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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청백리 맹사성과 맹씨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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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27 22:42:25 수정 : 2020-11-27 22: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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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에 소재한 맹씨행단.

조선시대에 가장 이상적이고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관리는 누구일까. 청렴하고 깨끗한 관리를 의미하는 청백리(淸白吏)였다. 청백리에 대비되는 용어는 뇌물을 받은 관리를 뜻하는 장리(贓吏)였다. 장리의 후손은 대대로 과거에 응시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조선시대에는 무엇보다 관리들의 도덕성과 청렴성을 강조했다. 청백리의 명단을 기록한 ‘청백록’에는 조선의 청백리 217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맹사성(孟思誠:1360~1438)은 황희, 허조, 유관 등과 함께 세종시대를 대표하는 청백리 재상이었다. 맹사성은 고려말인 1386년(우왕 12) 27세의 나이로 관직에 진출하여, 세종 때인 1435년 관직에서 물러나기까지 약 50년간 관료 생활을 했다. ‘태종실록’이 완성된 후 세종은 선왕의 실록을 보고자 했지만, 우의정으로 있던 맹사성은 이를 저지하였다. “전하께서 만일 이를 보신다면 후세의 임금이 반드시 이를 본받아서 고칠 것이며, 사관(史官)도 또한 군왕이 볼 것을 의심하여 그 사실을 반드시 다 기록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후세에 그 진실함을 전하겠습니까”는 논리를 폈고, 세종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현재의 충남 아산시 배방읍에는 맹사성의 고택이 있다. ‘맹씨가 사는 은행나무 단이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맹씨행단(孟氏杏壇)으로 불린다. 고택의 본채는 가장 오래된 한옥 건축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적이다. 행단이란 공자가 은행나무 단 위에서 가르쳤다는 얘기에서 나온 말로, 학문을 닦는 곳을 상징한다. 본래 고려말 장군 최영의 집이었는데, 손녀사위였던 맹사성이 물려받은 것이다. 고택 뒤에는 맹사성과 부친 맹희도, 조부 맹유를 모신 사당인 세덕사(世德祠)가 있으며, 고택 뒤편 언덕에는 맹사성이 황희, 허형과 함께 각각 세 그루 느티나무를 심은 것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는 정자인 구괴정(九槐亭)이 있다. 뜰 안에는 수령이 600년 넘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가을 낙엽과 함께 그 자태를 뽐내며, 이곳이 유서 깊은 고택임을 입증하고 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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