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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가 불러온 의사당 폭력 사태… 美 민주주의 위기

입력 : 2021-01-08 06:00:00 수정 : 2021-01-08 07: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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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에 일자리 사라져 불만 쌓이던
고졸 이하 백인·일부 흑인·히스패닉
트럼프 퇴임 후 대변자 상실 우려 폭발

전문가들 “이념으로 포장된 감정 대립
갈등 해결 쉽지 않아 굉장히 오래 갈 것”

부시·클린턴·오바마도 트럼프 비판
소리치는 시위대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회 의사당에 난입한 시위대가 의사당 중앙의 로툰다 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깃발을 들고 소리치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역대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낙선자.’

6일(현지시간) 미국 의사당 폭력 사태는 지난해 11월 미 대선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전문가들은 그 도화선에 불을 댕긴 건 갈수록 깊어가는 정치적·이념적 양극화라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은 ‘역대 최다 득표 패배’라는 지난 대선 결과에 응축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서 7400만표를 얻었는데, 이는 조 바이든 당선인을 빼면 미 대선 사상 가장 많은 표였다. ‘독불장군’, ‘무논리’로 통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극단적 노선에 호응하는 미국인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국제지역학)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트럼프 재임 4년 동안 이념 양극화가 더 심해진 것은 분명하고, 고졸 이하 백인이라는 트럼프의 전통적인 지지층 외에 흑인과 히스패닉 중에서도 트럼프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지지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정책 소수자가 돼 가고 있으며, 앞으로 자기 이익은 대변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며 “이런 불만이 잠재돼 있다가 터져나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치·이념 양극화가 깊어진 저변에는 경제문제가 있다. 미국 제조업체들은 1990년대부터 노동집약산업의 생산기지를 동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등으로 옮기는 ‘오프쇼어링’을 해왔다. 2000년대부터는 콜센터 같은 서비스업도 해외로 옮겨갔다. 저학력 백인 노동자가 주로 해오던 일자리가 증발한 것이다.

박 교수는 “세계화로 러스트벨트(북동부 공업지대) 제조업은 점점 쇠퇴했고, 동부와 서부에서는 첨단산업과 금융이 발달하면서 빈부격차가 벌어졌다”며 “여전히 공화당 지지층의 60%가 이번 선거를 부정선거라고 믿는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경제문제가 정치·이념 양극화로 구조화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미디어 지형 변화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차 수석연구위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대표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정보 왜곡이 원인을 제공했다”며 “사람들이 객관적인 정보를 접하는 게 아니라 저마다 SNS로 생산되는 가짜정보를 진실이라 믿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당선인의 최우선 과제를 갈등 봉합으로 꼽으면서도 전망은 밝지 않을 것으로 봤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미국의 갈등은 이성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이념 갈등이 아니라 감성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진영 갈등”이라며 “이념으로 포장된 감정적 대립이어서 굉장히 오래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원곤 교수도 “제조업 위기 같은 상황은 미국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등장 등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과제”라고 했다.

전임 미국 대통령 등도 한목소리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공화당 소속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대선 뒤 이어진 일부 정치 지도자들의 무모한 행동에 소름이 끼칠 정도”라며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바나나 공화국에서나 있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오늘 폭력은 자신이 패배로 끝난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는 도널드 트럼프, 열성 지지자들, 의회에 있는 많은 이가 불을 붙였다”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역사는 오늘 현직 대통령이 선동해 의사당에서 벌어진 폭력을 똑똑히 기억할 것”이라고 각각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 AP=연합뉴스

◆“트럼프가 이끈 우익 폭력 쿠데타”

 

6일(현지시간) 미국 의회민주주의의 심장부에서 일어난 초유의 폭력 사태에 미국의 동맹국 정상 등은 경악과 개탄을 금치 못했다. 미국과 더불어 G2(주요 2개국)로 통하는 중국은 최근 홍콩 문제 등에서 비롯한 미·중 갈등을 의식한 듯 조롱을 쏟아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수치스러운 장면”이라며 “평화롭고 질서 있는 정권교체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국민 뜻을 거스르는 폭력은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트위터에서 “평화로운 정권 이양은 한때 미국이 세계에 가르쳐준 민주주의의 주춧돌”이라며 “트럼프가 폭력과 파괴를 부추겨 이를 훼손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작가 레베카 솔니트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쓴 칼럼에서 “이번 사태는 비록 차기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을 막지는 못하겠지만, 그럴 의도를 명백히 품고 있었다. 또한 차기 행정부를 약화하려는 운동의 일환이었다”면서 “이는 미국 대통령이 이끈 우익 폭력 쿠데타”라고 지적했다.

 

중국 주요 매체와 누리꾼들은 ‘중국을 비난해 온 미국 정치인과 언론의 업보’라고 꼬집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 정치인들과 매체가 홍콩의 폭력 시위를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묘사하며 과격 시위자를 민주 영웅으로 미화했는데 미국에서 발생한 일에는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비웃은 뒤 “미국 국민이 빨리 평화와 안정을 되찾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윤지로·박진영·유태영 기자,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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