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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원조국서 ‘방산수출국’ 우뚝… “첨단무기 多판다” [이슈 속으로]

입력 : 2021-01-17 09:00:00 수정 : 2021-01-17 09: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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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장한 ‘K-방산'의 명암
한국전 뼈저린 경험 후 방산 매진
자체생산 무기 없어 美 무기 원조 받아
1970년부터 각종 무기 생산 공장 생겨나
K9 자주포서 전투함·전투기까지 수출
최근 미래형 장갑차 ‘레드백’ 공개 주목
주춤하는 성장세… 육성책 절실
中 군사굴기에 동남아 앞다퉈 군비 증강
美·유럽 등 방산업체들 치열한 수주경쟁
韓 경쟁력 밀려 기존 시장마저 잃을 위기
정부, 수출 지원·정책 혁신 뒷받침돼야

지난 12일 호주 멜버른. 독특한 외형을 지닌 장갑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는 작지만 경쾌하게 움직이며 적군을 공격하는 능력을 갖춘, 한화디펜스의 미래형 장갑차 레드백(Redback)이었다. 레드백은 호주 육군이 미국산 M113 장갑차를 대체하려고 추진 중인 ‘랜드(LAND) 400 3단계 사업’에서 최종 후보에 포함됐다. 레드백이 호주 육군의 차세대 장갑차로 선정되면 최대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사업을 수주하게 된다. 한국 방위산업 수출 사상 최대 규모의 ‘대박’이 터지는 셈이다. 소총 한 자루도 만들지 못해 미국의 원조를 받으며 6·25전쟁을 치른 지 70여년 만에 국내 방위산업이 세계 시장을 노릴 정도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자주포·군함·전투기… “판매 가능한 건 모두 판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한국군은 자체적으로 만든 무기 없이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야 했다. 일제가 버리고 간 무기와 미국이 지원해 준 장비로 싸웠던 한국군은 휴전 이후 우리 손으로 제작한 무기를 원했지만,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화한 상태에서 무기 개발은 난제였다.

하지만 북한 위협 저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무장은 국내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1970년대부터 각종 무기를 생산하는 공장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국내 방위산업이 태동한 것이다.

그로부터 50여년이 흐른 지금, 방위산업은 ‘K-방산’이라 불릴 정도로 급성장했다. 한국군의 무장을 책임지는 수준을 넘어서 세계 각국에 국산 무기를 판매하는 수출산업이 됐다.

현재 가장 주목을 받는 제품은 한화디펜스가 개발한 레드백 장갑차다. 호주 육군이 신형 장갑차 400여대를 도입하는 ‘랜드(LAND) 400 3단계 사업’에서 독일 라인메탈디펜스의 링스 장갑차와 함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시제품 3대가 호주 현지에서 다음달부터 시험평가에 돌입한다. 내년 상반기쯤 기종 선정이 이뤄질 예정이다.

 

레드백은 K-21 장갑차 기술과 K-9 자주포 파워팩(엔진+변속기) 솔루션을 접목한 장비로 해외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됐다. 지면 상태에 따라 능동적으로 충격을 흡수, 소음과 진동을 대폭 줄였다. 가벼운 차체를 유지하면서도 지뢰와 총탄 공격에 대비한 특수 설계로 방호력을 높였다. 차량 내부에서 특수 고글을 쓰고 전차 외부를 감시할 수 있는 기술, 장갑차로 접근하는 대전차미사일을 사전 포착해 요격하는 능동방호 기술도 적용됐다.

지난해 필리핀 해군에 취역한 호세 리잘함(2600t급)은 현대중공업이 만든 첨단 호위함이다. 호세 리잘함은 76㎜ 함포와 해성 대함미사일 등을 갖추고 있어 필리핀 해군 전력을 한층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호주 육군이 도입을 결정한 K-9 자주포는 터키, 인도, 폴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등에 수출됐다. 한국군이 1300여대를 운용하고 있어 대당 단가, 운영유지비가 독일 등 경쟁제품보다 낮고 지속적인 유지보수가 가능하다는 장점에 세계 각국이 주목한 결과라는 평가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생산하는 T-50 훈련기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이라크에 수출됐다. 전체 수출 규모(60여대) 중 3분의 2가 동남아시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KT-1 훈련기도 인도네시아, 터키, 페루, 세네갈에 수출됐다. 이밖에도 소형전술차량과 트럭, K-2 소총 및 탄약, 현궁 대전차미사일 등도 제3세계 국가들을 중심으로 쓰이고 있다.

◆주춤하는 성장세… 정부 차원 지원 절실

‘K-방산’의 앞날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최근 수년간 세계 각국에서 이뤄지는 대규모 무기도입사업에서 경쟁국에 밀리는 국면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방예산이 급증하면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실적 악화는 피했지만, 해외에서 시장 주도권을 잃으면 장기적 차원에서 영향력 감소 등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이 같은 문제가 두드러지는 곳이 동남아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함정과 민간선박, 항공기를 잇달아 투입하자 위기감을 느낀 역내 국가들은 앞다투어 군비 증강에 뛰어들고 있다. 동남아 무기 시장이 팽창할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과 유렵, 중국, 러시아, 터키 등 세계 각국의 방위산업체들이 치열한 수주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한국은 경쟁에 밀려 기존 시장마저 잃을 위기에 직면한 모양새다.

KAI가 개발한 수리온 헬기는 2018년 말 필리핀의 헬기 사업에서 미 록히드마틴 UH-60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필리핀은 같은 해 6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방한 이후 수리온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가격 경쟁력 등에서 UH-60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필리핀 외에 다른 국가들도 수리온에 관심을 보였지만 수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KT-1도 방글라데시, 필리핀과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T-50과 잠수함을 도입했던 인도네시아는 한국형전투기(KF-X) 공동개발국이지만 2016년 이후 지금까지 분담금을 제대로 납부한 적이 없다. 지난달 기준 미납액 규모는 6044억원에 달할 정도다. 대신 인도네시아는 프랑스와 라팔 전투기, 잠수함, 초계함 등을 도입하는 방안을 놓고 협의를 진행 중이다.

폴란드는 K-2 전차 도입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별다른 소식이 없는 실정이다. 제작사인 현대로템은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도 지난해 9월 폴란드 국제방위산업전시회(MSPO)에 참가해 K-2 전차를 홍보했으나 가시적인 성과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30㎜ 기관포와 신궁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을 결합한 비호복합체계의 인도 수출도 진척이 눈에 띄지 않는다. 국산 훈련기를 스페인 공군이 인수할 A400M 수송기와 맞교환하는 거래도 흐지부지된 상태다.

앞서 2018년 9월 KAI는 9월 18조원 규모의 미 공군 고등훈련기(APT) 사업에서 미 보잉·스웨덴 사브 연합군에 패했다. 훈련시스템과 정비사업까지 수출할 수 있어 국내 방위산업의 부가가치를 한층 높일 기회로 여겨졌으나 고배를 마셨다.

국내 방산업계 안팎에서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선진국 업체들의 파상공세에 코로나19 확산이 맞물리면서 국내 방산업계는 해외 신규 수주에 어려움이 컸다. 올해도 코로나19로 수주 여건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수출 지원과 더불어 관련 정책을 혁신하는 작업이 절실한 이유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범정부 차원의 포괄적인 방위산업 협력 패키지나 금융 지원 등을 통한 수출 진흥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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