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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범죄·법적 책임 확인… “배상금 강제 집행 검토해야”

입력 : 2021-01-09 07:00:00 수정 : 2021-01-08 21: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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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76년 만에 ‘위안부’ 첫 승소
법원 “주권면제 원칙 적용 안돼”
승소까지 7년 5개월이나 걸려
원고 12명 중 7명은 이미 작고
이용수 할머니 “日 사죄 받아야”
13일 손배소 선고 영향도 ‘촉각’
日, 남관표 주일대사 초치 항의 남관표 주일본 한국대사가 8일 일본 외무성 청사를 나서면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한국 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위자료 배상 판결을 내린 것에 항의해 이날 남 대사를 초치했다. 도쿄=교도AP연합뉴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한국 법원이 ‘1인당 1억원 배상’ 판결을 한 것은 그 이상의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일본군이 자행한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확인하고,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일본 정부가 우리 법원의 재판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강력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1심 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7년5개월이나 걸리면서 이번 소송을 제기한 할머니 12명 중 7명이 작고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은 2013년 8월 일본 정부에 1인당 1억원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조정 신청을 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헤이그 송달 협약’을 근거로 한국 법원의 송달 자체를 거부하는 등 비협조로 나왔다. 이 협약은 송달을 요청받은 나라가 자국 주권·안보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면 송달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결국 피해자들은 2015년 10월 사건을 일반 재판부로 이송해 판단해달라고 요청했고, 법원은 이듬해 1월 사건을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이후에도 일본 정부가 송달을 거부하면서 재판은 지연됐다. 재판부는 결국 공개적으로 송달 사유를 게시하면 법적으로 송달이 이뤄진 것으로 보는 ‘공시 송달’을 결정했고, 지난해 4월 첫 정식 변론기일이 열렸다. 재판 과정에서 ‘국가는 다른 나라의 재판에서 피고가 되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상 주권면제 원칙이 위안부 관련 재판에도 적용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주권면제 원칙은 타국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게 아니다”며 위안부 관련 재판 권한도 한국에 있다고 봤다. 또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한·일 합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이 모두 해소됐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는 원고 측이 제기한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를 모두 인정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4년 배 할머니를 비롯해 김군자·김순옥·유희남 할머니 등 공동 원고 7명은 이미 별세했다.

 

다른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이날 판결 소식에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겨 너무 좋다”며 “배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본에 사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기억연대도 “피해자들의 절박한 호소에 귀 기울인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이날 판결은 오는 13일 예정된 고 곽예남 할머니 등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정식 재판에 회부된 지 약 5년 만에 1심에서 승소한 8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목도리가 둘러져 있다. 뉴스1

◆출구 찾던 한·일 관계 더 악화하나

 

최근 관계 개선 방안을 모색하던 한·일 양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첫 배상 판결로 경색 국면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민간(기업)을 상대로 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소송과 달리 이번 소송은 국가(일본 정부)를 피고로 해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후폭풍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당장 남관표 주일본 한국대사에게 항의하고, 한국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등 강력 반발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판결 사례처럼 앞으로 판결문 송달과 일본 국유재산 압류시도 과정에서 양국 간 갈등 격화는 불가피하다.

 

우리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남 대사는 이날 초치된 후 일본 외무성 청사를 나서다 취재진에게 “한·일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고 해결될 수 있도록 가능한 노력을 하겠다는 얘기를 했다”며 “무엇보다도 차분하고 절제된 양국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한·일 정부는 공교롭게 이날 각각 강창일 주일,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 대사 임명을 정식 결정했다. 곧 부임할 두 신임 대사 앞에 거대한 난제가 하나 더 놓이게 된 셈이다. 강 대사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꼬여 있는 한·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갖고 있어서 마음도 무겁고 어깨도 무겁다”고 말했다.

 

이희진·홍주형 기자, 도쿄=김청중 특파원, 대구=배소영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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