달리다 장흥낚시터 못 미쳐 오른쪽 오솔길로 접어들면 산과 숲으로 에워싼 아늑한 공간에 모던한 건물이 나타난다. 2013년 한국건축가협회 ‘올해의 건축 베스트7’에 선정됐을 정도로 건축물 자체가 예술작품이다. 입구 오른쪽 미러가든에 머리가 반쯤 날아간 근육질 남자의 상반신 청동조각상이 비스듬히 누워 있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이고르 미토라이의 작품 ‘토르소 디 이카로(Torso di Ikaro)’다.

 

해든뮤지엄 입구

 

해든뮤지엄 미러가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로스 얘기를 담았다. 아테네 최고의 조각가이자 발명가인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만든 크레타섬 ‘미궁’에 갇혔다가 아버지와 함께 하늘을 날아 탈출하는 이카로스. 그러나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욕심을 부리며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녹으면서 바다에 추락하고 만다.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에서 만나는 그의 작품 ‘추락한 천사(Angelo Caduto)’와 거의 흡사하다. 날개가 없는 점이 다르지만 조각상 뒤쪽에는 미토라이의 시그니처인 메두사 머리가 숨겨져 있다. 건물 벽을 장식한 거울을 통해 조각상 뒷면까지 한꺼번에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 추락한 천사를 보며 작은 약속 하나 가슴에 새겨본다. 이카로스처럼 올해는 욕심 부리지 말고 물처럼 흘러가자고.

 

해든뮤지엄 김정희 작가 ‘스페이스 2018’

푸른 불꽃이 몸에서 타오르는 듯한 사람 조각상도 인상적이다. 김정희 작가의 ‘스페이스 2018’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 ‘좋아요’가 마구 눌러질 듯하다. 옆 벤치가 한몫하는데 뒷배경에 장흥저수지 풍경까지 잘 담긴다. 실내 전시관으로 이어주는 길도 포토 명소. 직선으로 뻗은 경사로는 은밀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3월까지 제프 쿤스, 요시토모 나라, 줄리안 오피 등 작가 51명의 팝아트전이 진행 중이다. 다만, 커피가 포함된 입장료가 1만3000원으로 다소 비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전등사 삼랑성 남문

 

전등사 700살 노승나무

#혹한이 빚은 장엄한 얼음바다 풍경에 ‘심쿵’

 

워낙 유명하지만 근처에 있으니 전등사도 들러본다. 얼마 전 내린 폭설이 그대로 쌓여 산사에는 겨울 정취가 잘 담겼다. 단군이 아들을 시켜 쌓았다는 삼랑성의 남문을 통과하자 전등사로 오르는 길 양옆은 하얀 눈과 울창한 초록의 소나무가 어우러진다. 지붕에 하얀 눈이 가득 쌓인 고풍스러운 죽림다원과 두 그루 은행나무인 700살 노승나무, 300살 동자승나무를 지나면 400살 느티나무가 여행자들을 맞는다. 앙상한 가지가 드러나는 겨울에는 버틴 세월의 흔적을 극명하게 드러내기에 더욱 신비하게 다가온다. 대웅보전 옆 강설당 처마에는 탐스러운 곶감이 주렁주렁 달려 식욕을 자극한다. 몰래 하나 따서 입안에 넣고 싶은 욕구를 겨우 참았다.

 

전등사 느티나무
동막해변

동막해변 가는 길 왼쪽에는 많은 이들이 썰매를 즐긴다. 설마 바다가 얼었나. 차를 잠시 세우고 보니 바다와 붙어있는 분오저수지가 거대한 빙상장으로 변했다. 어린 시절 샛강에서 스케이트 타던 추억이 떠올라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저수지를 뒤로하고 고개를 하나 넘으니 왼쪽에 방금 전 본 것과 비슷한 빙판만 끝없이 펼쳐진다. 여기도 저수지인가. 아니다. 안내판에는 ‘동막해수욕장’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와∼ 이게 뭐지? 바다가 얼었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주인공 엘사가 다녀갔나.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눈에 담을 수 있는 저 멀리까지 얼어붙은 바다는 포근한 눈으로 덮여 남극이나 북극에나 볼 수 있는 풍경이 완성됐다. 혹한에 손가락이 금세 꽁꽁 얼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이들이 얼음바다를 배경으로 언제 다시 볼지 모를 인생샷을 남긴다.

 

분오항
동막해변 노을

서서히 날이 저물기 시작해 분오리돈대에 오른다. 조선시대에 해안 방어를 위해 쌓은 초지진 외곽포대인데 정상에 서면 왼쪽 분오항과 오른쪽 동막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분오항 바다 역시 거대한 빙판으로 변했고 어선들은 정지 영상처럼 얼음에 갇혔다. 이제 석양이 바다와 하늘을 붉게 물들일 시간. 마치 지구 대기권으로 진입하며 거대한 불덩이로 변한 거대한 유성덩어리가 얼음바다를 천천히 녹이며 잠기는 것 같다. 동장군이 기획하고 분오리돈대, 동막해변이 출연한 역대급 강화낙조에 그만 넋을 잃었다. 

 

강화=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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